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기 전 작가에 대해 아는 것이 좋다. 작가의 얼굴, 태도, 철학, 업적 등을 지니면 작가의 상이 그려진다. 읽는 동안 작가가 책의 내용을 이야기해 주는 것 같다. <당신은 결국 무엇이든 해내는 사람>을 읽기 전에도 작가가 궁금했다. 책날개의 작가 소개에 '확신을 결과로 치환하는 사람. 결국 무엇이든 해내는 사람'이라고 적혀있었다. 투지로 인생을 성공시킨 이의 느낌이 강했다. 그는 카페와 출판사를 성공시킨 30대 젊은 남성이었다. 멀끔한 프로필 사진을 보며 인생의 연륜이 묻지 않은 젊은이가 무엇이든 해내라고 하는 것이 조금 미심쩍었다. 하지만 서문부터 의심은 깨졌다. '인생에 대해 나만이 할 수 있는 대답이 있으니 삶의 중심을 잡으라'는 메시지는 묵직하며 강렬했다. 나만의 대답을 찾기 위해서는 '시작'해야 한다.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았었다. 공부도 저절로 시작되었고 이후 입시까지 긴 마라톤의 과정을 겪어내야 했고, 취직도 반이라 하기에 입사 이후 직장의 일은 녹록지 않았다. 이뿐 아니다. 출산은 반은커녕 육아와 양육이라는 거대한 굴레의 한 점 크기였다. 그런데 어려운 '시작'이 있다는 것을 이제 안다. 아이 셋을 정성으로, 열정으로 멋지게 키워내신 친정엄마는 자녀들이 모두 집을 떠나고 달라진 일상에 적응해야 했다. 그중 중요한 미션은 '좋아하는 일을 시작하라'였다. 고민해 본 적 없고, 내성적인 성격에 안정을 추구하는 기질인 엄마는 그 어떤 것보다 어려운 숙제를 짊어진 듯 보였다. "시작해야지. 뭐든 해야지. 생각하고 있어." 늘 대답하셨지만 이것저것 제안해 봐도 이런저런 이유로 고사했다. 처음에는 잘 이해하지 못하고 답답하다는 표현도 섞였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되었다. 어떤 시작은 쉽지 않다.
201쪽, 마음속에 무엇인가가 끓어오른다면, 지금이 바로 시작할 때입니다.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끓어오른 마음은 이내 식어갈 것입니다. 그렇게 식어가는 마음에는 불안이 자리 잡게 되고, 불안은 곧 걱정을 낳고, 걱정은 망설임을 심어주게 됩니다. 악순환의 반복인 셈이지요.
어떤 시작이 쉽지 않은 걸까? 시작이 어려운 첫 번째 이유는 책에서 말하는 '끓어오르는 것'을 발견하기 쉽지 않아서다. 6개월 넘도록 함께 해 온 독서모임에서 이 책을 읽은 뒤 시작하고 싶지만 미뤄온 것을 나눴다. 시작하고 싶었던 것? 이런저런 일들을 숱하게 찔러보고 다니던 최근 몇 년의 나를 떠올렸다. 스스로 사춘기의 자아 형성 시기라고 생각될 정도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치열하게 찾아왔던 시간들이었다. 어릴 적부터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은 시작에 대한 고민이 없었다. 그런데 아이 둘을 낳고 사회생활과 조금 떨어져 있는 시기에 불현듯 내 안에서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나는 뭘 좋아하지?"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그때부터다. 시작하고 싶은 것을 찾아온 것이. 무려 5년째다. 주어진 일이 아닌 만들어가는 일에서 시작은 어렵다.
129쪽, 실패하면서 느낀 경험과 감정들을 기록했고, 보완할 것들을 찾아나갔습니다. 잘되고 있는 카페를 찾아다니며, '이 카페는 왜 잘되는지', '사람들이 이 카페를 왜 좋아하는지' 저만의 기준들로 분석해 나갔습니다. 그런 시간들이 계속 이어지고 쌓이게 되자 저만의 관점이 생겼고, '사람들이 즐기고 느낄 수 있는 공간'에 저만의 방식을 구체적으로 생각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189쪽, 노력은 디폹트값입니다.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가 있다면 당연히 뒷받침되어야 하는 필수 요소입니다.
시작이 어려운 이유는 또 있다. 시작은 말 그대로 '시작'이기 때문이다. 이후 펼쳐져야 하는 노력이 얼마나 큰지 알기에 머뭇거려진다. 이 책의 저자도 연남동의 '카페 공명'을 성공시키기까지 숱한 시련과 노력의 과정을 적었다. 성공하는 많은 이들이 성공 비법으로 꼽는 것 중 하나가 '절실함'이다. 절절하게 매달리고 기꺼이 많은 것을 희생하는 에너지를 써야 비로소 원하는 지점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행위의 목표가 거대한 성취는 아니겠지만 리스크 없는 것의 시작은 그리 망설일 필요도 없을 것이다. 시작 뒤에 감당해야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시작의 발목을 잡는다.
이쯤 되면 프로 변명러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시작이 쉬웠던 어릴 적으로의 향수가 짙어진다. 겁낼게 많고 생각이 많아지는 것이 나이 들어감의 반증인 듯하다. 시작이 어렵다고 항변하지만 이 책은 충분히 좋았다. 시작으로 새로운 지평이 열린다는 것, 그것이 내 삶을 두근거리게 만들 것으로 설득했기 때문이다. 결국 해내기 위해 시작할 용기가 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