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버스를 달리는 이야기
늦어서 가방 지퍼도 잠그지 못하고 마구 뛰어가 버스에 올라탔다. 시간을 벌기 위해 다음 정류장까지 전력 질주. 혹시 뭐 떨어진 것이 없나 기웃기웃 두리번두리번한다. 마스크 없는 첫 토요일. 사람들이 많은데 나만 마스크를 안 쓴 것 같다. 정신이 없어 마스크를 챙겨 오지도 못했다. 가죽 재킷 주머니에 손을 넣어 보니, 굴러다니는 마스크가 하나 있다.
의외로 흰머리의 70대 운동화 차림의 안경을 쓴 아저씨가 마스크를 쓰고 있지 않다. 사람들의 옷 색깔이 베이지, 연한 핑크, 브라운이고, 파란 가방에 흑백 줄무늬 바지로, 지난주보다 한층 밝아졌다. 옅은 핑크 카디건을 입은 20대의 여자는 마스크를 손목에 걸치고 있다.
아이 둘과 나온 부부. 내 앞자리 아빠와 함께 탄 아이는 그림책을 읽고 있다. 엄마의 가슴엔 선글라스가 걸려있고, 분홍 스니커즈를 신었다. 그림책을 읽던 남자아이가 자기 손만 한 장난감 총으로 나를 쏜다. 내가 미소 짓자 쑥스러운지 길거리 떡볶이집으로 시선을 옮기며 의자 등받이 사이로 숨는다.
마스크를 안 쓴 또 한 사람. 최근에 머리를 자른 듯한 30대의 남자. 귀 위를 많이 밀어 생살이 다 보인다. 남자는 감색 면 남방을 입었는데 더웠는지 팔을 걷어 올린다. 분홍 스니커즈 엄마가 총 쏘는 아이에게 손가락질하며 고개를 절래절래한다. 총아이가 어떤 아저씨의 머리에 대고 총을 발사하자, 애 아빠는 아이의 머리를 눌러 의자 등받이 너머 심연으로 사라지게 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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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마을이야기 '영등포에 귀 기울이다' 중 '마을버스를 달리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