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부터 유독 삶의 방식에 대한 고민이 잦았다. 나는 지금 어떤 사람이며 어떤 사람이 되어 살아가야 할까. 이러한 사색의 시발점은 누군가가 품고 있는 제멋대로의 기대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부담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 뿌리는 아마 내가 사랑할지도 모르는 것들이 제 시기를 맞춰 나를 사랑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겠다. 네가 여러 가지 셈을 마치고 준비가 되었을 때, 언제든지 나를 사랑할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하고 기다리기 위함이겠다.
학창 시절에 나는 마음에 들지 않으면 구태여 가서 과격하게 일러야 했고, 뒤에서 겸손을 운운하며 앞에선 자랑하기를 좋아했다. 이처럼 그다지 고운 성격이 아니었던 내게 만약 단 하나의 가치를 주어주신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담백함’을 꼽고 싶다. 물론, 다정하고 싶기도 하고, 유순하고 싶기도 하고, 냉철하고 싶기도 하다만, 나는 내가 담백하게 다정하고, 담백하게 유순하며, 담백하게 냉철한 사람이기를 바란다. 깨끗하면서도 빛나지 않고, 친근하면서도 가볍지 않고, 맑으면서도 하얗지 않고, 단단하면서도 딱딱하지 않고, 부드러우면서도 무르지 않은 것. 담백하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유난히도 내리쬐는 창밖 해를 보며 해수욕장과 계곡을 떠올려 본다. 그 둘은 분명 비슷한 궤의 휴양지인데, 어쩐지 꼭 똑같은 것 같지만은 않다. 과연 어느 하나만을 좋아할 수 있을 것도 같다. 바닷물과 민물의 차이일 테다. 나는 가까운 곳에 주차장이 있어 사람이 복작복작 모여 있는 한여름의 해수욕장보단, 먼발치서 아버지가 꼬마를 업고 둥실 대며 조심히 걸어와야 하는 초여름의 계곡이 좋다. 들어갈수록 어두컴컴하게 깊어 허우적대게 만들기보다는 맑고 투명해 손을 집어 넣어 돌을 줍고 싶게 하는 그런 계곡이 좋다. 한바탕 놀고 난 뒤 짠내가 나 얼른 씻고 싶게 만들기보다는 흠뻑 젖어 있음에도 수박이 먹고 싶게 만드는 계곡이.
담백한 사람이 되고 싶다. 볕이 쨍쨍하게 괴롭혀도 얼굴을 찌푸리지 않고, 습한 기운이 온몸을 감싸도 포옹을 꺼리지 않으며, 소나기가 몰아쳐도 제 물결만을 따라 잔잔히 흘러가고 싶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해서 마음을 터놓기 쉽고, 어딘가 곧고 우직해 괜스레 믿고 싶어지는, 숱하게 불어오는 세상의 태풍 가운데서 요동치는 사람들을 안전하게 보듬어주는 존재가 되고 싶다. 그렇게 두려움 없이 사랑할 수 있는, 사랑해도 괜찮을 것만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분명 담백한 것은 싱겁다. 싱거워서 맛이 없다. 대부분 ‘싱겁다’라는 말을 좋은 의도로 사용하지 않기도 하다. 그럼에도 나는 남녀노소 편하게 즐겨 찾는 라면보다는 가끔 이유 없이 생각나는 도토리묵이 되고 싶다. 본연의 향이 강해 혼자 있어도 충분하기보다는 어느 양념과도 잘 어울려 버무리기 좋은, 몸에 해롭지 않은 묵이 되고 싶다. 맵거나 쓰거나 짜거나 달콤한 사람보다는 그저 그런 싱거운 사람을 꿈꾼다. 싱거운 것은 분명 맛이 없지만 특별한 매력을 지닌다. 그 매력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어쩌면 ‘맛이 없는 음식을 먹고 싶다’는 어불성설의 생각에서 ‘행복하지 않아도 살아가고 싶다’ 따위의 용기를 줄지도 모르겠다.
어느샌가부터 수려한 사람보다는 수수한 사람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 영화에서나 보던 나라에 고급스러운 호텔에서 밤을 보내기보다는 정겨운 언어가 오가는 근처 둘레길에서 손을 잡고 거니는 일을 아낀다. 저명한 학자들과 대단한 안건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하기보다는 사랑하는 이와 산문집 속 한 줄의 문장에 대해 소감을 나누는 일을 즐긴다. 특별함이 몽땅 사라지더라도 간단하게 행복할 수 있는 삶.
담백한 채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