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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마이 Jun 04. 2022

이 거대한 평화시장

<미싱타는 여자들> 리뷰


<미싱타는 여자들>


(Sewing Sisters, 2020)


한국/108분/다큐멘터리


감독 : 이혁래, 김정영


출연 : 이숙희, 신순애, 임미경
















전태일 말고도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이름들




하나의 영웅이 나오기 위해서는 여러 영웅들이 필요하다. <미싱타는 여자들>은 서울시 봉제역사관 디지털 영상 아카이빙을 위해 봉제 노동자 32인의 구술생애사 인터뷰에서 시작되었다. 여러 공장을 돌며 인터뷰를 진행하던 김정영 감독은 그 어디에도 70년대 평화시장의 영웅들, 시다들과 여공들의 이야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영화 제작을 결정하게 되었다. 그동안 이 영웅들의 이야기를 기록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분통할 정도로 깊은 울림을 주는 영화임에 틀림 없다.





영화는 굉장히 독특한 다큐멘터리 형식을 취한다. 인터뷰로부터 출발한 영화이기에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같은 대상을 같게 또 다르게 인터뷰하였고, 자료영상 하나 없이 그들이 주고 받은 편지들, 일기들로부터 70년대 격변의 노동운동의 한복판을 보여준다. 그 덕분에 영화는 담백하게 다가온다. 거창한수사 없이 그들의 삶을 이야기 듣듯이 접하게 된다. 특히 후반부 20세기의 대표 저항가요 ‘흔들리지 않게’를 합창하는 장면의 영화적 연출은 거대한 울림으로 다가올 것이다. 





“살려고 일한게 아니라 죽으려고 일한 것”이라 회상하는 이들의 아픔은 누가 치유해 주었을까. 집에서는 “여자는 공부를 하면 안된다”라며 중학교에 보내주지 않았다. 버스를 타면 교복을 입지 않았다며 성인 요금을 받았다. 그런 이들을 지켜주는 곳은 노동교실이었다. 그 곳에서 만큼은 시다 몇 번이 아닌 이름 석자로 불리었다. 그 이름들이 지키고 싶었고, 지켜야만 했던 곳이 바로 그 노동교실이었던 것이다.














그래도 다행이다, 잘 살아 줘서.





12살 남짓한 어린 여공들은 70년대 평화시장 노동운동의 주역들이었다. 여자는 공부하면 안된다는 말에 평화시장에 들어온 어린 여공들은 제 2의 전태일은 여자가 되어야 한다며 죽음을 무릅쓰는 영웅이 되어 있었다. 말도 안되는 업무량에 시달리면서도 이들은 꼭 노동교실에 가서 배움의 갈증을 해소했다. 배움과 함께 그들은 서로 연대하며 자매애를 쌓아갔다. 그 고됨과 피곤함을 참으며 배우고 투쟁하며 싸울 수 있었던 힘은, 그들의 자매애로부터 나온 초인적인 힘일 것이다.





1977년 9월 9일, 이들은 노동교실을 지키기 위해 모였다. 격렬한 싸움이 이어졌다. 영웅들은 쓰러지고 피를 흘리며 저항했다. 권력은 아무런 처벌을 하지 않겠다는 거짓말로 이 싸움을 종결냈고, 그들은 곧 구속되거나 구류되었다. 유치장에서도, 교도소에서도 그들을 향한 권력의 폭력은 계속 되었다. 학생운동을 하다 갇힌 학생들에게는 친절했고, 이 영웅들에게는 화장실조차 보내주지 않았다. 갈아입을 속옷 역시 주지 않았고, 외부와의 소통을 단절시켰다. 





이들이 정의로우리라 믿었던 판사마저 그들에게 빨갱이가 아니냐는, 충격적이고 황당한 질문들을 던졌다. 권력은 소년원에 가야 할 임미경씨의 주민등록번호를 조작해 교도소에 수감시켰다. 그 권력은 지금에 이어져 임미경씨에게 적법한 보상을 해주지 못한다 말한다. 누구를 위한 권력이고 누구에게로부터 오는 권력인가.





어째서 역사는 이들의 이름을 담지 않았을까, 남성 중심의 역사는 이 영웅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지 못하게 만들었다. 혹시나 본인의 가족들에게 피해가 갈까 꼭꼭 숨겨두었던 이야기들은 이제서야 세상에 나올 수 있게 되었다. 시다 7번으로 불리던 그들은 함께 투쟁하며 그들의 이름을 말했고 이름이 불렸다.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아내가 아니다. 





마지막, 영웅들은 찬란했던 본인들의 과거와 마주한다. 무서울 것 없었던 그 때, 무섭지만 함께 했기에 이겨낼 수 있었던 그 때의 나와 마주한다. 그들은 눈시울을 붉히기도 하고, “그래도 다행이다, 잘 살아 줘서”라며 위로를 건네기도 한다. 어렸던 그 시절 헤어져 만나지 못한 친구들을 보고싶다 말하던 영웅들은 다시금 평화시장 옥상에 모인다. 그리고는 목이 터져라 함께 노래를 부른다. ‘흔들리지 않게’를 부르는 그들의 모습은 그 누구보다 강하고 멋있고 찬란하다. 












이 거대한 평화시장



얼마 전, 한국전력 하청업체 노동자가 감전으로 인해 사망했다. <미싱타는 여자들>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영웅들은 말한다. 제 2의 전태일이 나오지 않는 사회가 와야 한다고. 지금 우리의 사회는 어떠한가?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평화시장이 더는 그 누구도, 이런 쓰라린 아픔을 경험하지 않게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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