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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수연 May 24. 2023

덕후의 세계

교사들의 이중생활

  덕후. 우리 부장님은 이 단어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 참 기뻤다고 한다. 자신을 정의할 수 있는 한 단어를 찾아서. 덕후라는 말은 일본어 오타쿠를 한국식으로 발음한 ‘오덕후’의 줄임말로, 어떤 분야에 몰두해 전문가 이상의 열정과 흥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쓰인다(네이버 지식백과 참고). 우리 부장님은 정년 퇴임을 4년 앞둔 베테랑 교사다. 그리고 ‘남주의 첫날밤을 가져버렸다’라는 웹소설과 드라마 ‘환혼’, 동방신기 ‘준수’와 BTS ‘지민’의 덕후이다. 소싯적엔 홍콩 배우 장국영의 덕후이기도 했는데 장국영이 만우절에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홍콩으로 날아갔다고 한다.      


  내가 아는 교사 중에는 덕후가 참 많다. 교문 밖을 나오는 순간 그들의 이중생활이 시작된다. 정년까지 3년이 남은 진숙 선생님은 수영 덕후이다. 코로나가 한참 유행이던 시기에 수영장에 갈 수 없어 바다 수영을 했다. 그 영향인지 진숙 선생님은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다. 나는 ‘바다 백신’ 덕분일 것으로 추측했다. 그러나 수영은 진숙 선생님을 아프게도 했다. 어깨 힘줄이 닳아 어깨 수술을 해야 했다. 한동안 수영을 못하게 돼 슬프다는 진숙 선생님은 몸이 회복되면 어떤 ‘물질’을 할지 고민 중이다. 팔을 비교적 덜 쓸 수 있다는 프리다이빙을 할지, 아니면 해녀학교에 입학할지. 이 말을 들은 현숙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 “이제 학교는 그만 좀 다니세요!”     


  그러나 현숙 선생님이야말로 ‘덕후 오브 덕후’다. 현숙 선생님은 책과 공부 덕후다. 특히 독서 치료에 관심이 많다. 상담 전공으로 대학원도 다녔고 상담교사 자격증도 땄다. 책 소개를 하는 유튜브 채널도 개설했다. 영상 열 개 만들고 조회수 26에 마음이 상해서 그만뒀지만. 최근에는 30년 된 구옥을 매입했다. 대출을 잔뜩 끼고 사서 월급으로 열심히 빚을 갚을 계획이라고 한다. 퇴직 후 그곳에서 책방을 오픈하고 주민들을 위한 심리 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할 것이란다. ‘마인드 오프(mind off)’라는 멋진 이름을 만들어 상표 등록을 마쳤다. 돈을 벌기는커녕 까먹어가면서까지, 기어이, 어떻게든, 기필코 하고야 마는 ‘쑥쑥’ 선생님을 보면서 나도 쑥쑥 자라나는 덕후가 되리라 다짐했다.      


  생업이 먹고사는 수단이라면 덕질은 먹고 살 이유가 아닐까. 나는 덕질을 할 때 살아있음을 느낀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운동을 할 때 비로소 내가 나로 존재하고 있음이 느껴진다. 또한 덕질은 예술이다. 건축가 김진애는 <여행의 시간>에서 ‘인간의 모든 작업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예술의 경지에 오른다’라고 했다. ‘1인1덕’의 시대에 당신은 어떤 예술적 덕질을 하고 있는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은 곧 ‘당신은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의 답과도 같을 것이다. 우리 모두의 덕질을 뜨겁게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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