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 정말 올까 했지만

나와 영국과 풋귤과 와인

by 최정은


2022년 7월의 밤, 나는 서울의 한강을 걷고 있었다. 핑크 빛깔 배번호 40035를 가슴에 차고 '2022 한강나이트워크42K'를 걷고 있었다. 둘레길을 걷는 모임의 회원 4인과 함께 했다. LED 암밴드의 파란빛이 우리를 지켜주고 있었고 가방은 비상식량과 물, 약품, 여벌 옷과 양말로 가득했다.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시작해 잠원 CP, 광나루 CP, 뚝섬 CP, 이촌 CP를 거쳐 여의도로 회귀하는 코스였다. 내가 지금까지 가장 많이 걸어본 것이 템스 강과 런던 시내를 걷는 '런던 리걸 워크(London Legal Walk 2016)' 10km, 서울둘레길 6코스 안양천 18km이었기에 이번 나의 목표는 뚝섬 CP가 있는 30km를 완주하는 것이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취미라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이 나에게도 생기기 시작했다. 그전에는 영화 보기와 만들기가 나의 취미이자 특기, 어떻게 보면 열정, 또 다르게 보면 집착이었다. 연극과 클래식 음악 공연 보러 가는 것이 그나마 취미라고 말할 수 있었지만 나는 그저 관객석의 관객으로 남아 문화를 소극적으로 향유하고 있었다. 2022년 봄, 코로나가 수그러들어 그나마 일상생활이 가능해갈 때쯤 동네 문화원에서 드럼 연주를 배우기 시작했다. 내 몸과 마음을 가지고 내가 직접 ‘하는’ 취미였다. 그리고 서울둘레길을 걷는 모임에 참여하며 여러 길을 걸었고 그 경험으로 자신감을 등에 업어 서울과 수도권의 산도 타기 시작했다. 이런 나의 새로운 시도는 어떻게 보면 2021년 겨울, 런던을 잠시 갔다 오며 마음의 안정을 되찾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2019년 겨울 영화제작의 미팅 통역일로 런던을 갔다 오고는 2년 만에 영국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었다. 비행기표를 구입한 2021년 10월은 코로나 델타 변이의 위세가 사그라들며 카드 캐시백이다, 2차 백신 접종 완료다, 다들 나름 코로나 종식이라는 조그마한 희망을 가슴에 품으며 살아가던 때였다. 그때는 오미크론의 쓰나미가 나지막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그 어느 누구도 알아채지 못했다. 2년 동안 천재지변으로 10년 동안 거주한 제2의 고향 영국과 그곳에 남겨온 친구들을 만날 수 없다는 현실은 코로나 자체만큼이나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고 홀로 종종 눈시울을 짓게 했다. 북한 실향민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면 과언일까.


2021년 12월 10일. 나는 드디어 2년 만에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그 사이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는 오미크론 변이가 발견되어 유럽으로 번지기 시작했고, 항공사에서는 나의 런던행과 인천행 여정이 취소되었다며 다른 날짜의 여정으로 바꾸라고 이메일을 두 차례나 보내오기도 했었다. 공항을 20년 동안 자주 이용하며 그렇게 한가하고 적막한 풍경은 본 적이 없었다. 보안검색대 이후 출발 게이트 가기 전에 문을 연 식당은 오직 한 곳이었다. 출발 전 된장찌개를 마지막으로 먹는데, 마스크를 벗고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이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PCR 검사의 음성을 받고 지금 여기에 와있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괜찮다며 나 스스로를 다독였다.


비행기 안에서는 모두 긴장했지만 다들 갇힌 공간 안에서 조심하려는 기색이 역력했고 실내는 조용했으며 좌석은 한가했다. 오랜만에 탄 국제선 여정이었기에 영국으로 가는 길이 더 길게만 느껴졌다. 드디어 유럽 대륙을 지나 어두운 북해 너머 반짝이는 영국이 눈에 아른거렸다. 내가 2년 정도 산 도버 옆 해안 마을 마게이트가 내 눈에 먼저 들어왔다. ‘정말 저게 마게이트인가?’ 과거의 기억을 떠올려 보며, 도로 하나하나와 전봇대 하나하나를 다시 내 눈앞에 그리기 시작했다. 마치 철썩거리며 부서지는 파도소리가 내 귀에서 들리는 것만 같았다. 곧 런던의 벽돌집들이 내 두 눈 가까이 다가오기 시작했고, 내 영국 핸드폰은 2년 만에 자신의 네트워크망 안으로 들어왔다며 4G 신호를 ‘짠’하고 받아들였다.


항상 긴 줄로 나를 대환영했던 국경 검문소는 줄 하나 없이 쾌속으로 나를 영국 국경 안으로 반겨 맞아주었다. 히드로 공항의 노란 유리문이 열리자 런던의 촉촉한 공기가 나를 반겼다. ‘오후 3시 반이면 해가 진다.’, ‘해가 짧아 낮에 영화 촬영을 할 수가 없다.’, ‘축축하고 시리다.’며 나는 10년 동안 영국의 겨울을 그리도 불평했었다. 그러던 내가 한국으로 돌아와 머무는 2년 동안 한국의 겨울 공기가 그리도 거칠고 사납게 느껴질 수가 없었더랬다. 2년 만에 런던의 ‘촉촉한’ 공기를 내 허파 안으로 깊게 아주 깊게 들이마신 후 나는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다시 오는 데 너무 오래 걸렸어.’

‘너무너무 오래 걸렸어.’


런던 곳곳에서 잃어버렸던, 그리고 잊고 살아야만 했던 나를 다시, 다시 만나는 순간들이었다.


후덥지근했던 2022년 7월 서울 한강의 토요일 저녁. 2022 한강나이트워크42K 여정의 절반이라고 할 수 있는 광나루 CP까지 나의 몸 상태는 나쁘지 않았다. 둘레길 모임 회원들의 도움을 받아 양 발바닥에 테이핑도 하고 뽀송뽀송한 새 양말을 얻어 갈아 신고 나니 물집도 더 이상 커지지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완주 목표 30km를 달성 한 뒤 이촌 CP를 거쳐 여의도로 돌아가는 마지막 6km는 나를 시험에 들게 했다. 점점 뒤로 밀려가는 나를 발견했고 나의 몸은 더 이상 걷지 말라고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걷는 기계처럼 한강 변을 걷고는 있었지만 내가 아닌 프로그램된 내가 나의 몸을 조종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순간 누리호 3단 엔진이 점화하여 연소하듯, 나의 발걸음은 앞으로 쭉쭉 무서울 것 없이 나아가기 시작했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나 자신도 이해할 수 없었다. 늦게 출발해 15km만 걷는 노란 빛깔 배번호 참여자들을 하나둘 제치며 나는 앞으로 나아갔다. 프로그램되었던 나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발걸음을 하나둘 옮길수록 나는 새로이 프로그래밍 되어갔고, 나의 한계점을 매 순간 새로이 써 내려가고 있었다. 내 두 다리는 오래전에 베어져 바싹 마른 나무토막처럼 단단하게 느껴졌고 더 이상 나의 것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던 중 낮에 봤던 63빌딩이 어둠 속에서 다시 내 시야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우리 5인은 그렇게 밤을 새워 한강 42km를 9시간 22분 만에 완주할 수 있었다!


편의점에서 회원들과 간단히 요기를 하고 첫차를 타러 여의도를 혼자 가로질러 걸어가고 있었다. 해가 저만치서 떠오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대로의 신호등을 무시하고 길을 건널 수 있을 만큼 고요하고 한산했다. 항상 분주하던 여의도에 차 하나 보이지 않았다.


7월 31일.

일요일이었다.


텅 빈, 드넓은 새벽은 마치 나를 깨우치려 하는 것 같았다. 마지막 그 고비를 걷던 그 한강 변에 내가 오랜만에 온전히 비로소 존재했다고. 그리고 어쩌면 그 '나'는 새로이 프로그래밍되어 '새로운 나'가 되었다고.


아침이 정말 올까 했지만, 그 긴 밤을 깨고 새벽 버스는 내 앞에 도착했고 나는 조조할인까지 받아 집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한 달 동안 정리한 나의 영국살이 10년 짐은 이제 나의 서울집에 자리를 잡아, 나를 반기고 있었다. 양다리 종아리 아래로 모세혈관이 터져 붉게 번져가고 있었다.






© 글, 사진 최정은 @greentangerine_jeju


이 글은 2022 영등포문화재단 술술센터 예술과 기술을 잇는 '누구나술술' 사업의 지원을 받아 진행되었습니다. @soolsool_cen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