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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박스 UNBOX Jan 11. 2023

이스트 오캄: 세상에 하나뿐인 가치를 담은 공간

side b Vol.4 이스트오캄 손헌덕, 김지혜 디렉터·메이킹 디자이너

브랜드 언박싱(brand unboxing)은 브랜드를 만드는 사람들의 다양한 관점과 생각을 기록하는 인터뷰 프로젝트입니다. 브랜드 언박싱의 뒷면, side b는 성수동에 색을 입히고 이야기를 채워가는 로컬 크리에이터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이스트 오캄(East oklm)이라는 이름이 독특해요. 

손헌덕: 오캄(oklm)은 불어 'au calme'의 영문 줄임말이에요. 프랑스 라이프스타일을 뜻하기도 하는데, 여유로운 삶을 지향하는 차분하고 편안한 상태를 의미해요. 저희가 지향하는 바, 그리고 취향을 담았어요. 저희 둘 다 여유 있고 편안한 실루엣의 옷을 좋아하거든요. 


공간의 분위기, 여기에 걸린 옷들과도 잘 어울리는 이름이에요. 브랜드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손헌덕: 이스트 오캄은 리메이크(remake) 옷을 만드는 리빌드(rebuild) 브랜드예요. 새로운 것을 제시하기보다는 기존의 것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며 소외된 것에 대한 가치를 재창출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모든 제품은 저희가 직접 디자인하고 제작하는데, 세상에 하나뿐인 제품이에요. 


세상에 딱 하나인 옷이라니, 더 특별하고 소중한데요. 

김지혜: 이스트 오캄의 부제는 ‘I don’t like the best, I love the only one.’ 예요. 저희가 연애할 때부터 자주 쓰던 문장이기도 한데요, 가장 좋은 것보다 하나밖에 없는 게 더 사랑스럽다고 생각해요. 지금 저희가 만드는 옷들도 같은 맥락인 것 같아요. 


이스트 오캄은 부부이자 공동 디렉터 겸 메이킹 디자이너인 손헌덕, 김지혜 디렉터가 함께 만드는 브랜드다.


세상에 하나뿐인 옷을 만드는 브랜드의 시작이 궁금해져요.  

손헌덕: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기보다는, 좋아하는 것을 같이 해보자는 막연한 생각에서 시작했어요. 저는 원래 음악 작업을 했는데, 작업할 수 있는 공간을 찾고 있었어요. 그렇게 찾게 된 곳이 첫 매장이 있던 서울숲 근처 지하 1층 공간이었고요. 그 공간이 생각보다 너무 넓어서, 비워두기보다는 거기서 우리가 좋아하는 옷을 같이 만들어보자고 생각했죠. 저희 둘 다 옷을 정말 좋아했고 패션에 관심도 많았거든요. 


김지혜: 함께 작업실을 구하려고 꽤 오랫동안 알아보고 있었는데 그 공간을 보자마자 ‘여기다!’ 싶었죠. 그렇게 2017년에 이스트 오캄을 시작했어요. 당시에 저는 연무장길에 살고 있었는데, 그때도 성수동 특유의 따뜻한 분위기를 좋아했거든요. 


손헌덕 디렉터 겸 메이킹 디자이너(우).


성수동 작업실 빈 공간이 이스트 오캄의 시작이 되었네요. 옷은 어떻게 만들기 시작하셨어요? 

김지혜: 옷은 좋아했지만 만드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어요. 저는 모바일 마케팅 회사에 다니고 있었거든요. 처음부터 ‘리메이크 의류를 만들자’ 하고 시작한 건 아니었어요. 처음에는 저희가 디자인을 하고 공장에 넘겨 생산하는 방식으로 진행을 했는데, 잘 모르다 보니 제작 업체와 커뮤니케이션하는 것도 너무 힘들더라고요. 기대했던 퀄리티로 완성되지도 않았고요. 7-80% 정도가 불량이었어요. 


손헌덕: 또 소량으로만 제작을 의뢰했었거든요. 그래서인지 업체의 제작 순서에서 계속 밀리더라고요. 제품이 나오기까지 두 달 넘게 지연이 되는 일도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상품으로써 가치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감정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너무 소모적이었고요. ‘이럴 바엔 우리가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 옷을 만드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게 됐고, 자연스럽게 리메이크 제품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어요. 


이스트 오캄 한편에 마련된 손헌덕 디렉터의 음악 작업 공간


두 분 다 전혀 관련이 없는 일을 해오셨잖아요. 취향과 감각으로 멋진 옷을 그려낼 수는 있어도, 이걸 실제로 만들어 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 같아요. 

김지혜: 그래서 처음에 공부를 정말 많이 했어요. 일본에 참고할 수 있는 책들이 많다고 어설프게 전해 듣고 무작정 일본으로 가 책을 사 오기도 했고요. 둘 다 일본어도 못하는데요. 


손헌덕: 나중에 생각해 보니 왜 한국에서 먼저 책을 찾을 생각은 안 했나 싶더라고요. 그때는 괜히 조급한 마음이 들어서 ‘일단 일본에 가면 뭐라도 배울 수 있을 거야’ 하는 기대를 했던 것 같아요. 일본에 다녀와서 재봉틀도 사고, 책을 보며 옷을 매일 뜯고 붙이고 하는 작업을 했어요. 


김지혜 디렉터 겸 메이킹 디자이너


두 분이 옷을 만드는 과정이 궁금해요. 

손헌덕: 역할을 명확하게 구분하기보다는 유기적으로 함께 하고 있어요. 서로 이야기를 정말 많이 하거든요. 저희가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공유하며 외부적인 요인보다는 저희 스스로에게 집중하며 작업하는 편이에요. 아이디어를 구체화할 때도 저희가 주로 많이 사용하는 재료들, 예를 들면 데님이나 테일러 원단 등을 활용하는 패치워크 작업이나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것과 관련된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디벨롭하고요. 


김지혜: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자연스럽게 작업에 대한 영감을 많이 얻게 돼요. 영화를 보다, 음악을 듣다, 혹은 어떤 건축물을 봤을 때 서로의 느낌과 생각을 공유해요. 이렇게 대화하다 보면 해결 방법을 찾게 되더라고요. 둘의 의견과 취향을 모두 담아내는데도 도움이 되고요. 지금 손헌덕 디렉터가 입고 있는 옷도 그렇게 완성했는데, 안쪽은 제 취향이 담겼고 바깥쪽은 손헌덕 디렉터의 취향이 반영됐어요. 


매장 한가운데 마련된 작업 공간


2017년 오픈한 첫 번째 공간에 이어, 성수동에서의 두 번째 공간이에요. 두 번째 공간은 어떤 부분에 가장 초점을 맞추셨나요? 

손헌덕: 이스트 오캄의 과거, 그리고 미래를 이어주는 공간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서울숲 매장에도 있던 살롱(salon)은 그대로 유지하고, 오시는 분들 모두가 좀 더 편안하게 즐기다 갈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어서 바(bar)도 마련했어요. 또 저희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공간에서도 잘 보이도록 작업 공간을 매장의 한가운데 뒀고요. 


매장 한쪽에 살롱과 바를 마련한 것도 인상적이에요. 

손헌덕: 살롱은 맨 처음 이스트 오캄을 시작했을 때부터 구상했었어요. 방문하는 분들이 부담 없이 들러 편안히 쉬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해서요. 여기서 나누는 가벼운 대화가 누군가에게는 터닝 포인트가 될 수도 있는 거잖아요. 우리 매장에 이런 소중한 기억들이 모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같이 영화도 보고 감정을 나누고 싶기도 했고요.  


바에는 와인을 비롯한 주류, 음료 보관이 가능한 냉장고가 놓였다.


맞아요, 목요일마다 영화 상영도 하시잖아요. 영화는 누구나 와서 볼 수 있나요? 

김지혜: 누구든 오실 수 있어요. 2017년 오픈했을 때부터 시작했는데, 팬데믹으로 2년 정도 중단했다가 얼마 전 다시 시작했어요. 지금 거의 140편 넘게 상영한 것 같아요. 저희가 좋아하는 영화나 계절에 잘 어울리는 영화를 매주 한 편씩 선정해요. 오시는 분들과 같이 영화를 보고 감상을 나누는 게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것 같아요. 


손헌덕: 브랜드를 시작하고 나니 문화생활을 할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우리도 즐기면서 다른 분들도 같이 편하게 영화를 보면 어떨까 싶었던 거죠. 간단한 다과와 맥주 같은 것도 준비하고요. 우리나라에서는 사실 모르는 사람과 눈인사하거나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는 게 좀 낯설잖아요. 같이 영화를 보면 그런 벽이 좀 허물어지는 것 같더라고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저희의 주중 이벤트예요. 


매주 목요일마다 영화가 상영되는 스크린


살롱에서 이야기도 나누고, 영화도 함께 봐서 그런 걸까요? 손님과 정말 친구처럼 가까운 느낌이에요. 

손헌덕: 지금 매장에서 같이 일하고 있는 친구도 손님으로 와서 알게 된 사이예요. 이번에 이사하면서 음악 작업대나 카운터, 바 테이블 같은 가구들을 직접 제작했거든요. 이때 필요한 목공 작업도 다 주변 이웃들이 도와줬고요. 이것 외에도 에피소드가 정말 많아요. 지금 제가 하고 있는 목도리도 손님이 선물해 주신 거예요. 어머님과 자녀분이 함께 오셨는데, 어머님께서 직접 뜨개질해 주셨어요. 손님 댁에 초대받은 적도 있고요. 감사한 인연들이 많아요. 


김지혜: 한 번은 영국에서 오신 손님이 있었어요. 처음 오셨을 때는 어떤 일을 하시는 분인지 전혀 몰랐거든요. 몇 번 더 오셔서 살롱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가까워졌는데, 브랜드를 바잉하고 소개하는 일을 하시는 분이더라고요. 영국으로 돌아가시고 얼마 후에 런던에서 전시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을 해주셨어요. 그래서 2019년에 쇼디치(Shoreditch)에서 작은 전시를 한 적도 있어요. One and only라고 하니 다들 관심이 많더라고요. 꽤 많은 분들이 방문했었고, 가져간 제품들도 다 판매하고 돌아왔었죠. 


2019년 런던 쇼디치에서 진행한 이스트 오캄의 첫 번째 전시


손헌덕: 전시 마지막 날에 그곳에서 결혼식도 올렸어요. 저희가 만든 옷을 예복으로 입고요. 친구들, 영국과 근처에서 유학 생활을 하던 손님들, 그리고 그때 마침 런던을 방문한 손님들이 하객으로 와주셨어요. 결혼식 인스타그램 라이브를 했는데, 성수동 매장을 자주 찾아주시던 손님들도 접속해 실시간으로 축하해 주셨던 것도 기억에 남아요. 



브랜드를 시작한 지도, 성수동에 자리 잡은 지도 벌써 6년째예요. 성수동의 매력은 뭘까요? 

손헌덕: 새로운 것과 기존의 것이 만들어내는 균형과 조화가 아닐까요? 새로 지은 빨간 벽돌 건물 옆에 오래된 가죽 공장이 있고, 그 옆에는 또 새로 시작한 감각적인 브랜드가 있고요. 이렇게 서로 다른 것들이 공존하고 있는 것 같아요. 아직까지는 조화롭지만, 앞으로도 이런 균형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겠죠. 


김지혜: 지금의 성수동은 정말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것 같아요. 변화하는 중에도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본과 감각이 함께 들어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감각 없이 자본만 들어온다면 이 동네가 가진 매력을 지키기가 쉽지 않으니까요. 또 하나 덧붙이자면, 여러 가지를 다양하게 경험할 수 있다는 점도 성수동의 매력인 것 같아요. 좋은 식당과 카페, 좋은 브랜드도 많잖아요. 또 전시나 영화 관람 같은 문화생활을 즐길 수도 있고, 숲을 걸을 수도 있고요. 




그럼 앞으로의 이스트 오캄은 어떤 모습이기를 바라나요? 

손헌덕: 작고 단단한 브랜드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쇠구슬, 총알처럼요. 덩치가 크고 비어있는 브랜드보다는, 작더라도 우리만의 색깔이 뚜렷하고 우리만 할 수 있는 일들을 꾸준히 계속해 나갈 수 있는 브랜드로 남고 싶어요. 또 저희가 어떤 작업을 하고 있는지, 작업 과정의 디테일을 꼼꼼하게 보여줄 수 있는 기록을 남겨보고 싶기도 하고요. 


성수동의 이 공간은요? 

김지혜: 안 좋은 일이 있더라도 여기에 오면 기분이 좋아지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공간이 되었으면 해요. 매장에 오시는 분들이 다 기분 좋게 왔다 가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이거든요. 앞으로도 혼자든, 반려견이나 동반자와 함께든 편하게 올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이스트 오캄, 서울 성동구 광나루로4가길 13 B1

https://eastoklm.com/



by. side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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