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히읗 May 10. 2022

오늘 아침, 유치원 등원 시간을 검색했다.

무려 미혼의 백수인 내가


매일 아침마다 마주하게 된 뜻밖의 진풍경이 있다. 엄마 혹은 아빠의 손을 잡고 아장아장 걸음마를 옮기는 아이들. 세상 분주한 유치원생들의 아침 등원 행렬이다. 어릴 부터 아이를 끔찍이도 좋아했던 나는, 요즘의 이 진풍경이 꽤나 반갑다.



아파트 단지의 유치원생들은 다 여기서 등원을 하는 걸까. 며칠 동안 염탐(?) 한 결과, 아파트 후문에서 가까운 어느 한 지점이 항상 짧고 굵게 북적이는 걸 알 수 있었다. 굉장히 놀랍도록 다사다난한 시간이다. 어떤 아이는 울고 있고, 엄마는 더 울고 싶은 얼굴을 한다. 열정적으로 뛰어노는 아이를 온 힘을 다해 진정시키는 부모가 있는가 하면, 애교 가득한 얼굴로 서로를 진득하니 바라보기도 한다. 지각임을 예상한 어느 젊은 엄마의 축 처진 어깨와 그 아래 해맑은 미소를 장착한 여자 아이도 있었다.


조금은 덥기까지 한 봄날의 화창한 아침. 뒤 쪽 벤치에 앉아 잠시 진풍경을 바라본다. 사실 나에겐 유치원생들의 귀여움 외에도 제법 흥미로운 요소들이 있다.




그 첫 번째는, 유치원생 학부모들의 나이를 짐작해 보는 것. 내 또래부터 시작해 멀게는 10년 정도 차이가 나는 연장자까지 참으로 다양하다. 물론, 실제는 나보다 한참 어리거나 젊은 스타일의 조부모님인 경우도 더러 있을 것이다. 어찌 되었든, 평균치를 내자면 내 또래 그 어디쯤인 것은 분명하다. 어쩌면(아니 확실히) 저 귀여운 아이들의 눈엔 내가 엄마의 친구 격인 아줌마보일 거라는 것까지. 30대 중반으로는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인데, 오늘따라 왠지 새삼스럽게 다가오는 이유가 뭘까. 막연히 미뤄둔 결혼이라는 숙제와 육아의 무게 따위를 떠올린 걸까. 그렇다고 너무 깊숙이는 들어가지 않는다. 제각기 다른 표정을 한 엄마 아빠, 그리고 조부모님의 얼굴엔 살포시 행복이 걸려 있음을 오늘도 눈치챘으니 말이다.


흥미로운 두 번째는, 그 찰나의 시간 나의 미래를 상상하게 된다는 것. 앞서 말했듯, 나는 아이를 끔찍이도 좋아한다. 지나가는 어린아이를 꿀이 덕지덕지 흐르는 눈으로 쳐다보기를 수차례. 우리 엄마는 그런 나에게 항상 이렇게 말한다. "작작해." 그렇다. 작작하라는 말, 참 많이도 들었다. 누가 보면 유괴범마냥 부담스럽게 다가가는 에티켓 없는 인간이라고 오해하겠지만, 유명한 소심좌로서 눈으로만 열렬히 사랑을 표현하는 데 그친다. 그런데도 작작하라니. 내가 뭘 어쨌다고. 아마도 그 기저에는, "결혼해서 지 애나 낳을 것이지. 남의 애는 왜 그렇게 이뻐하냐."는 마음의 소리가 깔려 있음이 분명하. 언젠간 육성으로 들은 것도 같다.


아니, '내 애 없으면 남의 애 이뻐하면 안 된다'라는 법이라도 있답니까. 안타깝게도 나는 '내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에 진심으로 마음이 동한 바가 없다. 딩크 족은 아니지만, 우선순위가 나에게 한참 밀려 있다는 표현이 정확하겠다. 예쁜 깔맞춤 커플 룩을 입고 나란히 걷는 상상을 해보긴 했지만, 꼭 내 아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 없다. 최근에는 진심으로 사랑하는 조카의 얼굴을 떠올렸던 것 같기도 하다.


부모 세대로선 이해하기 힘든 '12년 차 우여곡절 많은 연애'를 지속 중인 나. 그런 나는 오늘도 이 귀한 봄날의 하루를 알차게 보내는 방법을 고민한다. 비록 현재는 무직이고 30대고 미혼이지만, 코로나를 등에 업고 비공식적 안식년을 보내는 요즘이 심각하게 행복하다 이 말이다. 당분간은 이 행복한 봄날의 아침을 당당히 만끽하겠다. 다소 힘들어 보이던 또학부모님들께는 왠지 미안한 마음이지만.


오늘 아침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초록 창을 콕 찍어 이렇게 검색했다. 유치원 등원 시간. 보통 8시 30분 ~ 9시 30분 사이, 1-2차 나눠 등원 차량을 운행한단다. 어쩐지. 아침 산책이 끝나지 않는 한, 매일 같이 마주하게 될 반가운  인연들이었다.




잡담이 길었지만, 사실 등원 행렬의 유치원생들은 진심으로 귀엽다. 덕분에 아침마다 매우 즐거울 정도. 당분간 잘 부탁해요 모두들. (어쩌면 엄마 친구일) 나는 언제 또 일터로 끌려 갈지 모르니.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이제 와 '물경력'을 의심하게 된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