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듬성듬성한 옆머리를 곱게 빗어 반대편으로 넘긴 어르신을 봤습니다.
평상시 봐왔던 모습이라 그러려니 하고 지나가려는데 빗어넘긴 옆머리와 귀 사이에 검정색의 얇은 뭔가가 제 눈에 걸려들었습니다.
"어?"
처음에는 잘못 본 줄 알고 지나쳤다가 그 익숙하지 않은 물체의 존재가 뒤늦게 제 뇌에 전달되었습니다.
그제서야 저는 다시 고개를 돌려 그 어르신의 머리카락과 귀 부분을 골똘히 훑었습니다.
"어머."
순간 웃음이 나왔습니다.
반대편으로 쓸어올린 머리카락을 고정하기 위해 검정색 실핀을 찌르셨던 것이었습니다.
웃다가 곰곰히 생각해보니 신박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르신 나름대로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지키기 위한 필사적인 행동이겠지만 반면에 용기있어 보였습니다.
그림과 다르게 점잖은 그린베이지 계열의 자켓류를 입고 계셨는데 자신에게 집중하며 머리카락을 소중히 다루는 모습이 순간 힙하다고 느껴졌습니다.
실핀이 그렇게 활용되는 건 처음 봤는데 몇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어르신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그리하여 그 어르신은 제 그림 속에서 힙한 할아버지로 재탄생되었습니다.
이제 실핀을 보면 꼭 그 힙한 할아버지 생각이 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