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떠올린다.
엄마는, 혹은 아빠는 다 잊은 걸까.
엄마랑 같이 식사를 하거나, 카페에 있을 때 지인에게 전화가 오면 엄마는 내 의사는 묻지 않고 자리로 지인을 부른다. 그리고는 엄마 친구 여기 와도 되지? 네가 좀 사. 하는 것이다.
처음엔 그냥 좋은 맘에 식사비를 지불하고 커피를 샀지만 몇 년을 그렇게 반복하니 짜증이 났다.
내가 좋아하는 내 친구면 백 번도 더 사지. 내가 왜 아주 잘난 멀쩡한 자식 있고, 우리보다 훨씬 돈도 많은 엄마 친구, 아줌마들 식대랑 디저트값을 대줘야 하지. 속으로 강한 불만을 품지만 세상 상냥하고 다정히 인사하고 자연스레 대화에 참여한다.
평일 주말 밤낮없이 만나 수다 떨고 같이 여행 다니며 쇼핑하는 다정하고 사이좋은 모녀사이를 자랑하고 싶은 걸 알기 때문이다.
내가 냉소적이고 글러먹은 인간이라 속이 배배 꼬여서일까. 아주 보기 좋은 이 상황에서도 나는 스멀스멀 과거를 떠올린다.
방에서 이어폰 꽂고 노래를 듣느라고 부르는 소리를 못 들었다고 내게 과도와 가위가 담긴 수저통을 집어던진 엄마를.
학교 끝나고 집으로 바로 오지 않았다고 나를 무릎 꿇려놓고 코피가 터지도록 귀싸대기를 갈긴 엄마를.
사실 아주 나쁜 기억만 있는 건 아니다.
좋은 것도 많이 배웠다. 독서하는 습관, 물건을 보는 안목, 감각, 센스 같은 것들.
아빠도 마찬가지다. 에버랜드가 자연농원이던 시절. 연간 회원권을 몇 년씩 유지하면서 우리를 데리고 다니고 국내 곳곳 온가족을 데리고 여행을 다녔다. 주6일이던 때인데 어디서 그런 체력이 나왔을까 싶다.
하지만 엄마랑 부부싸움을 하다 다 죽자고 집에 불을 지르겠다며 이불을 쌓아놓고 성냥을 찾던 이성을 잃은 모습과 술에 취해 고성을 내지르던 벌건 눈을 나는 잊지 못한다.
화목하고 단란하던 때와 극명하게 대비되던 순간들.
엄마 아빠는 정말 다 잊은 걸까?
아니면 그때의 엄마 아빠의 나이가 되고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도 나만 아직 자라지 못하고 나쁜 기억을 두고두고 곱씹고 있는 걸까.
언젠가 은연중에 어릴 때 내가 상처입었던 순간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엄마는 그랬어? 그랬으면 미안해. 몰라서 그랬어. 너무 모르고 키웠어. 하고 더 듣기 싫다는 듯 내 말을 단칼에 잘라버렸다.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 나는 그 말이 그렇게 싫더라. 처음이어도, 육아에 무지해도. 그렇게 애를 줘패면 안된다는 건 모를 수가 없는 거니까.
하이가 깔깔대며 웃는다.
엄마! 아빠 어렸을 때 할머니한테 파리채로 맞았었대.
재밌다는 듯이 파리채를 허공에 휘두르는 하이에게 남편은 파리채 손잡이로 맞으면 얼마나 아픈지 알아? 하고 한술 더 뜬다.
어떻게 아이를 때려? 그건 아동학대잖아.
맴매라는 말을 처음 듣고 그게 뭐냐고 갸웃대던 아이에게 어린아이는 때릴수도, 맞지도 않는 존재다. 그게 당연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