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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구 Mar 09. 2023

기적을 꿈꾸며 맨발 걷기 4      

- 봄, 다시 맨발 걷기 -

    

지난 주말, 쌀쌀한 날씨 속에서 금년도 첫 번째 맨발 걷기 정기모임을 개최한 데 이어 오늘 두 번째 모임을 진행하였다.      


작년 여름 처음 맨발 걷기 모임을 시작하면서 모임 장소로 찜하고 활용 중인 OO 숲길은 겨울을 나고서도 여전히 잘 관리된 시골집 토방이나 절집 마당보다 더 말끔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달리 관리인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렇듯 말끔한 것은 순전히 맨발 걷기를 하고 계신 분들의 수고와 열정 덕분이다. 

     

자발적으로 낙엽을 쓸고 눈을 치우며 겨우내 언 땅을 맨발로 녹인 사람들의 열정이 이 숲길을 명품 맨발길로 변모시킨 것이다. 그 길을 걸으면서 명색 맨발 걷기 모임의 리더이면서도 겨우내 땅속 깊이 잠든 개구리처럼 두문불출 칩거하고 있었던 것이 미안하기도 하고 면구스럽기도 하였다.      

 

모임은 밤새 차갑게 식었던 땅과 공기가 봄 햇살에 따듯하게 데워진 오후 2시부터 시작하였다. 봄이 시작되면서 밴드 회원 수는 200여 명으로 늘어났지만, 정작 참여하는 인원은 많지 않았다.      


맨발 걷기라는 것이 신발만 벗고 걸으면 되는 것이니 따로 배우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는 생각 때문일 수도 있고, 봄이라고는 하지만 아직은 쌀쌀한 날씨에 선뜻 맨발로 나서기가 망설여져서 일수도 있고, 어떤 의무나 강요도 없이 자발성에 의지하는 온라인을 매개로 한 모임의 특성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처음 얼마 동안은 오늘처럼 사람들이 적게 모이면 조바심도 나고 낙심이 되기도 했지만, 이제는 한 명이 오면 그 한 명과 함께 하면 된다고 편하게 마음을 먹는다. 그나마 오늘 모임에는 옆 동네에서 맨발 걷기 모임을 이끌고 있는 리더 두 분이 견학을 겸해 참석하였고, 모 아파트의 입주자 대표는 주민 대상 맨발 걷기 특강을 부탁하기도 한 데다 몇몇 사람들이 즉석에서 합류하는 등 뜻밖에도 구색이 갖춰져 지난주보다 한결 힘이 났다.       

특히, 미수(米壽)가 머지않은 마라톤 할아버지는 겨우내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맨발 걷기를 했다면서, 수십 년간 해온 마라톤에도 꿈쩍하지 않던 전립선염과 당뇨, 고혈압 등 여러 가지 지병들이 불과 반년 만에 몰라보게 호전되었고 사물이 두 개로 보이던 눈도 정상으로 돌아왔다며 얼어붙은 땅을 맨발로 녹여서 만든 기적을 증언하여 감동을 주기도 하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숲길은 점점 사람들로 활기를 띠어갔다. 열에 여섯일곱은 형형색색 등산복과 등산화 차림으로 산으로 향하는 이들이었지만, 서넛은 이곳저곳 신발을 벗어놓고 맨발로 걷는 사람들이었다. 그 숫자가 어림잡아 20여 명은 넘어 보였다.     


작년 이맘때만 해도 맨발로 걷노라면 기인(奇人)이라도 만난 듯 힐끔거리며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불편했는데, 불과 1년도 못 되어 적어도 이곳 OO 숲길에서만은 맨발로 걷는 게 특별할 것 없는 운동으로 자리 잡은 것 같아 격세지감과 함께 이런 분위기와 환경을 만드는 데 일조를 했다는 자부심에 뿌듯해지기도 했다.   

  

한편, 맨발로 걷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지자체와 시의회에서도 맨발 걷기에 대해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 같다. 작년 가을에 담당 공무원들을 만나 세족장(洗足場) 등 편의시설 설치를 요구했는데, 군말 없이 적지 않은 금액이 올 예산에 책정된 데 이어 조만간 맨발 걷기 지원방안 협의를 위한 민관 및 시의회 3자 정책간담회도 개최하겠단다. 게다가 시 차원의 맨발 걷기 지원조례 제정도 추진한다고 한다. 바야흐로 맨발 걷기 전성시대가 도래할 모양이다.


물론, 아직까지 시장이든 시의원이든 누구 하나 맨발 걷기에 동참하고 있는 사람을 보지 못하였고, 그런 말을 들은 바도 없으니 이런 관심과 지원의 저의가 짐작이 가지 않는 바는 아니지만, 어쨌든 시민들의 요구와 필요에 부응하는 관심과 지원 자체는 반갑고 고맙다.     


생각해 보면 맨발 걷기 모임을 만들어 사람들을 모으고, 가르치고, 걷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해 온 일들은 내가 30년 이상을 공직에 있으면서 했던 어떤 일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의 보람을 느끼게 해 주었다. 특히, 남의 이목을 신경 쓰지 않고 천천히 숲길을 맨발로 걷는 사람들의 평화로운 뒷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퇴직 후 1년 동안 한 어떤 일보다도 보람되고, 스스로가 대견하기도 하다. 그래서 올해도 주말 하루를 온전히 희생해야 하는 이 모임을 이끄는 번거로움을 마다하지 못할 것 같다.        


다시 춘삼월, 봄볕과 남풍에 매화꽃은 팝콘처럼 피어나고 맨발로 걷는 사람들은 눈에 보일 정도로 쑥쑥 늘어나고 있다. 올해는 맨발로 걷는 사람 누구라도 한 가지쯤은 이루고 싶은 기적을 이룰 수 있도록 작은 힘이나마 아끼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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