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de b Vol. 7 제인마치 메종 정재옥 대표
브랜드 언박싱(brand unboxing)은 브랜드를 만드는 사람들의 다양한 관점과 생각을 기록하는 인터뷰 프로젝트입니다. 브랜드 언박싱의 뒷면, side b는 성수동에 색을 입히고 이야기를 채워가는 로컬 크리에이터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제인마치 메종을 소개해주세요.
제인마치 메종은 새촌마을에 위치한 라이프스타일숍이에요. 제가 그림을 그려 만드는 핸드드로잉 세라믹과 패브릭 시그니처 제품들, 그리고 빈티지 소품을 만나볼 수 있어요.
공간에 들어서면 대표님의 취향이 손에 잡히는 것 같아요. 제인마치 메종의 시작이 궁금해요.
전에는 패션 회사에서 꽤 오랫동안 일을 했어요. 18년 동안 VMD(공간 기획, Visual Merchandiser)를 시작으로 광고, 신규 브랜드 론칭을 총괄하는 일까지 다양한 업무를 했었죠. 일을 하다 보니 패션을 기반으로 하되 좀 더 넓은 범위의 라이프스타일을 다뤄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고, 그렇게 웨딩 컨설팅을 시작해 지금의 제인마치 메종까지 이어진 것 같아요. 이 공간은 해외 출장을 다니며 모은 빈티지 웨딩드레스와 테이블웨어를 셀렉해 소개하는 공간으로 시작했어요. 돌이켜보면 여러 나라를 다니며 좋은 감각을 쌓았던 것 같아요. 원래도 호기심이 많아 어딜 가든 작은 골목의 구석구석을 다니는 걸 좋아하거든요.
웨딩 컨설팅과 라이프스타일숍이라니, 어울리지 않는 듯 잘 어울리는데요.
우리나라의 결혼식은 유난히 획일화되어 있잖아요. 결혼이라는 건 굉장히 특별한 일인데, 그만큼 개인의 취향과 스타일이 잘 반영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출장을 다니며 모은 빈티지 웨딩드레스가 제게 굉장히 좋은 아카이브가 되기도 했고요. 지금은 컨설팅은 지금 거의 하지 않고 제인마치 메종에 집중하고 있어요. 웨딩 컨설팅은 의미 있는 일이지만 그만큼 쉽지 않더라고요. 하객 30명이 오든 3,000명이 오든 똑같이 어려웠지만, 제가 준비한 모든 웨딩이 하나하나 다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있어요.
제인마치라는 이름은 어떻게 지으셨나요?
동생과 함께 웨딩 컨설팅 회사를 준비할 때 지은 이름이에요. 브랜드를 하게 된다면 부르기 쉽고 한 번 들었을 때 잊히지 않는 이름을 짓고 싶었어요. 여러 가지 단어들을 두고 고민하다 동생의 이름인 제인(JANE)과 제가 좋아하는 봄, 3월을 의미하는 March를 조합해 봤는데 마음에 들더라고요. 3월은 사람을 설레게 하는 뭔가가 있잖아요. 또 웨딩 마치(Wedding March)라는 말에도 설렘이 느껴지고요.
성수동에 자리를 잡게 된 배경이 궁금해요. 지하철 역이나 서울숲에서도 꽤 먼, 작은 새촌마을에요.
함께 재미있는 걸 해보자고 제안한 지인이 먼저 새촌에 와 자리를 잡았어요. 처음 웨딩 컨설팅을 시작했을 때는 압구정에 사무실을 마련했었는데, 마침 새로운 곳을 찾다 새촌으로 오게 된 거죠. 그렇게 2016년쯤 왔는데, 골목에 빨간 벽돌집이 모여있는 그 분위기가 너무 귀엽고 좋았어요. 그때만 해도 여기에 상업 공간이 없었어요. 지금은 와인숍과 카페, 식당도 꽤 많죠.
공간을 구성할 때 어떤 점을 가장 신경 쓰셨어요?
제가 파리의 편집숍 메르시(Merci)와 지금은 없어진 생토노레 거리의 콜레뜨(Colette)를 정말 좋아하거든요. 메르시에는 편안함이, 콜레뜨에는 유니크한 특별함이 있어요. 제인마치 메종은 이 두 가지가 함께 느껴지는 공간이길 바랐어요. 바깥에서 보이는 큰 유리창에는 콜레뜨의 쇼윈도처럼 매 시즌 달라지는 특별함이 느껴지고, 안으로 들어오면 커다란 우드 테이블이 놓여 우리 집 식탁 같은 편안함이 느껴지는 식이죠. 공간도, 여기 놓인 소품들도 이 골목과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도록 구성했고요.
처음에는 창가에 빈티지 웨딩드레스들을 걸어뒀거든요. 카페도 식당도 없던 골목인데, 창가에 드레스가 걸려있으니 여기 사시던 어르신들이 깜짝 놀라셨어요. 아침에 출근할 때면 밤사이에 바깥 창문에 이마 자국이 나 있는 거예요. 차마 들어오지는 못하시고 창문으로 어떤 공간인지 보고 싶으셨던 거죠. 그때 마을의 할머님들이 여기를 드레스길이라고 부르셨어요. 너무 귀여운 에피소드라 기억에 남아요.
어찌 보면 아름답고 소중한 것들을 모아둔 작업실에서 빈티지 셀렉트숍으로, 핸드드로잉 세라믹을 선보이는 라이프스타일숍으로 진화해 온 것 같아요. 핸드드로잉 세라믹은 이제 제인마치 매종을 대표하는 아이템이 됐고요. 어떻게 만들기 시작하셨어요?
코로나19가 계기였어요. 외국에 갈 수 없으니 빈티지 제품들을 셀렉해 오기가 쉽지 않았고, 그렇다고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것들을 두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그러다 핸드드로잉 세라믹을 떠올리게 된 거죠. 그렇게 1년 가까이 혼자 만들고 써보며 테스트 기간을 가졌어요. 처음부터 판매를 목적으로 만든 건 아니었고, 잘 만들어진다면 주위 사람들에게 선물이나 해봐야겠다는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SNS 계정에 사진을 올리니 반응이 너무 좋더라고요. 처음엔 스페셜 에디션 개념으로 판매하기 시작했어요.
핸드드로잉 세라믹만의 특별한 점은 뭘까요?
저희 엄마도 그릇을 정말 좋아하셨는데, 열심히 모으시고는 가장 좋고 아름다운 것들은 장식장에만 두셨어요. 너무 비싸기도 하니 혹여 깨트릴까 조심스러워 아껴두고만 계셨던 거죠. 저는 좋은 걸 먼저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또 한편으로 너무 비싼 제품들은 나도 못 쓰겠다 싶더라고요. 제가 만드는 것들은 쓰다 망가져도 너무 아쉽지는 않지만 세상 어느 것보다 특별한 의미가 담겼으면 해요. 또 어디에 둬도, 누가, 어느 때에 써도 이질감이 없도록 도드라지지 않게 만들고 있고요. 나도, 부모님도, 아기와 할머니까지 누구나 쓸 수 있도록요.
각각 다른 이름이나 메시지가 담긴 생일 접시는 정말 특별하게 느껴져요. 주는 사람에게도, 받는 사람에게도요.
제인마치 메종에서 가장 사랑받는 제품이기도 해요. 제가 만들 때도 너무 재미있어요. 하나하나의 이니셜과 이름은 마음을 담아 써드리고 있어요. 접시에 새겨진 이름들을 직접 만나본 적은 없지만, 축하와 진심을 담아서요. 이 따뜻함이 그대로 전달되나 봐요.
가장 애착이 가는 핸드드로잉 세라믹 에디션이 있다면요?
시그니처인 파리 스트릿 사인 라인과 에펠 라인이죠. 다른 건 못하더라도 이 두 가지는 꾸준히 가져가고 싶어요. 어떤 매장을 갔을 때 딱 떠오르는 제품이 있잖아요, 파리에 가면 메르시의 에코백을 사는 것처럼요. 이 시그니처 제품들이 제인마치 메종에서 그런 역할을 했으면 해요.
다른 브랜드들과 협업도 여러 번 하셨잖아요. 협업을 할 때 지키는 특별한 기준이 있나요?
브랜드나 카테고리에 제한을 두지는 않고, 제인마치가 잘 담아낼 수 있을지만 고려해요. 국내 브랜드건, 글로벌 브랜드이건 간에 제인마치스럽게 잘 표현해 낼 수 있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야 서로 시너지를 낼 수 있으니까요. 협업에 대해서는 항상 열려있고, 앞으로도 재미있고 새로운 것들을 많이 해보고 싶어요.
모두 소중하겠지만, 협업한 브랜드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브랜드가 궁금해요.
굳이 꼽아보자면, 가장 처음 진행했던 에스티로더와의 협업이 기억에 남아요. 패키지에 봄 느낌이 나는 화사한 꽃을 그려 넣었었는데, 처음 해보는 거라 아쉬운 점도 많았거든요. 대단한 건 아니지만 많은 분이 좋은 피드백을 주셔서 기분이 좋았어요. 그때를 계기로 다른 브랜드와의 협업을 꾸준히 이어온 것 같고요. 작년에는 벤시몽과도 협업해 모자와 티셔츠 등 제품을 출시했었는데, 3일 만에 모두 팔렸어요. 벤시몽이 국내 브랜드와 협업한 첫 사례였는데, 좋은 결과로 이어져서 정말 뿌듯했죠. 오는 4월에는 발렌티노(Valentino)와 협업이 예정되어 있어요. 서울과 밀란, 도쿄, 뉴욕 등 전 세계 7개 도시의 빈티지 스토어와 협업하는 ‘발렌티노 빈티지’라는 프로젝트인데, 서울에서는 제인마치가 함께하게 됐어요.
여기에 있는 모든 소품과 핸드드로잉 세라믹에서 대표님의 파리 사랑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파리에 가면 이방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여러 나라에서 온 여행객이 많아서일 수도 있지만, 그냥 그 도시에 융화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파리를 사랑해요. 사실 처음 갔던 파리는 좋은 기억은 아니었어요. 겨울에 출장으로 갔는데, 너무 추웠고 사람들도 불친절하다고 느꼈거든요. 그런데 여름에 가보니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어요. 제가 이렇게 말하면 누군가는 ‘네가 진정한 파리를 못 봐서 그래’라고 말하기도 해요. 더러운 거리를 걷다가 개똥을 밟고, 쥐를 보고 놀라야 진짜 파리를 경험했다고 할 수 있다면서요. 근데 예쁜 것만 보기에도 모자란 시간이잖아요. 어디에나, 누구에게나 양면은 있는 거고요. 좀 더 좋은 모습을 기억하는 거죠.
파리를 비롯한 다른 나라로의 여행이 대표님에게 큰 영감이 되어주나요? 주로 어디에서 취향을 쌓으세요?
일상 속 다양한 곳에서 영감을 받지만, 새로운 공간이나 낯선 도시에서의 경험은 더 특별하게 다가와요. 코로나19로 외국을 나가기가 어려울 때는 영상 콘텐츠로 아쉬움을 달랬어요. 넷플릭스에서 다른 나라의 건축이나 집들을 보면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어릴 때부터 아름다운 것들을 정말 좋아했거든요. 저는 항상 무언가를 보고, 경험해야 하는 사람인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사물이 주는 즐거움은 오래가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마냥 비싸고 좋은 물건이나 작품보다는 의미 있는 것들을 찾게 되는 것 같아요.
성수동은 어떤가요? 성수동의 가장 매력적인 점을 꼽아본다면요?
새로운 것과 오래된 것, 젊음과 연륜이 공존한다는 점이요. 성수동에서는 오래된 공간 옆에 새로운 것이 들어오고, 식당에서도 젊은 친구들 옆에 어르신들이 앉아계셔도 어색하지 않게 느껴져요. 시간이 지나며 변하는 것들은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있어 줘야 할 것들은 그대로 있었으면 좋겠어요. 낡았더라도 닦아서 반짝이는 것들은 오래 둬야 하는 것처럼요. 반대로 새로운 것이 생기더라도 도드라지거나 튀지 않고, 자연스럽게 어우러졌으면 좋겠고요.
앞으로 제인마치 메종은 어떤 공간이 되기를 바라세요?
성수동에 오면 한 번쯤 들를 만한 공간이 되기를 바라요. 방문하면 잠깐 다른 곳으로 여행을 온 듯한 이국적인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고요. 서울로 여행 온 외국인들도 많이 방문하는데, 많은 곳 중 이곳을 찾아준다는 게 감사할 따름이에요. 저는 핫플(핫플레이스)이라는 말이 무서워요. 뜨거운 것은 언젠가는 식게 될 수 있잖아요. 핫플보다는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따뜻하고 편안한 공간이 되기를 바라요.
제인마치 메종, 서울 성동구 성수일로3길 8
https://www.instagram.com/janemarch_mai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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