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 풋귤과 자전거

나와 영국과 풋귤과 와인

by 최정은


2022년 1월 1일. 나는 런던 북동부에 위치한 하트퍼드셔주(Hertfordshire) 체스넛(Cheshunt) 마을에서 런던 해크니(Hackney)를 향해 자전거 페달을 밟고 있었다. 하루 전 2021년 12월 31일, 구글맵으로 여정을 확인했을 때는 자전거로 1시간 조금 넘게 나온다고 하였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자전거와 함께 새해를 맞기로 마음을 먹었었다. 서울로 보내는 내 영국짐 선박 컨테이너에 자전거는 싣지 못한다는 화물업체 직원의 말에, 3년 넘게 출근용 자전거이자 쇼핑용, 여행용 자전거였던 ‘스튜어트 리(Stewart Lee)’와 이별 여행을 하기로 마음을 먹은 터였다. 동명의 스탠드 업 코미디언을 한창 좋아하던 때에 산 자전거라 이름을 그렇게 지었더랬다.


북쪽에 위치한 체스넛까지는 열차를 타고 올라가서 남쪽으로 리강(River Lea)의 골짜기와 운하를 따라 스튜를 타고 내려올 계획이었다. 코로나로 내가 한국에 있던 2년 7개월 동안 스튜는 런던의 정원 창고 안에서 꼼짝달싹 못하고 있었던 터라 타이어에 공기도 넣어주고 뻑뻑해진 변속 와이어에도 기름을 뿌려줘야 했다. 흐린 2022년 새해 첫날이었지만 오랜 친구를 다시 만난 듯, 좁은 운하 옆 자전거길을 처음은 어색하게 그러다 어느새 익숙하게 나는 달리고 있었다.


새해를 맞아 어린 딸과 함께 자전거를 타러 나온 사람도 있었고, 가족들과 함께 가볍게 산책하러 나온 사람들도 있었다. 질퍽한 길을 따라 내려오는데,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도 런던 도착지가 이상하게 멀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스튜와 함께 달리고 달리는 데도 구글맵에서 나의 파란 점은 아래로 그다지 이동하지 않는 듯 보였다. 그때 나의 눈에 들어온 총 이동거리. 12.5mil. 20km가 넘는 거리였다. 구글맵은 어떻게 내가 20km를 자전거로 한 시간에 달릴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그리고 나는 왜 총 이동거리를 확인하지 않았던 걸까.


나의 대책 없는 자전거 여행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내가 풋풋하던 시절, 제주에서 초등학교 4학년일 때였다. 오빠가 전교 학생회장이 되자 부모님은 축하선물로 오빠에게 자전거를 사주었다. 검은색 몸체에 잘생기고 날렵한 자전거였지만, 평지에서는 내 짧은 다리를 받아주지 않는, 나는 탈 수 없는 큰 넘사벽 자전거였다. 오빠가 동네 골목을 씽씽 타고 다니는 것이 부러웠고 너무 재미있어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오빠 자전거에 올라탔다. 집 밖에 끌고 가, 길턱에 기대서서는 넘사벽 자전거에 올라탔다. 페달에 내 두 발을 올려놓고는 자전거 손잡이를 내 두 손으로 꼭 잡았다. 지금은 그 이유를 기억할 수 없지만, 부모님이 일하시는 과수원으로 나는 반드시 꼭 가야만 했다. 그 당시 집은 제주의 남동부 표선면에 있었고 과수원은 성산읍에 있었기에 내가 이동할 거리는 총 4.2km였다. 여정 중간에 가파른 오르막을 오른 후 서서히 올라가는 나름의 난코스였다. 하지만 그 당시 그런 정보를 내가 가지고 있을 리 만무했고, 그저 일주도로를 따라 동쪽으로, 동쪽으로, 풍천국민학교 옆 우리 과수원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을 보행자도로가 있을 때는 자전거를 멈추고 발을 내려놓고 가끔 쉴 수 있었지만, 점점 마을에서 벗어나자 내가 발을 디딜 곳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자동차 도로와 나, 그리고 자전거뿐이었다. 계속 페달을 밟아야만 했다. 표선리에서 하천리로 넘어가는 고개가 어찌나 높던지, 나는 헉헉거렸고, ‘작은 애가 자전거를 타고 어디를 저렇게 혼자 가나?’하고 지나가던 차들이 슬로우 모션으로 속도를 줄이며 나를 힐끗힐끗 쳐다볼 뿐이었다.


페달에서 발을 뗄 수도 없거니와 떼면 자전거에서 넘어질 것 같아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다. 그러다 내 눈에 하천리와 신천리를 가로지르는 천미천이 저 멀리 높게 솟아있는 것이 보였다. 하천이나 하천 다리가 반가운 것이 아니라 다리에 붙은 길턱이 너무도 반가웠다. 나는 있는 힘껏 페달을 밟아 언덕 위 다리에 도착했고, 드디어 자전거를 멈추어 내 발을 제주 땅에 비로소 내려놓을 수 있었다. 얼마만의 멈춤이었는지 모른다. 드넓고 새까만 하천의 돌마당 개천 너머로 태평양이 어렴풋이 보였다.


숨을 조금 고르고는 평평한 지대를 별 탈 없이 달려 드디어 동쪽 동쪽 풍천국민학교 옆 우리 과수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오빠의 큰 자전거를 혼자 타고 온 나를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엄마는 말을 잇지 못했고, 나는 그렇게 11세의 영웅담을 한동안 쏟아내었다. 오랫동안 콩밭으로 쓰던 밭에는 몇 개월 전 새로 심은 귤나무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고, 얼굴은 뵌 적 없지만 그리운 왕할머니와 할머니의 무덤이 과수원을 잘 지켜주고 계셨다. 내 키보다 작은 어린 귤나무에도 풋귤들이 하나둘 듬성듬성 매달려, 풋내음 물씬 내뿜으며 쑥쑥 자라나고 있었다.


그날 자전거를 차에 싣고 집으로 왔는지 어떻게 집으로 돌아왔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이후 집에서 과수원을 오갈 때마다 자전거를 타고 완주했던 그 길이 무척이나 살갑게 느껴졌다. 어린 내가 혼자 이뤄낸 어떤 ‘성취’라는 느낌이 내 마음속에 고요히 울려 퍼지곤 했고, 어린 나를 빙그레 미소 짓게 했다. 물론 예나 지금이나 원하는 것이 있을 때는 무턱대고 일을 저지르고는 멈추지 않는 성격 탓에 따라오는 여파가 풋! 풋! 이만저만이 아니다. 하지만 가슴에 새겨진 조그마한 영웅담들이 하나둘 모여 내가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나를 지탱해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오늘 아침 문득 생각해본다.






©글, 사진 최정은 @greentangerine_jeju


이 글은 2022 영등포문화재단 술술센터 예술과 기술을 잇는 '누구나술술' 사업의 지원을 받아 진행되었습니다. @soolsool_cen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