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집이 내게 왔다
운이 좋게도 건축과 인테리어에 관심있는 남편을 만나 집을 꾸미는 게 어떤것인지, 예쁘게 꾸민 공간에서 사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신혼집의 작은 22평 아파트의 주방 벽을 빨간 벽지로 선택한 건 나였지만 그 외 대부분 인테리어와 가구배치는 그의 취향대로 꾸며졌다.
사람에 대한 호오는 있을지언정 집에 대한 부분은 둔해서 그가 어떻게 하던 큰 의견을 내지 않았다.
아니 별 의견이 없었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수년간 본인만의 아카이브에 쌓아둔 건축과 인테리어의 수집 기록이 그의 머리에, 삶에 늘 존재했기에 결과물이 괜찮았기 때문이다.
편했다.
바쁘고 정신없는 나 대신 집을 좋아하는 사람이 알아서 이렇게 저렇게 공간을 설계하고 단정한 가구들을 들여 작은 우리의 영토를 만들어내니 난 그 안전하고 평화로운 영토 안에 있기만 하면 됐다.
그렇게 신혼집의 아기자기하고 개성있는 공간은 집에 대한 인식을 바꿔주는 계기가 되었다.
집이 가지는 극히 일부의 기능, 즉 밤늦게 들어와 밥만 간신히 먹고 나가는 용도에만 집중되어 있던 과거 나의 집.
그것들은 새로운 집에서의 여정 첫 페이지를 열어젖히는 순간 보이지 않았다.
사람은 쉽게 기억을 잊는다.
그 집에 살면서 퇴화됐던 감각들이 조금씩 새싹 돋듯 살아움직였고, 집을 꾸미는 데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내 역할도 따라 커졌다.
그리고 이전한 지금의 집에서는 내가 큰 방 하나를 꾸미게되는 막중한 역할까지 맡게 됐다.
집.
집은 그렇게 단순한 물리적 공간에서 점점 여러 의미가 겹겹이 쌓이는 공간으로 변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