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윤구 Jan 25. 2023

잘 먹겠습니다

 “이따다끼마쓰”(ぃただきもす. 잘 먹겠습니다.)      


『고독한 미식가』를 시작으로 『심야식당』‘, 『리틀 포레스트』, 『마이코네 행복한 밥상』 등등 음식을 주제로 한 일본의 영화와 드라마 몇 편을 잇달아 보았다. 보면서 가장 인상이 깊었던 것은 맛난 음식이나 멋진 배우, 익숙한 듯 낯선 일본의 풍광, 또는 주옥같은 대사보다도 매번 밥상을 앞에 두고 읊조리는 ‘이따다키마쓰’, 즉 ‘잘 먹겠습니다’란 인사말이었다. 밥상 앞에서는 물론이고 소소한 간식 한 가지를 두고도 한결같이 읊조리는 한마디였다.    

    

대부분의 끼니를 혼자서 먹는 것으로 나오는 『리틀 포레스』의 이치코나 『고독한 미식가』의 고로 氏도, 조용한 듯 왁자지껄한 『마이코네 행복한 밥상』의 주인공 키요와 매 끼니 그녀가 지은 밥을 함께 먹는 한솥밥 식구들도 어김없이 끼니때마다 손을 모으고 머리를 숙이며 ‘이따다끼마스’를 읊조리고 외친다.      


혼자 밥상 앞에 앉은 이치코가 ‘이따다끼마스’를 읊조릴 때면 외로워 보이는 그 자리를 무엇인가가 따뜻하게 감싸주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왁자지껄한 마이코네 식구들의 합창하는 듯한 ‘이따다끼마스’ 소리는 식사를 준비한 키요에 대한 감사의 상찬(賞讚)처럼 느끼지기도 하였다. ‘이따다끼마스’, 그 한마디가 한 끼 식사를 허투루 차릴 수 없고, 허투루 먹을 수 없게 하는 마법의 주문 같았다.     


특히나, 책상다리로 앉는 우리와 달리 무릎을 꿇는 것이 생활화되어 있어서 그런 것이겠지만, 어쨌든 단정히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으고 감사 인사를 올리는 모습은 의례적인 것으로만 보이지 않았다. 그 모습은 내게는 다른 어떤 것으로도 흉내 내지 못할 경건함이었다. 아무리 건성으로 한다 해도 그러한 자세만으로도 이미 경건한 마음이 생기지 않고는 안 될 듯싶었다.     


식구들이 둘러앉은 집안이나 식당에서 그러는 것을 보노라면 음식을 차려준 사람에게 하는 인사인 것 같기도 하고, 혼자서 제 먹을 음식을 손수 차려놓고도 그러는 걸 보면 한 그릇의 음식이 밥상에 오르기까지 애써준 농부를 비롯한 모든 사람에게, 혹은 모든 것을 키워준 자연이나 또는 그 모든 것을 관장하는 정령에게 올리는 경배처럼 느껴지기도 하였다. 그 짧은 감사 인사에 한 그릇 음식을 대하는 그네들의 마음이 성숙해 보이고, 어떤 때는 심지어 살아있는 성화(聖畫)의 한 장면을 보는 것처럼 숙연해지기도 하였다.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 점심 도시락을 먹기 전에 반드시 외쳐야 하는 구호가 있었다. 도시락을 꺼내놓고 선생님의 “식사 시작” 구령이 떨어지면 반장의 “나라와 부모님의 은혜” 선창에 짝을 맞춰 “감사히 먹겠습니다!”를 합창하고서야 식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배고픈 아이들에게 진정성 없는 요식행위에 불과한 것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생생한 것을 보면 건성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아무리 정성을 다해 차려도, 아무리 푸짐하게 차려도 ‘잘 먹겠습니다’란 인사를 듣기가 희귀한 것이 세태인 듯싶다. 물론 나 또한 예외는 아니다. 배불리 먹고 맛있게 먹고 난 후에야 기껏 자기만족에 “잘 먹었다!” 혹은 “배 터지겠네”를 뱉어내는 것이 고작일 뿐이다. 감사는 사라지고 천박하고 이기적인 자기만족만이 남아있는 것만 같아 “이따다끼마스” 그 한 마디가 유독 귀하게 다가온 것이리라.      


매끼 ‘감사히 먹겠습니다’ 읊조리고 진짜로 감사한 마음으로 먹어봐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낙방(落榜) 소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