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교사로 살아가는 이야기
나는 주로 말을 안 한다. 오늘도 누군가와 마주하여 대화한 시간을 합하면 1시간이 되지 않는다. 말을 하지 않는 첫 번째 이유는 말보다 생각이 더 많고, 두 번째 이유는 말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은 말을 끊임없이 할 수도 있는 병에 걸렸다. 예를 들면 집에서 유튜브 영상을 보다가 와이파이가 터지지 않으면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을 생각한다. 이재용 부회장은 와이파이가 터지지 않을 때 어떻게든 와이파이를 잡으려고 나처럼 이곳저곳 옮겨 다니지 않겠지? 애초에 와이파이를 사용하지 않을지도 몰라,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를 쓸 테니까. 그렇다면 이재용 부회장도 유튜브를 볼까? 본다면 어떤 영상을 주로 볼까? 나는 요리 브이로그를 자주 보는데 말이야, 아니 근데, 가장 좋아하는 요리 브이로거 홍시는 내일 뭐 먹으려나? ··· 이런 생각들을 말로 표현하기 충분한 시간 따위 없다. 어떤 시간을 줘도 부족하다는 뜻이다. 아무래도 치료할 수 있는 병이 아니라고 본다.
안타까운 일은 이 불치병에 대해 의논할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기꺼이 의논해줄 사람이 없기에 아예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해한다. 이재용 부회장이 데이터 무제한을 쓰는지, 와이파이를 쓰는지 궁금해할 인류는 없을 테니까. 어쨌든 접점이 없는 타인의 소소한 찰나를 상상해보는 일은 혼자여도 재미있다. 재미없는 일은 누군가와 어떤 식으로든 맞닿아야만 할 때 생긴다. 내게는 대화 내용뿐만 아니라 목소리, 2초의 정적, 순식간에 올라가는 입꼬리, 눈썹 찌푸림이나 억지로 웃는듯한 눈꼬리 같은 표현을 보고 상대방의 감정을 짐작하는 감각이 존재한다. 이 감각과 지금 가지고 있는 불치병이 합쳐지면 재미없는 일이 상시 대기 중인 인생을 살 수 있다!
얼마 전 아는 어른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샐러드와 파스타를 먹는 중이었는데, 한 어른께서 “유명하다고 해서 왔는데 생각보다 맛있진 않네. 내가 직접 키우는 채소로 만드는 게 더 싱싱하고 맛있을 것 같아.”하고 말씀하셨다. 바로 옆자리에서 얘기를 들으며 “정말요? 어떤 채소요? 완전 유기농이네요. 언제 한번 먹어보고 싶어요!”하고 맞장구를 쳤다. 다른 어른들께서도 “맛있겠네, 대단하네”하고 호응해 주셨지만 예전에 느끼지 못한 옅은 고요함, 올라가지 않는 입꼬리, 건조한 목소리가 그들의 불편함을 짐작하도록 만들었다. 결국에는 괜히 혼자서 아무 말을 하며 저녁 식사를 마쳤다. 그리고 채소를 키우시는 분은 일이 있으셔서 먼저 가시고, 남은 이들끼리 카페로 이동해 음료를 마시는데 어느 분께서 “아까 밥 먹는데 그 자리에서 불평하는 건 좀 아니지 않아?”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닌가. 아까 했던 짐작이 아주 정확했기 때문에 조금 슬퍼졌다. 나는 짐작만으로 끝을 낼 수 있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채소를 키우는 어른이었다면 그날 자기 직전까지 누워서 생각했을 것이다. ‘아무도 뭐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분위기가 좋지 않았어. 사실 다들 나를 싫어하는 건 아닐까? 말을 잘못했나 봐! 왜 이리 눈치 없는 말을 했을까?’하고.
그래서 말을 안 한다. 사람도 잘 안 만난다. 나이 앞자리에 3을 달고나니 유독 더 그런 인간이 되었다. 스스로가 무색무취한 사람처럼 여겨져 침울해진다. 문득, 최근에 진심을 담아 큰 소리로 웃었던 적이 있었는지 생각해본다······
2시간 전이네. 생각보다 잘 웃으며 살고 있었구나. 그런데 솔직히 누구라도 이런 대화를 나누면 웃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떤 대화냐 하면,
일단 그 이야기를 들려주기에 앞서 굳이 말하고 싶은 정보가 있다. 나는 서태지가 데뷔할 무렵에 태어났다. 그리고 일상에서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은 원더걸스가 데뷔할 무렵에 태어났다. 우리는 일주일 중 2일을 제외하고는 매일 만나고 무수한 장난을 나눈다. 너무 많이 보니까 서로를 지긋지긋하게 바라볼 때도 있지만 웬만하면 사이가 좋다. 가끔 사이가 나빠지려고 할 때 두 가지 방법을 쓴다. 첫째는 친절하되 단호해지기, 둘째는 상세하게 말하며 행동하기. 하는 짓을 보면 정말 귀엽고 사랑스럽고 미운 인류들이다.
그래서 왜 웃었냐면,
하루에 많은 이가 찾아오면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다. 안 그래도 얼굴 인식을 잘 못 하는데 마스크까지 끼니까 더 못 알아보겠다. 특히 눈과 체구가 비슷하면 이전에 봤던 이들과 헷갈리는데 2시간 전에 딱 그런 상황이어서 이름을 잘못 불렀다. 연고를 발라주며 “미안해. 너 2학년에 누구 닮아서 그랬어.”라고 했더니 걔는 “누구요?”라며 되물었다. 그래서 “알려주지는 않을래···”하니 “보나 마나 귀엽겠죠, 뭐.”라고 능청스레 답하는 것이다. 그 모습에 크게 웃었더니 “혹시 밴드는 없어요?”하며 물어봐 “있긴 한데,”라고 답했다. “그럼 밴드도 붙여주시면 안 돼요?”라고 말하길래 괜히 장난치고 싶어서 “있긴 한데 안 해줄래! 원래 말 안 해도 해주려고 했는데 네가 너무 빨리 말해서!”라고 했다. 그러자 곧바로 그 친구는 “아~ 저는 감사하다고 말하려고 했는데 선생님이 너무 빨리 말씀하셔서.”라고 맞받아친다.
그래서 웃었다. 크게. 진심으로.
초등학교 6학년 때는 작가가 되고 싶었고, 중학교 2학년 때는 여행을 하고 싶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고 나서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갖고 싶었지만 단 한 번도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 어른 일지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단지 서른한 살의 단편을 막연히 상상해볼 뿐이었다. 미래에는 돈이 많아서 사고 싶은 물건은 무엇이든 사고, 늘 허리를 펴면서 당당하게 살고, 직접 꾸민 집에서 맛있는 요리를 해 먹으며 살 줄 알았다. 그러나 2022년 9월 19일의 서른한 살은 어릴 때처럼 소심하고 예민하며 걱정이 많다. 오랜 기간 임용 공부를 하면서 목을 너무 구부려서인지 거북목이 되었고 자꾸 어깨를 움츠리며 걷는다. 그리고 돈도 별로 없고 내 명의로 된 집 또한 당연히···
이제는 남은 생을 더 이상 상상하지 않는다. 이번 생은 딱 이 정도로 살아가겠구나, 하며 지금을 받아들인다. 그나마 즐길 수 있는 낙들을 머리 안에 허겁지겁 모아놓고 정리하지 않은 채 쌓아둔다. 오늘이 힘들 때 슬근슬쩍 꺼내 보고 괜찮아지면 다시 집어넣는다. 내일을 살아야 하니까.
그래도 모아둔 즐거움들이 꽤 많아 다행이다. 내 삶보다 반절밖에 살지 않은 애들과 주거니 받거니 대화하기, 노래 들으면서 책 보고 글쓰기, 노을 진 하늘 아래에서 달리기, 우리 집 고양이 털 냄새 맡기, 갑자기 고속버스표 예매해서 집이 없는 공간에서 걷기, 같은 것들
그리고
앞으로 더 바라는 점은 돈이 별로 들지 않는 즐거움을 찾기
앞으로 더 노력할 점은 적어도 내 시간 안에서는 끌려다니지 않고 진짜 좋아하는 거 하기
뭐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산다.
남은 인생에 대한 걱정이 이래저래 피어오를 때는 더더욱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