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차 과장의 자존감 바닥 치는 일상
프로이직러는 얼어 죽음
n번째 이직을 하고, 3개월이 흘렀다.
수습딱지를 떼고, 출근길이 조금은 편해질 시기.
그런데 어째 이번 3개월은 조금 다르다.
여전히 매일이 녹록지 않을뿐더러, 당황스러울 만큼 힘이 든다.
난생처음으로, 일이란 걸 그만두고 싶었다.
10년 차 동종업계 경력을 인정받아, 이직 후 과장이 됐다. 얼마 전까진 파트장이었는데 이젠 과장이란다.
사실 파트장이나 과장이나 팀 내 역할의 변화는 크지 않다. 결국은 팀원이고 많이 쳐줘야 중간관리자이기 때문. 그래도 과장이라니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새로운 일에 적응하지 못하고 수습기간 내내 허우적거리고 있는 나. 모르는 업계도 카테고리도 아닌데 어렵다. 줄곧 하던 일에서 아주 조그마한 변주를 준 것뿐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변주보다는 변곡점에 가까웠던 거다.
내가 겨우 이 정도밖에 안 됐나?
모르면 배워서 하고, 얕은 지식은 깊이를 주면 됐다. 부족해도 유관한 업무 경험이 있어, 개척이 어렵지 않았다. 물론, 스스로를 믿지 못하니 업무 파악을 위한 셀프고문은 필수였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내 것이 됐다.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았단 의미다.
그런데 지금은 내 것은커녕, 10년 차 과장이란 직급이 민망할 정도로 어수룩한 내 모습에 놀란다. 매일 같이 실수를 하고 지적을 받는다. 매일 같이 실수를 지적하고 누군갈 교육했던 내가 말이다.
일주일에도 몇 번이나 아침 출근길이 지옥 같다. 피곤하고 졸려서가 아니라 일이, 사람이, 출장이, 사실은 지적이 겁나서다. 왜 유난히 더디고, 왜 자꾸 놓치는 걸까.
팀에서 가장 꼼꼼하고 이성적인 판단이 가능했던 10년 차 파트장은 이제 여기 없다.
매일 같이 자존감은 바닥을 치고, 자괴감은 차곡차곡 쌓여 간다.
감사하게도, 자주 면담을 진행해 주시는 리더가 계신데, 독려의 끝엔 항상 같은 말이 걸린다.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고, 적응 기간은 당연히 필요하죠.
실수라기보다는 우리 회사만의 규칙을 알아 가는 과정이고, 적응은 이미 잘해 나가고 있습니다.
출장길에 우연히 마주친 전 직장 동료의 고마운 격려도 있었다.
한 직장에 완벽하게 적응하기 위해선 최소 6개월의 시간이 필요해요.
당연히 잘할 테니, 너무 스스로를 괴롭히지 마세요.
부적응을 만든 건 아마 나 자신일지도 모르겠다. 실수하는 나를 내가 적응하지 못한 거다. 실수가 쌓이고 불안감이 올라가니, 능률이 올라갈 수가 있었겠나.
어쩌면 영업이라는 큰 틀 안에서 아마도 난 매번 힘들고 벅찼을 것이다. 오히려 단 한 번도 쉬운 적이 없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는 계기가 됐다.
고생이 디폴트 값이었기에 내 스스로를 다독일 줄 모르고 달렸다. 부족함을 보이기 싫어 끊임없이 적응하고 채우길 반복했더랬다.
언제나 실수할 수 있고, 그 실수는 결코 나를 증명하지도 영원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난 그런 나에게, 조금만 더 시간을 주기로 했다.
실수 끝에 원래의 나로 돌아갈 수 있는 시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