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R 카드 리더기를 처음 접하다
진단평가를 쳤다. 이 결과를 통해 학생들의 기초학력을 확인하고, 개별 지도가 필요한 학생을 선정한다.
거의 매일이 새로운 3월의 나날들 중, 시험감독은 부담이 없다. 모의고사는 물론, 수능감독까지 해봤던 경험 덕분인지, 내신성적에 반영되지 않는 시험의 성격 때문인지 마음이 마냥 가벼웠다.
읽을 책을 한 권 챙겨갈까 잠시 고민했다. 고등학교에선 모의고사 감독 때 노트북을 챙겨가서 일을 하거나, 책을 가져가서 읽기도 했다. 시험 시간이 길기도 하고, 감독이라고 해봤자 시험지와 OMR 카드 나눠주고 걷는 일 외에는 특별히 할 일이 없다. 시간표에 따라, 어떤 때에는 이미 한창 문제를 풀고 있는 상황이라 아무것도 없이 들어가면 한 시간 내내 멍 때 리거나 공상을 해야 했다.
여기는 3월의 중학교. 45분간의 진단평가. 감독하면서 책을 읽을 여유는 없을 것 같았다. 볼펜 한 자루 쥐고 들어갔다. 부정행위 방지를 위해 2학년, 3학년이 한 교실에 섞여 있었고, 남는 시간 동안 두 학년의 시험지를 차례대로 풀었다. 술술 풀리는 문제에 잠시 기분이 좋았다가, 기초학력 미달을 가려내기 위한 문제라는 생각에 금세 민망해졌다. 그나저나, 시험지 표지의 학교 이름 란에 A 초등학교를 썼다가 지우고, A 중학교라고 쓴 녀석은 뭐지? 이런 녀석들을 앞에 두고 독서할 생각을 했다니. 참 나도 너무했다.
시험이 끝난 뒤, 과목별로 OMR 카드를 읽고 성적처리를 한다. 시험감독은 여러 번 해봤지만, 성적처리는 처음이다. 그동안 동학년을 함께 맡았던 선생님들께서 말없이 해주신 덕분에 직접 해볼 일이 없었다.
난생처음 OMR 카드 리더기 앞에 앉았다. 더블클릭 몇 번 만에 OMR 카드에 기록한 답이 화면에 주르륵 떴다. 한 학급의 답안지를 모두 읽는데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기계 안으로 들어간 카드는 반대편 보관함에 착착 꽂혔다. OMR 카드를 십수 년 써오면서, 속도와 정확도에 새삼스레 놀랐다. 그동안 교무실 한켠에서 들리던 드르륵 거리는 소리의 정체를 이제야 알았다.
처음 OMR 카드 리더기를 돌려본 기념으로 옆자리 부장님 몫도 자처해서 맡았다. 협의록을 쓰느라 머리를 싸매고 있는 모습을 보며, 동교과로서 자신 있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이다 싶어 카드를 빼앗다시피 했다. 나도 도움을 줄 수 있어 뿌듯했다. 업무를 하면서 매번 부장님께 물어봐야 진행되지만, 내 업무인 것 같은데 부장님이 절반은 함께 해주고 있지만, 이렇게라도 보탬이 될 수 있어서 괜히 흐뭇했다.
자신 있게 파일을 보내주면서 또 하나 배웠다. 한 학년 카드를 한 번에 다 읽고 파일 하나로 만들면 된다는 것을. 굳이 반별로 따로 읽고, 따로 저장하지 않아도 됨을 뒤늦게 알았다. 반별로 일일이 따로 저장한 파일을 전달하면서 아주 잠시 머쓱했지만, 새로운 것을 접한 기쁨에 금방 사라졌다. 이래서 사람은 배워야 되나 보다.
이제 정답을 입력하는 방법을 또 배워야겠다. 돌아오는 중간고사 때에는 이 작업까지 내가 다 해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