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인생책이 있나요? - 삶을 변하게 하는 책
자신이 궁금하다면 십문십답
“어떤 책을 읽어야 인생이 변할까요? 아니면 어떻게 책을 읽어야 인생이 변할까요? 저는 늘 책을 읽는데 제 인생은 바뀌지 않는 것 같아요.”
사회 초년생 시절, ‘책을 읽었더니 인생이 변했다’는 주제의 좌담회에 참관한 적이 있다. 여러 게스트들이 책의 유용성에 대해 이야기하셨다. 참 좋은 말씀이었지만 책을 읽었더니 인생이 변하더라는 이야기는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나는 대학교 때부터 다독가 친구의 영향으로 꾸준히 책을 읽었다. 연간 30~40권은 읽었으니 성인 연간 독서량보다는 많이 읽었다. 하지만 내 미래는 불투명하고 삶은 변화가 없었다.
QnA 시간에 책을 읽어도 삶의 변화가 없다는 고민을 털어놓았더니, 게스트 한 분이 ‘다양한 책을 읽어보고 다양한 경험을 해 봐라. 소설의 배경이 되는 장소로 여행을 가보는 경험도 좋다’는 이야기를 하셨고 좌담회는 여러 이야기로 흐르다가 끝났다. 좌담회가 끝난 뒤에도 갑갑함은 가시지 않았다.
나도 내 인생이 잘 풀리기를 바라는 사람이었다. 나도 책을 읽고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었다.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가성비 있게 책 중에서도 정말 좋은 책을 읽고 싶었다. 누군가가 적어도 50년을 살아남는 책은 진정한 가치를 가졌다고 하기에 주로 세계문학전집이나 고전을 읽었다. 그리고 베스트셀러를 읽었다. 나는 좋은 책이라고 검증된 책을 읽었다. 오래 살아남았거나 많이 팔린 책은 검증된 책일 것 같았다. 좌담회가 끝난 뒤에도 나는 읽던 대로 책을 읽었다. 책이 내 삶을 더 낫게 만든다는 느낌은 전혀 없었지만, 그래도 책에 답이 있다고 믿고 싶었다.
결혼하고 아이들이 태어난 이후로는 아이들과 자주 도서관에 갔다. 자료실에 들어가면 어떤 책을 골라 읽어야 할지 몰라 책장 사이를 빙빙 돌았다. 신간 서적 코너를 기웃거리고 블로그에 누군가가 추천한 책을 읽기도 했다. 유튜브에서 누군가가 추천한 책을 읽기도 했다. 돈을 많이 벌었다는 사람의 책을 읽기도 했고, 그 사람이 추천하는 책을 읽어보기도 했다. 그 사람이 하라는 대로만 하면 나도 그들처럼 승승장구하는 삶을 살게 될지도 모른다고 기대하며 읽기도 했지만 내 삶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날도 도서관 책장 사이를 거닐며 책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욕망해도 괜찮아>라는 빨간책을 발견했다. 이 책의 표지를 보는 순간 마음속이 뭔가가 꿈틀거렸다. 왠지 남들이 좋다는 대로 하지 않고 뭔가 내 마음대로 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마음을 따라 책장에서 책을 뽑아 빌려왔다.
<욕망해도 괜찮아>는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의 김두식 교수님이 쓴 책이다. 그는 소심해서 절대로 규칙을 어기지 않는 성격이지만, 그러한 자신에게도 아름다움과 거리가 있는 욕망이 있음을 이야기한다. 김두식 교수님은 이 책에 본인과 가족의 흑역사라고 할 만한 내용을 조심스럽고도 솔직하고 재치 있게 적어놓으셨는데, 이런 솔직함이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묘하게, 내가 숨기려고만 하던 나의 약한 모습, 나의 욕망, 나의 가식도 인정받는 느낌이 들었다. 나만 약점을 갖거나, 나만 가식적이고, 나만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여태껏 억누르던 욕망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싶기까지 했다. 마음속에 균열이 생겼다. 자신의 욕망에 솔직해도 괜찮은 거라고, 단점 조차 괜찮다고, 그냥 너는 괜찮다고, 이 책이 이야기해 주었다.
이 책을 시작으로 나는 독후감을 블로그에 기록하기 시작했다. 나는 내 생각을 표현하는 걸 두려워하며 살았다. 누군가 내 의견에 반대할까봐, 내 글을 우습게 여길까봐 겁이 났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나서 내 생각을 조금씩 솔직하게 표현 할 수 있게 되었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정말 민망할 정도의 조악한 독후감이지만, 그래도 내가 읽은 책이 쌓이는 느낌이 좋았다.
그렇게 책을 읽고 기록하던 어느 날, 유튜브에서 ‘책 1천 권을 읽고 연봉 1억이 되었다는 사회복지사’의 인터뷰를 보았다. 아이 둘의 어머니이자, 사회복지사로 일하는 전안나 작가님는 우울해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계속 책을 읽다 보니 삶이 바뀌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녀가 읽는 책의 양이 어마어마했다. 거의 하루에 1권, 그녀의 말로는 1일 1 책 한다고 하는데, 워킹맘에 육아 살림까지 하면서 하루에 책 한 권을 읽는다는 것이 놀라웠다. 1~2주에 1~2권 정도의 책을 읽는 나에게 그녀는 또 하나의 충격이었다. 그래서 그녀의 책, <1천 권 독서법>을 읽었다. 그녀는 잠을 줄여가며 책을 읽는 것도 아니고, 시간을 알차게 사용하며 살고 있었다. 책 읽는 시간을 정해서 그 시간에 집중하고, 나머지 시간도 효율적으로 지내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녀의 책을 읽고 나서 나도 책을 좀 더 많이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아주 많이 읽지는 못하지만 이제는 1년에 80~90여 권의 책을 읽게 되었다.
책을 계속 읽다 보니 이제는 누구의 추천 없이도 책을 골라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고른 책 중에서 정말 좋은 책을 발견하기도 했다. 엄청난 베스트셀러는 아니지만 그래도 내 마음을 움직이는 책들, 가령 김욱 번역가님의 <취미로 직업을 삼다>, 소노 아야코 작가님의 <그대로 둔다>, 김진영 철학가님의 <아침의 피아노>, 막상스 페르민의 <눈> 같은 책들을 말이다. 사실 이런 좋은 책들이 한 두 권이 아니다.
책을 잘 알지 못할 때에는 유명한 책이 좋은 책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책을 알아갈수록 자신에게 맞는 책은 자신이 발견해 나가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오늘도 마음에 균열을 일으키고 자신의 테두리를 넓히는 책을 발견하려고 책을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