몸은 퇴근했는데 마음은 퇴근하지 못한 날이었다. 필라테스 수업을 받으면서도 내 신경은 온통 학교 일에 쏠려있었다. '내일 수업 어떻게 하지? 방과후수업 기안 올렸나? 동아리 물품 구입 품의 했나? 부서 모임 때 학교 카드 챙겨야 하는데...' 등의 생각으로 머릿속이 바빴다.
필라테스 체어 (https://naver.me/GrqLWYzW)
그러다가 필라테스 선생님이포워드 런지 응용 동작을시켰다.체어(위 사진)위에서 한쪽 다리를 골반 높이에 맞춰 뒤로 쭉 뻗고 다른 쪽 다리로만 버텨야 하는동작이다. 너무 힘들어서 학교 생각이고 뭐고 다 사라졌다. 이 순간 내가할 수 있는 생각은 '중력은 역시 거스를 수 없구나, 내 다리가 이렇게 무거웠구나, 여기서 엎어지면얼마나 쪽팔릴까' 정도이다.
그러다 옆을 슬쩍 본다. 내가 들고 있는 다리는 골반 높이에서 점점 아래로 내려가고 내가 지지하고 있는 다리는 숭그리당당 중인데, 내 옆에 있는 사람은 너무나 잘 버티고 있다.나는 왜 안 될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범위보다 조금 더 무리해서 동작을 완성해보려 한다. 바로 그 순간 내 골반이 틀어진다. 필라테스 선생님이외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세요!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고요."
그러고 보면 욕심 많은 성격 탓인지, 난 내가 할 수 있는 범위보다 좀 더 많이 하려고 애쓰며 살아왔던 거 같다. 나와 친한 선생님은 자기가 쓸 수 있는 에너지의 70% 정도만 꺼내서 쓰라고 했다. 그런데 난 거의 내 에너지의 120%를 쓰고 있었다. 미래의 나를 좀 당겨 쓴 느낌이랄까.왜 그렇게 했을까 생각해 보니 역시 다른 사람을 의식해서였다. 다른 사람보다 앞서고 싶어서 혹은 뒤쳐지기 싫어서.
물론 열심히 사는 것도 좋고 자기 계발도 필요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할 수 있는 만큼'이란 나를 다 써서 소진해버리지 않는 정도이다. 필라테스로 치자면 내 기본자세 정렬이 흐트러지지 않는 범위를 말한다. 괜히 무리해서 기본자세가 흐트러지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기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나는 필라테스를 하는 동안만큼은절대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안 되는 동작을 억지로 하기보다는 정확한 자세로 강도를 약하게 하는 쪽을 택했다. 골반이 삐뚤어지면서까지 체어 손잡이를 놓기보다는골반을 바르게 펴고 손잡이를 잡았다. 내 옆 사람이 두 손을 앞으로 나란히하든 말든, 내 앞사람이 얼굴 한 번 찡그리지 않고 우아하게 동작을 하든 말든신경 쓰지 않고.
그렇다고 집에서 혼자 필라테스를 하긴 싫었다. 혼자 할 때 5회 반복할수 있는 동작은 함께 할 땐 8회를 하게 되고, 혼자 10초 버틸 수 있는 동작은 같이 할 땐 15초 버틸 수 있으니까. 타인의 존재가 분명 나를 조금 더 노력하게 만드는 것은 맞다. 하지만 나는 내 몸에 더 집중해서 기본자세가 흐트러지지 않는 범위까지만노력하기로 했다.어쩌면 필라테스를 하면서 타인과의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는 연습을 해온 건지도 모르겠다.
원 레그 브릿지 (https://naver.me/xl1LE9ub)
원 레그 브릿지 동작을 하다가 복부 힘이 풀리면서 허리에 부담이 갈 것 같아슬쩍 포기하려는데 선생님이 말한다. "조금만 더 하면 돼요. 파이팅!" 이 말에 좀 더버티다 이젠 진짜 안 되겠다, 나는 여기까진 가보다,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선생님이 마법의 단어를 외친다. "마지막이요! 한 번만 더!!" 이를 악 물고 한 번 더 했는데, 이어지는 선생님의 외침! "진짜 마지막~!"
으악~!! 하마터면 기본 자세가 흐트러질 뻔했다. 어떤 것을 알고 있다고 해서 늘 지킬 수 있는 것은 아닌가 보다. 그래서 나는 또 다짐한다. 좀만 덜 열심히살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