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피어나다 Jan 01. 2023

할머니 예뻐?

아이가 드리는 통큰 연말 선물

서둘러 핸드폰을 찾는다.

이 모습 놓칠라…


방금 한 것을 한 번 더 시켜본다.

내 무릎에 앉히고 셀카모드로 동영상을 켰다.


[엄마]있음아, 엄마 어때?

[있음]에빼 (예뻐)

[엄마]그럼.. 아빠 어때?

[있음]에빼

[엄마]언니 어때?

[있음]에빼


[엄마]할머니 어때?

[있음](잠깐 생각 중….)아 뿌!!!

[엄마]응 뿌 할머니 어때?

[있음]에빼 ^^


아이는 외할머니를 뿌!라고 부른다.

할머니 이름에 부 자가 들어가서다.

아이가 할 줄 아는 발음과 의미를 연결 지어 주다가

외할머니는 “뿌”가 되었다.




웃으며 말하는 그 입이 참 예뻐서

표정도 천진난만해서, 친할머니께 카톡으로 공유했다.


ㅎㅎ~ 있음 이에게 줄을 잘 서라고 가르치렴~~ㅎㅎ


아차, 싶었다.

다행히 어머니께서는 농담으로 회신하셨다.


그날 이후로 친할머니를 산 할머니,

자 할머니로 가르쳐봤다.


근데 할머니는 무조건 뿌!다.

할아버지는 하찌라 하면서도 말이다.



눈 덮인 산골 속에 들어온 지 일주일이 딱 되었다. 유치원 겨울방학을 자연 속에서 할머니 할아버지와 보내기로 하고 여름부터 정해놨었다.



있음이도 며칠 전부터 할머니께 슬슬 장난도 치고 간다. 어깨도 살살 건드려 보고, 얼굴도 만진다.


“있음아! 할머니 어때?”

이제 좀 친해진 거 같다 생각하신 어머니가 묻는다.


아니나 다를까,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리거나

대답 없이 웃는다.





삼겹살 굽는 냄새가 주방에 가득 퍼지면서 마법이 시작되었다.


있음이도 작고 길게 잘라준 고기를 잘도 집어 먹는다. 잘 먹었는지 따뜻한 집 안의 기운을 받아 두 볼이 발그레 해졌다.


있음이가 상추를 식탁에 놓더니 고기를 올려 나에게 준다. 쌈 싸서 서로 먹여주는 모습을 예전에 보고는 오늘도 흉내를 내는 모양이다. 어설프게 싸여 있어 고기가 뚝 떨어지려고 하는 찰나, 내가 잡아서 입에 넣는다.


“있음아, 예쁜 할머니 어디 있어?

배불리 먹은 꼬마아이에게 할머니가 묻는다


있음이가 손을 뻗어 바로 옆에 앉은 할머니를 꾹 누른다.


온 가족의 시선이 집중됐다.


태어난 지 23개월 만에 친할머니에게도 예쁘다 하는 순간이다.


“있음아, 마음씨 고운 할머니는 어디 있어?”

“있음아, 정다운 할머니는 어디 있어? 연달아 묻는 언니의 질문에 있음이는 반복해 할머니 몸을 꾹 눌러 답한다.


“있음이가 마음 변하기 전에 그만 물어봐야지~~”

할머니는 자기 전까지 있음이에게 세 번은 더 물어보시곤 말씀하셨다.


웃음이 가시지 않는 밤, 2022년 마지막 날에

있음이는 통 크게 할머니께 연말 선물을 드렸다.


매거진의 이전글 상담선생님의 말 한마디가 과연 인생을 바꿀 수 있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