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중학교에서 시간강사로 근무할 때다. 출근 준비를 하는데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선생님, 오늘은 두 시간만 수업하시고 댁에 가시면 됩니다."
"네? 아... 알겠습니다."
당시 근무하던 학교에서 학생 대상의 외부 프로그램 진행 날이었다. 반별로 일정이 달라 내가 들어갈 다섯 개 반 중 세 개 반이 프로그램 대상이었다. 두 개 반만 정상 수업이었다. 시간강사인 나에게 정상 수업 여부는 중요한 사항이라, 출근 날이 아닌 하루 전에도 담당 선생님께 메시지를 보내 문의했다. 연락을 받으신 선생님은 친히 전화로 답을 주셨다.
"선생님, 두 시간만 정상 수업하고 나머지는 그냥 교무실에 계시다가 가시면 될 것 같아요."
나머지 세 시간은 외부 강사가 진행하니, 내가 수업을 할 필요는 없고 참관하거나 교무실에 있다가 퇴근하면 되는 분위기로 이해했다. 학교 사정으로 인해 수업이 변경되지만 수당은 지급되는 거라 생각했다. 마음 편하게 아이들 활동을 보며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겠다 싶어 가벼운 마음으로 출근 준비하는 중이었는데.
다른 과목 강사들과의 형평성 문제로 인해 수업료가 지급되지 않으니 그냥 퇴근하라고 했다. 어쩔 수 없게 됐다고, 학교 측에 요청했으나 반영되지 않아 죄송하다고 했다. 중간에서 연락받고 전해주신 선생님이 뭐가 죄송하다고.
내 의지와 관계없이, 받기로 예정되었던 일당 9만 원이 사라졌다. 오전 11시 20분에 강제로 퇴근하게 됐다. 너무도 갑작스럽게.
급하게 계획을 짰다. 시간강사를 하면서부터 한 시간 한 시간이 소중해졌다. '이 시간이면 얼마를 벌 수 있는데.' 하는 마음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아깝고 또 중요해졌다.
평소 퇴근에 비해 세 시간 넘게 여유가 생겼다. 계획 없이 그냥 출근하면 그 시간이 허무하게 지나갈 것만 같은 불안이 엄습했다.
'영화 보러 갈까?'
극장에 간 지 한참 됐고 이 정도 시간을 활용하기엔 딱 어울린다. 그런데 내가 원하는 영화는 시간이 안 맞고 시간이 맞으면 내가 보고 싶지 않은 영화였다. 몇 번을 검색하다가 도저히 안 돼서 패스.
'사우나하러 갈까?'
마침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싶었다. 평일 낮이면 사람도 별로 없겠지. 출근 직전, 급히 목욕바구니를 챙겼다. 혹시 몰라 수건과 로션까지 후다닥 챙겨 집을 나섰다.
눈 깜짝할 사이에 두 시간이 지났다. 퇴근시간이다. 오전 11시 20분. 급식실 앞에 학생들이 줄 서있었다. 그렇잖아도 행정실에 얘기를 할까 말까 고민하던 참이었다. 학교 일정 때문에 일찍 퇴근하느라 급식을 안 하게 되었으니 비용에 반영해 달라는 말이 구차한가 아닌가 생각 중이었는데. 깔끔하게 해결됐다.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학교를 나왔다.
학교에서 가까운 곳에 새로 생긴 사우나를 검색한 뒤 고민 없이 향했다. 마침 사우나 금액도 반값이나 할인하고 있었다. 야호!
탕을 옮겨 다니며 신선놀음 흉내를 냈다. 그 와중에 등만 세신 받을지 전신으로 세신 받을지 한참 고민했다. 잠깐 편하면서 세신비를 써버릴까, 이 정도 금액은 나에게 주는 선물로 적당 한 것일까 치열하게 생각했다. 등 1만 3천 원, 전신 2만 5천 원. 그래, 나는 돈을 버는 여자잖아. 큰 마음먹고 전신 세신으로 결정했다. 그럴 자격 있다며 스스로 위안하길 수차례. 들뜬 마음으로 세신사에게 다가갔다.
"여사님, 저 때 좀 밀어주세요!"
이럴 수가. 앞에 대기하는 사람이 4명. 한 시간 넘게 기다려야 된단다. 아... 분명 오늘 운이 좋은 날이었는데. 내 계획이 딱 맞아떨어질 것만 같았는데. 한 시간이면 내가 혼자 다 씻을 시간이다. 구석구석 내 손으로 때를 밀며 생각했다.
'그래도 2만 5천 원 벌었네.'
예정된 수업을 안 하게 되면서 날아간 9만 원.
못 먹을 뻔했으나 먹게 된 점심 급식 4천5백 원.
나갈 뻔했으나 절약한 세신비 2만 5천 원.
사우나한 게 아까워 하루 쉰 복싱장.
그래도 운수 좋은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