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내 독서왕

1위가 부끄러웠던 이유

by 아침이슬

시간강사로 근무하던 일 년 반 동안, 일주일에 이틀씩 출근했다. 시간강사에게는 수업시수가 곧 수당이므로 기왕 출근한 김에 한 시간이라도 더 수업하는 게 낫겠다 싶어 학교와 조율을 마친 결과였다. 이틀 동안 공강 없이 하루종일 수업이었지만 남는 사흘은 오롯이 내 시간이었다.


그 학교에는 사서선생님이 계셨다. 도서실의 은은한 조명과 센스 있는 소품들은 카페를 연상시켰다. 무엇보다 사서 선생님의 지도하에 도서부 활동이 활발했고, 책장들의 책 한 권 한 권에 생명을 불어넣은 느낌이 드는 곳이었다. 점심시간에는 학생들로 넘쳐났고, 나 또한 점심식사 후 도서실을 찾았다. 책 구경도 하고, 학생들 모습도 감상하고, 출근하지 않는 사흘동안 읽을 책도 빌렸다. 그곳에서 보내는 짧은 시간 덕분에 내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이었다. 조용한 분위기의 교무실에서는 시도하지 못했던 담소도 부담 없이 나눌 수 있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과 대화하는 일은 기분 좋았다. 학교 안에서 마음 편하게 방문하고 들릴 수 있는 곳이 있어서 행복했다.


시간강사로 일 년 반을 근무하면서 얼굴을 마주치고 대화 나눌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학교에 머무는 시간 중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을 제외하고는 교실에서 수업을 하는 게 전부였다. 같은 교무실 대여섯 분의 선생님 외에는 얼굴도 이름도 알지 못했다. 수업 경감을 위한 강사라, 해당 선생님께서 대부분의 행정업무를 하셨다. 매월 말 수업정산 확인서, 학교 일정이나 시정표 공유 등 나와 학교를 연결해 주는 유일한 연결끈이었다. 바쁘신 데다 내가 학교에 머무는 시간이 짧아 그 외의 대화를 나누기는 어려웠다. 그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곳이 도서실이었다. 도서실에 계시는 사서 선생님은 교무실에서와 달리 밝고 편해 보였다. 나도 편하게 말을 걸 수 있었다.


퇴근 후에도 출근하지 않는 날에도, 아이들이 잠든 후에는 주로 책을 읽었다. 전문서적이나 심오한 내용의 책이 아니었기에 술술 읽혔다. 그리고 다음 주 출근하면 또다시 학교 도서실로 향했다.


9월 독서의 달을 맞아 도서실 주변이 분주해지던 어느 날. 도서실 입구에 커다란 포스터가 눈에 들어왔다.


'교내 독서왕 선발'


교직원 부문 1위의 영광을 안았다. 처음엔 부끄러웠다. 다른 교직원들은 일하느라 책 읽을 시간도 없는데, 나만 혼자 시간 많은 티 낸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심지어 난 교사도 아니고 강사인데. 다른 사람들이 내 이름을 보고 누구인지 알기나 할까. 일은 안 하고 맨날 책만 읽는다고 욕하진 않을까.


그 후엔 기뻤다. 1위를 해서가 아니라, 나의 잦은 방문이 기록으로 남았고,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구나 싶어 뿌듯했다. 그래, 내가 책을 좀 많이 읽긴 했지. 꾸준함이 얼마나 어려운 건데. 혼자 칭찬했다.


부상으로 원하는 책 한 권을 준다기에, 온라인 서점을 한참 뒤적이며 설레는 마음으로 골랐다. 선물로 책을 받아본 게 언제였나 싶을 만큼 생각이 나지도 않았다. 가성비를 따지며 사는 대신 빌려 읽는 걸 선호하지만, 원하는 책을 선물 받는 기분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행복했다.


고심 끝에 내 돈 주고는 사지 않을 것 같은, 적당히 가격도 있으면서 밑줄 치면서 읽어보고 싶은 책을 겨우 골랐다. 김난도 교수의 2023 경제트렌드. 거창한 시상식도 없고, 포스터에 이름 석자 적히고, 책 한 권 받는 독서왕이지만 부상으로 건네받는 책 한 권으로 일주일이 행복했다.


책을 소장하는 기쁨만 한껏 누렸나 보다. 2023 경제트렌드는 완독 하지 못했다.

어느덧 2025 경제트렌드가 출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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