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울-양구 고속버스 '군인' 드로잉
2016년 6월 13, 20일.
박수근미술관 창작스튜디오 입주 83, 90일 차.
표지: <동서울-양구 4:20 pm>
월요일. 짧은 일정을 마치고 아쉬움에 마음만은 서울에 남아 배회하고 있었는데 양구로 돌아가는 버스에 타서 아, 양구로 돌아가는구나 실감했다.
내 자리 37번. 뒤의 2명도 군인, 옆도 군인, 앞에도 빽빽이 군인들이 자리했다. 마치 군부대의 차를 내가 얻어 탄 양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노도부대와 백두산부대 마크를 단 군인 아이들이 점점 잠에 깊이 빠진다. 군인들의 머리도 나름 길이가, 모양이 다양하구나.
집을 떠나 외지에서의 생활을 위해 가는 우리는 비슷하기도 하나 나는 선택을 한 것이니. 자유로운 휴가의 마지막 시간을 단잠으로 보내는 아이들이 안쓰럽다.
_2016/06/13 드로잉노트: 동서울-양구 4:20 pm, 4:50 pm, 5:15 pm
다시 월요일. 서울여대 특강을 마친 후, 화덕피자와 파스타의 팬시한 점심을 짧게 누리고 동서울터미널의 3시 50분 버스에 올랐다. 거의 모든 자리가 채워진 만차에 5명 정도를 제외하곤 모두 군인이었다.
어느덧 모두 다 잠들어 적막한 버스에 한 군인이 정자세로 단정히 앉아있다. 부대마크가 2사단도, 21사단도 아닌 로마 숫자 3이 있는 모양이 3군단의 마크인가 궁금증이 일었다. 차가 크게 흔들렸을 때 왼손을 한 번 움직이고 다시 흔들렸을 때 팔걸이로 돌아왔을 뿐, 고개를 돌리지도 발 한 번 움직이지도 않는 앞만 진중히 바라보는 저 사병은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젊은 나이대에 비해 마른 편이어서인지 20대 후반부일 듯 보이는 저 병사는 속눈썹이 무척이나 길었다. 손이 한 번 움직였을 때 고쳐 그렸으나 다시 원자세로 돌아온 모습이 아쉬워 왼팔이 두 개가 됨에도 더 그려 넣었다. 무릎 위에 배낭, 그 위의 모자, 그 사이의 볼펜이 꽂힌 스프링 노트. 너무도 고요하고 잘 정돈되어 있어 문학도인가 싶었다.
긴 터널을 지나는 어둠 속에 거친 선으로 다시 한 장을 그렸다.
_2016/06/20 드로잉노트: 동서울-양구 4:55 pm, 5:17 pm 강원고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