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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팅게일 Apr 20. 2023

보건실에는 누가 살까?

3. 외로운 공기청정기


 얼마 전 보실이*들과 외로움을 사물로 표현하자는 주제로 글을 썼다. 그날은 유독 외로움의 ‘ㅇ’과 ‘ㅁ’ 사이에 낀 느낌이었다. 견고한 ’이응‘과 ’미음‘에서 빠져나오려고 해도 뚫릴 기미가 보이지 않아 갇혀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마음을 다른 누구도 아닌 보실이들과 논하고 싶었다. 내 나이를 반절로 쭉 자르면 저 애들 나이가 되기 때문이었다. 자른 반절을 다시 포개면 어느 정도 대칭을 이루지 않겠는가? 대칭적인 관계를 이루는 자들과 대칭적일 수 없는 마음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리하여 보실이들과 동그란 탁자에 둘러앉았다. 외로움의 ‘ㅇ’을 감싸 안은 형국이었다. 앉자마자 어떤 보실이가 외쳤다.


 “외로움은 공기청정기**에요.“ 이 친구의 눈앞에는 공기청정기가 있었다. 하필 왜 외로움을 공기청정기로 표현했을까. 단지 눈앞에 보여서인가? 궁금해서 이유도 말해보라 했더니 “혼자 일하는데 아무도 몰라주잖아요.”랬다.


 그 말을 듣자마자 공기청정기가 된 느낌이었다. 공기청정기와 다를 바 없는 보건선생. 공기를 정화시키는 필수불가결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돋보이지 않는다. 있으면 티가 안 나지만 없으면 티가 난다. 정말 이보다 나 같은 존재가 없다. (아, 물론 어느 선생님도 “당신은 하는 일이 없네요.”하고 말씀하신 적은 없다. 오히려 “일이 너무 많으시죠? 바쁘시겠어요.”하시는 분들이 많았다. 이는 친절한 선생님들이 곁에 계셔서 가능했지만, 평생 진정으로 공감받을 수 없다는 점에서 아무도 나를 아는 것 같지 않았다. 다시 말해 친절함과 와닿음은 조금 다른 개념이었다.)


 내가 들어와야만 비로소 채워지는 보건실에 출근하고 퇴근한다. 학교에 있는 그 누구도, 내 업무를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 없다. 인계해 주시는 분은 다른 학교로 떠나버리고 새로운 사업이 생길 때마다 친한 보건선생님들과 일처리 방법을 고안한다. 발령 당시에는 받아들이기 힘들었으나 시간이 갈수록 받아들이게 되었다. 어떻게 받아들였냐면, 위 사실을 한 글자 한 글자 정자로 새겨서 마음 안에 집어넣는 게 아니라, 꾸깃꾸깃 접어 겉표지에 ‘책임감’이라고 작성한 뒤에 삼키면 되었다. 다행히 나는 그만큼은 가능한 사람이었다.


 문제는 무슨 짓을 해도 외로움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학교 안을 떠나 학교 밖으로 나가도 정체를 찾을 수 없는 고독이 지속되었다. 가끔 엄마 아빠랑 함께 있을 때조차 그들이 그립곤 했다. 이 마음을 이해할 누군가가 있지 않을까 확률을 걸다가도 그런 사람은 없다는 생각에 절망한 적이 많다. 고독이라 함은 외로울 고, 홀로 독을 써서, 홀로 외롭다는 뜻이리라. 그 말은 단지 '혼자 있어서 외로운 거’를 뜻하는 게 아니어 보였다. 누군가와 같이 있어도 느낄 수 있는 게 고독이었다. 즉 ‘누군가를 만난 순간에도 혼자 외로움을 느낀다’는 뜻이리라. 본래 고독은 엉덩이가 지독하게 무거워서 쉽게 일어나지 않는 놈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외로움을 떨쳐낼 수 있는가. 위에서 말했듯이 ‘무슨 짓’이든 해서 없애려고 한 적이 있다. 춤 배우기, 새로운 사람과 만나기, 여행 가기, 옷 사기 등등. 슬프게도 안 먹히는 방법이었다. 영문을 모른 채 생애를 외로움으로 흘려보내는 일은 굉장히 고통스러웠다. 고독의 근본적인 원인을 찾고 싶었다.


 그런데 찾지 못하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찾을 수 없다. 수학 문제처럼 답이 있지 않다. 답을 찾으려고 파헤치는데 파헤칠수록 그 안에서 나오지 못하는 느낌이다. 그렇다면, 원인을 찾지 못한다는 사실을 찾은 순간부터 이미 찾은 게 아닐까.

 삶은 자주 그랬다. 알지 못한다는 걸 안 순간부터 알게 되고, 이해할 수 없다는 걸 이해한 순간부터 이해하게 되고, 말할 수 없는 걸 말하지 않는 순간부터 말하게 되었다. 신기하게도 그런 게 사람의 삶, 즉 인생이었다. (이게 왜 인생이냐 묻는다면 모른다. 아마 죽기 전까지 모른다고 말할 거다.)


 그러면 외로움의 원인을 찾지 못한다는 걸 찾은 후에는 무엇을 해야 하나?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외로움을 다정하게 토닥거리기로 했다.

‘외로움아, 너는 원래 그렇구나. 지금까지 그걸 모르고 밀어내기만 해서 속상했겠다.’

실컷 토닥거린 후에는 보람찬 이야기도 해야 한다.

‘오늘은 사람을 반듯이 바라봤어. 혼자 품은 기대감과 서운함을 제외하니 가능하더라.'

그 후에는 멋진 다짐을 약속한다.

‘자주 너에게서 도망치겠지만 영원히는 아니리라 믿어. 자주 너를 느낄 때마다 있는 그대로 살아볼게.'


이건 내 생애에서 외로움을 사랑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아직까지는 말이다.



* 보실이 : 보건실에 오거나 보건 수업을 듣는 학생들 또는 ‘라이팅게일’이라는 이름을 가진 글쓰기 자율동아리에 속한 학생들 (보건실에 자주 오는 학생들이 정해주었다.)

** 배경 사진으로 나오는 공기청정기는 삼성 공기청정기를 검색하여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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