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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작북작 Dec 13. 2023

<프롤로그> 백문백답이 하고 싶어졌다.

자신이 궁금하다면 십문십답


후덥지근한 어느 9월이었다. 그녀가 진주에 오는 날이었다. 온라인에서만 만나던 그녀를 실제로 만난다니 너무 설렜다.     

 

나는 결혼하면서 친구들이 있는 서울을 떠나 경남 산청으로 내려왔다. 산청집은 산속에 있었고 나는 운전을 잘 못해서 늘 집에 있었다. 사실, 운전을 잘 못해서 집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밖에 별로 나가고 싶지 않았다. 누구를 만나러 나가기보다는 SNS나 전화로 친구들과 연락하는 게 더 좋았다. 새로운 친구는 블로그와 카페, 인스타그램에서 발견했다. 친구를 ‘사귀었다’고 적지 않고 ‘발견했다’고 적는 이유는, 나 혼자만 그분들에 대한 내적 친밀감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때로 블로그나 카페에서 알게 된 분들을 실제로 만나 친구가 되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블로그에서 대학 때 친구를 발견했다. 그 친구는 수도권에 살고, 회사에 다니며, 두 아들의 엄마로 살고 있었다. 그리고 책을 정말 많이 읽고 독서모임을 운영하고 있었다. 실제로 아는 사람을 블로그에서 보니 너무 반가워 그 친구에게 당장 연락했다. 그리고 소식을 주고받다가 그 친구의 독서모임에 참여했다. 독서모임의 책은 대부분 어려웠다. 그리고 그 어려운 책을 읽겠다고 모인 멤버들은 내 눈에 너무 똑똑하고 멋져 보였다. 현실적이면서 성장 에너지가 넘치고, 겸손하면서 할 말은 하는 분들. 각자의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고 있는 분들이었다. 독서 모임은 분기별로 꾸려졌고, 3개월마다 멤버들이 바뀌었지만, 이 모임에 오는 분들에겐 늘 배울 것이 많았다. 나는 이 독서 모임에서 알게 된 분들을 친애하게 되었다. SNS를 팔로우하고 좋아요를 누르고 때로는 댓글을 적으며 내적 친밀감을 쌓아갔다.      


그런데 그중 한 분이 진주에 북토크를 하러 내려온다는 소식을 봤다. 그녀는 삼성전자에서 마케터로 일하다가 퇴사한 후 아이들을 키우면서 2권의 책을 낸 작가님이었다. 나는 당장 북토크 신청을 했다. 언젠가 한 번 만나보고 싶은 분이었는데, 그녀가 진주에 온다니 정말 좋았다. 나는 산청 생활을 마치고 진주에 살고 있었는데, 심지어 강연장이 집에서 택시로 10분 정도의 가까운 거리라서 더더욱 좋았다.        

    

강연장에 도착하니 청중석 맨 앞자리에 그녀가 있었다. 단발머리에 아이보리색 슈트를 입은 그녀가 보였다.      

“저~ 작가님?”     


컴퓨터 화면과 SNS로 보던 그녀를 직접 보니 정말 반가웠다. 나도 모르게 그녀의 손을 덥석 잡고 인사를 나누었다. 잠시 후 북토크가 시작되었다.      


북토크의 주제는 ‘엄마이지만 자신을 잃지 않기’에 대한 이야기였다. 많은 사람들이 엄마가 되면서 자기 자신의 욕구를 많이들 포기하지만, 그녀는 자기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의 이야기 사이사이에 인디밴드의 음악도 있었다. 그녀가 왜 그 곡을 선곡했는지 이야기하면 인디밴드가 연주를 했다.      


강의를 듣고, 그녀가 선곡한 음악을 듣다보니 내 마음속에는 ‘자신을 알고 싶다’는 바람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녀는 자기 자신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무슨 음악을 좋아하는지 알고, 그 노래가 왜 좋은지, 어떤 부분이 좋은지 명확히 설명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정확히 알고, 잘할 수 있는 일에는 집중을 하고 잘 못하는 일은 과감히 포기를 했다. 심지어 무슨 옷이 어울리는지 무슨 색이 잘 어울리는지, 어떤 옷을 좋아하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반면 나는 나 자신에 대해서 모호하게 아는 것 같았다. 자신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정작 스스로를 명확히 정리해 본 적은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는 뭐였더라? 나는 뭘 잘하고 뭘 못하더라? 나는 어떤 성격이더라?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더라? 나는 어떤 사람이더라? 어느 것도 대답하기 쉽지 않았다.      


내가 정리되지 않은 서랍장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 뭔가를 사들여서 가득 차 있는 서랍. 가위가 어디 있는지, 편지지가 어디 있는지, 스티커가 어디 있는지 몰라서 그것들을 활용하지는 못하는 서랍장. 살아오면서 분명히 유의미한 많은 경험을 했고, 장점과 단점, 취향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에게 무엇이 있는지 스스로 잘 모르고 있었다. 문득 나에 대한 정리를 해 보고 싶어졌다. 그러면 내가 누구인지 더 잘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고등학교 야자시간에 백문백답이 유행했다. 친구들이 백가지 질문을 적으면 노트의 주인은 답을 하고 친구들과 그 노트를 돌려보는 것이었다. 질문은 이런 것들이었다. ‘당신의 이상형은?’, ‘가장 좋아하는 연예인은?’, ‘만약 나와 제일 친한 친구가 내가 좋아하는 이성을 좋아한다고 고백했을 때 어떻게 행동할 건가요?’

더러는 ‘인생 중 가장 행복했던 때는?’, ‘인생 중 가장 슬펐던 때는?’, ‘가장 좋아하는 책은?’, ‘가장 좋아하는 시는?’이런 진지한 내용도 있었다.       


친구들이 백문백답을 하자고 할 때 나는 단칼에 거절을 했었다. 왠지 유치하고 오글거렸기 때문이다.

‘이상형은 무슨 이상형. 나는 이런 유치한 질문에 시간 뺏기고 싶지 않아. 안 그래도 공부할 게 너무 많은데.’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지금, 문득 백문백답은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데 도움을 주는 중요한 도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생 때 진지하게 대답해 봤다면, 나 자신을 파악하는데 많이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진로를 정하거나 인생관을 정립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녀를 만난 뒤로 백문백답이 하고 싶어졌다. 백문백답은 너무 부담되니 우선은 십문십답을 해 봐야겠다. 이렇게 나 자신에 대해 적어보면서 내 마음 서랍을 정리해 볼 생각에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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