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달그믐입니다. 양력에 써도 괜찮은 말인지, 음력으로만 그리 부르는 것은 아닌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한 해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입니다. 임인년이 흐린 구름 속으로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맑은 날보다 흐린 날이 많았던 한해였던 것 같은데, 마지막 날 날씨마저도 흐림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만감이 교차하는 한해였습니다. 오랫동안 몸담고 있던 곳에서 등 떠밀려 만 55세, 젊지도 늙지도 않은 어중간한 나이에 퇴직자가 되었습니다. 어머니 뱃속에서 세상에 나오면서 첫 번째 탯줄이 끊어졌듯, 퇴직을 하면서 두 번째로 탯줄이 끊어졌습니다. 수십 년 날 보듬어주고 주고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던 생명줄이 끊어져 버린 것입니다.
첫 번째 탯줄이 끊어질 때 내 두 아이가 그러했든 분명 저 또한 울고 있었을 겁니다. 낯선 세상에 던져진 불안과 공포 때문이었는지, 엄마와 분리된 데서 오는 두려움과 슬픔 때문이었는지는 기억할 수 없지만, 여하튼 울면서 이 세상에 왔습니다. 곁에 나를 환영해주고 기뻐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을 텐데도 분명 울었을 겁니다.
내가 운다 해서 슬펐던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나의 울음은 어른들에게는 안도(安堵) 요 기쁨의 소리였을 테니까요. 그렇게 울면서 온 세상 울 일도 적지 않았지만, 칠정(七情)과 오욕(五慾) 속에 뒹굴면서도 그럭저럭 잘 살았던 것 같습니다.
두 번째 탯줄이 끊어지던 날, 나는 다시 태어났습니다. 어제까지와 다른 세상에 태어난 것입니다.
첫 번째 탯줄이 끊어질 때 느꼈을 두려움이나 불안에 뒤지지 않을 걱정과 불안이 엄습하기도 했었지만, 이번에는 울지 않았습니다. 오십몇 년간 잘 살아온 어머니 자궁 속 같은 세상에서 낯설지만 피할 수 없는 곳으로 왔다고 담담하게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지요. 그렇게 나는 새로운 세상에 던져졌습니다.
그리고는 100일, 200일이 지나고 어느덧 아홉 달이 지나갔습니다. 이런 일도 있었고 저런 일도 겪었지만, 아직 이번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떻게'라기보다는 무엇을 하면서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이 맞을 것도 같습니다.
인생의 버킷 리스트 같은 것을 만들어본 적이 없어서 더더욱 막막한 것 같습니다. 아홉 달이 지나도록 시도를 해 본 것도 별반 없어 더더욱 막막한 것 같습니다. 첫 번째 때나 지금이나 준비를 못 한 것은 매한가지이니 이번에도 어쩌면 오욕칠정과 삼독(三毒)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지레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지난 9개월, 별 의미 없이 지내면서 '그렇게 보낸 시간은 인생이라는 그림의 깊이를 더해줄 넉넉한 여백이 아니라, 나태함와 영혼의 빈곤을 여지없이 드러내는 공백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더 늦기 전에 깨달아 다행입니다.
무엇을 하든 공백이 아니라 여백을 만들어 가며 살아가야겠다고 생각해 봅니다. 무엇을 하든 탯줄에 의지해 살지는 않을 겁니다. 매미가 허물을 찢고 나와 날아오를 수 있는 것은 한갓 시간의 힘이나 자연의 순리가 아니라 고통을 견딘 매미의 의지이듯, 나도 우화(羽化)의 고통을 기꺼이 견뎌내겠다고 마음먹어봅니다.
내일 계묘년 첫날 아침에는 밤새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질긴 탯줄을 자르고 나온 말갛고 환한 새 해와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