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현영 Grace H Jung Mar 18. 2024

화가의 양구일기 36_안타까운 모습

양구 DMZ '을지전망대' 스케치

2016년 5월 8, 25, 6월 30일. 
박수근미술관 창작스튜디오 입주 47, 64, 100일 차. 
표지: <을지전망대 까마귀>


<을지전망대 중위님 설명> 종이에 먹, 18.5 x 25.6cm, 2016


군청 직원이 알려 주길 이전에 있던 대위님 대신 중위님이 관측 대장으로 새로이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단다. 원래 3개월 정도마다 바뀐다니, 내가 양구에 온 지 세 달하고 한 주 째라 내 양구생활 중 4명의 지휘관을 보겠구나 싶다. 


장교들 혹은 관료들이 오면 군청해설사 대신 장교가 DMZ 설명을 해주는데, 실시간 감시카메라로 보는 장면들을 화면에 띄우며 설명하니 더욱 흥미롭다. 이전 대위님은 농담도 하며 자세도 더 여유로왔는데 초기이어서인지, 성격의 차이인지 정말 군인이구나 싶은 몇 가지 단순한 동작으로 설명이 진행되었다. 


대위님을 그려봤을 땐 방탄모, 조끼 모든 복장이 생소하여 동작을 담아내진 못했는데, 중위님은 동작이 단순했던 이점도 있어 꽤 많은 것을 담아낼 수 있었다. 


_2016/06/30 드로잉 노트을지전망대 중위님 설명




<을지전망대 북한군 밭일> 종이에 먹, 18.5 x 25.6cm, 2016


저 멀리 북한군 점령지. 매봉 아래 선녀폭포의 왼편으로 북한군이 경작하는 밭이 있다. 북한군은 보급이 잘 되지 않아 근무지에서 자급자족을 한단다. 오늘 망원경으로 밭일을 하는 북한군이 여럿이 보였다. 한 밭에는 6-7명, 더 큰 밭에는 좀 더 많은 인원이 농기계나 특별히 눈에 띄는 농기구 없이 일하고 있다. 


하얀 널찍한 옷을 걸쳤거나 벗어버린 상반신에, 탁한 녹빛 하의 혹은 파란 계열의 바지를 입은 까무잡잡 그을린 살빛의 북한군들. 쪼그리고 앉아 일하거나 허리를 깊게 숙여 일하는 무리 가장 바깥에 편히 앉아 있는 파란 바지의 사람은 이들 중 제일 고참이려나. 


무거운 망원경 고정하랴 스케치북 받치랴, 두 밭의 위치도 바꿔 그렸다. 원래 오른편에 있어야 하는 큰 밭은 사람이 더 많았는데 500원짜리 망원경의 시간이 끝나며 까매지니 아쉽게도 둘에 그쳐야 했다. 


평범히 살아가는
작은 삶의 움직임



참으로 평범히 살아가는 삶의 모습인데, 이토록 거대하고 풍성한 녹음 속, 육안으로는 볼 수도 없는 작은 삶의 움직임이 휴전이라는 명제 아래 긴장으로 주시해야 할 안타까운 모습이 되었다.


_2016/06/30 드로잉 노트북한군 밭일을지전망대 망원경




<을지전망대> 드로잉 과정 _2016/05/08


이제껏 남북을 잇는 산맥을 전망대의 오른편에서 그렸는데 관광객을 피해 왼쪽으로 가니 우리  철책과 산맥이 많이 보인다


철책은  능선의 가장 높은 곳을 따라 놓여 있었는데 철책을 위에 두고  옆으로 흘러내리듯철책을 안아 제일 높이 들어 올리듯 굵직한 산들이 모여 맥을 이루고 있었다

 

분명 가장 중요한 요충지가 산의 꼭대기에 고지로 있고 그들을 철책으로 연결하여 방어선을 만든 것일 텐데,  꿈틀꿈틀 지금도 놀랍게 자라나고 있을  위에서 철책은 참으로 조그만 부분으로얇은 선으로 놓여있을 뿐이다야심 차게 화첩을 꺼내 길게 모두를 담고 싶었는데 그리는 것이 제지되었다.

 

_2016/05/08 드로잉 노트조그만 화첩




날이 흐려 운무가 끼니 산맥의 덩어리가 잘 보이지 않는다. 그 대신 남과 북의 두 산맥에 각각 있는 황톳길과 철책이 뚜렷이 드러나 아, 우리가 이토록 가까왔나 다시 놀라게 되었다. 관광객이 많아 몇 선 그러넣고 중단해야 했다. 


_2016/05/25 드로잉 노트을지전망대 조그만 화첩




<을지전망대> 화첩에 먹 드로잉, 15 x 106cm, 2016


미국에서 이곳 양구까지 방문해 주신 정형량 집사님을 모시고 을지전망대에 간 김에, 미완인 화첩을 다시 꺼내 들어 그렸다. 매봉과 운봉은 높이가 화첩 안에 담기지 않아 아쉽게 되었다. 


2단짜리 초소는 한 층을 더 높이는 공사를 하고 있었는데, 새로 바뀌는 모습을 자연스레 먼저 담게 된다. 눈으로 보는 것을 그대로 담아 기록하고 싶은 이 본능은 인간의 어떤 욕구에 기인한 것일까. 


_2016/06/30 드로잉 노트조그만 화첩을지전망대




<을지전망대 철책 위 까마귀> 종이에 먹, 18.5 x 25.6cm, 2016


남측 철책 옆 카메라를 세워둔 탑과 그에 연결된 전선, 혹은 통신선에 오늘따라 까마귀 무리가 앉아 진을 치고 있다. 이전에 산맥을 그릴 때 지뢰와 휴전협정으로 아무도 갈 수 없는 그곳을 마음껏 날아다니는 까마귀를 보고 그리고 싶었는데 이때가 기회구나 싶어 까마귀들을 담았다. 


까만 것을 빼고는 비둘기 모양과 다를 것이 없는 형태로 그려지는 듯해서 당황하였다. 날개를 펼치며 활공하는 것을 그려야 확실히 다를 것인데, 사람에 이어 비행기, 새 등 모든 움직이는 것들을 그려내는 실력이 여전히 아쉬울 뿐이다. 


설명을 끝내고 신임 장교들의 질문을 응대하던 중위님이 와서 무엇을 그리는지 물어서 그리고 있던 까마귀들과 설명하던 중위님을 그린 크로키를 보여주었는데, 이건 괜찮다며 지형지물은 그리면 안 된다 하여 무척이나 뜨끔하였다. 


날개를 펼쳐 두 마리가 앞뒤 오가며 회전하여 나는 것을 날개와 머리까지만 겨우 담고 시간상 떠나야만 했다.

 

_2016/06/30 드로잉 노트을지전망대 까마귀

_2016/06/30 드로잉 노트을지전망대 철책  까마귀


매거진의 이전글 화가의 양구일기 35_직시해야 하는 현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