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호제이 Jul 08. 2024

04. 집에 가고 싶어

둘째 아이가 태어나고 1~2년은 정말 병원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그 후에도 종종 입원을 하긴 했지만 초반에는 정말 입원을 많이 했었다. 열이 나면 수치가 바로 올라가서 뇌에 손상이 갈 수도 있으니 열이 조금이라도 나면 바로 짐을 챙겨 입원할 준비를 하고 병원으로 가야 했다. 예방접종을 하면 열이 잠깐 오르기도 하는데 예방접종을 한 날에는 열이 오를까 체온계를 재보면서 며칠 동안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한참 동안 둘째 아이를 데리고 나가는 게 무서울 정도였다. 열이 나고 수치가 오르고 뇌 손상이 오면 어쩌나 또 입원을 해야 하면 어쩌나 했었다. 돌이 지나고 그 후 따뜻한 봄에 나간 것이 첫나들이였다. 그때 사진이 있다. "이때, 둘째 첫 나들이었잖아."라고 내가 말하면 남편이 "맞아, 그리고 바로 입원했지."가 항상 우리가 사진을 보며 말하는 레퍼토리다. 그 첫나들이를 하고 와서도 열이 나서 다음날 바로 또 입원을 했었다. 그러니 겨울에 나가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었다.




한 번 입원을 하면 일주일은 기본이었다. 아이와 내가 가장 고통스러웠던 시간은 혈관에 주삿바늘을 꽂아야 하는 시간이었다. 입원하는 날 주사를 꽂고, 3-4일이 지나면 주삿바늘을 바꿔줘야 했다. 혈관이 얇기도 한데, 하도 입원을 많이 하면서 주사를 많이 꽂다 보니 혈관이 얇아지기도 했다. 

아직도 기억하는 날이 있다. 완전히 아기 때는 아닌 것으로 기억한다. 그날도 어김없이 열이 나서 병원에 입원을 하러 갔다. 주삿바늘을 꽂아야 하는데 혈관을 못 찾으셨다. 간호사 분들이 몇 차례 바뀌어 가면서도, 총 10번 이상을 아이의 팔이며 다리에 꽂았는데도 안 됐다. 아이는 너무 울어서 땀, 눈물, 콧물, 침이 범벅이 되어있었고, 나는 침착하려고 열심히 노력을 하였으나 내 몸에도 온통 식은땀이었다. 간호사 선생님이 혹여나 나 때문에 못하실까 봐 아이에게 금방 끝날 거라면서 괜찮다면서 괜찮은 척을 하다가 점점 시간이 지나고 부들부들 떨며 울고 있는 아이를 보니 이제 그만하고 싶었다. 그때 원장님이 들어오셨고 잠시 중단해 주셨다. 울고 있는 아이를 끌어안으니 나도 눈물이 막 나왔다. 혈관이 없으면 머리에라도 꽂아야 한다고 하셨다. 너무 무서웠다. 그날이었나 다음날이었나 주삿바늘을 꽂았었는데 다행히 혈관을 찾아서 머리에는 꽂지 않았다. 그날은 아이가 너무 고생하기도 했고 미안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나는 옆에서 아무것도 해 줄 수가 없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혼자 그 고통을 다 이겨내느라 힘들었을 아이가 너무 안쓰럽고 슬퍼서 병실에 들어와서 아이를 꼭 안고 한참 울었던 기억이 있다. 


아기 때부터 그렇게 입원을 수차례 하면서 주삿바늘을 꽂았다. 한 번에 되면 정말 너무 감사했다. 그렇게 한 번에 주삿바늘이 들어가면 이제 울지도 않고 잘 참는다. 그런 모습을 보면 안쓰럽다. 그래도 절대로 내색하지 않고 더 힘을 내서 "이제 다 컸네. 너무 멋져!"라고 말하며 엄지를 번쩍 들어 올린다.


-

감기가 걸려도 입원을 했고, 열이 나면 당연히 입원을 했다. 주삿바늘을 꽂고 이제는 병원에서 입원 생활을 시작한다. 

아이가 태어나고 초반 몇 개월정도는 입원할 때마다 아이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되기도 했고, 내가 페닐케톤뇨증이라는 병명을 받아들이기 힘든 시기이기도 했어서 그때는 정말 좋지 않은 생각을 하며 밤마다 울었다. 낮에는 아이랑 잘 지내다가도 밤만 되면 그렇게 슬펐다. 

그때는 또 돈도 별로 없고, 벌이도 시원치 않은 시기였는데 병원비가 꽤 나왔었다. 입원해 있는 동안 병실료, 검사비들이었다. 그때부터 아이 병원비를 따로 모으기로 하고 조금씩 모으고 있고, 지금까지도 그냥 모으고 있다. 나중에 유전자 가위가 잘 연구 개발되어 나와 치료를 하게 될 수도 있을지도 모르니.


아이가 아주 어렸을 적에는 물어볼 생각도 안 했었다. 선생님이 이제 퇴원해도 좋다고 할 때까지 기다렸다. 태어나고 몇 년은 뇌가 만들어지는 시기라 아주 중요하다고 하셨고, 수치가 완벽하게 정상이 되는 것을 확인하고, 아이의 컨디션까지 확인하고서야 퇴원을 시켜주셨다.

어느 정도 커서는 수치가 정상이 되면 "이제 퇴원해도 될까요?" 묻기도 했었다. 오래 있으면 오히려 다른 병을 얻어서 더 오래 있을 것 같았다.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병원 안에서 있는 시간은 꽤나 힘들었다. 아이가 어렸을 적에는 그냥 있었지만, 커서 말도 하면서부터는 집에 가서 아빠도 보고 싶어 언니도 보고 싶다고 빨리 집에 가고 싶다고 이야기했었다. 나도 그랬다. 나도 집에 가고 싶었다. 그래도 선생님께서는 완전하게 정상 수치와 컨디션이 좋아지면 보내주셨다.


지금은 입원 이야기는 하지 않으시고 약으로 처방받아 온다. 이런 날이 있을 줄이야. 병원에서 입원했던 초반에는 평생 이렇게 병원을 왔다 갔다 하며 입원을 자주 하게 될 줄 알았는데 말이다. 초반에 너무 입원을 자주 하기도 했고, 병원을 정말 많이 왔다 갔다 했어야 해서 남편과 이야기했던 것 중 하나가 "병원 근처로 이사를 가야 하나?" 고민을 하기도 했었다. 

만 5세쯤 되니 면역력이 생겼는지 그쯤부터는 입원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감기에 걸려도 이제 입원하지 않고 약만 타온다. 대신 피검사와 소변검사는 해야 한다. 피검사와 소변검사는 매달 해야 하는 것이라, 입원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이제는 입원하지 말자. 그냥 우리 다 같이 집에 있자.




매거진의 이전글 03. 불행은 한꺼번에 오는 거라더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