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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팅게일 Nov 06. 2022

계절의 마음

봄, 여름, 가을, 겨울을 통해 겪었던 어떤 마음들에 대한 이야기

80년을 사는 사람은 80년의 계절을 겪는다. 친할아버지는 여든 살에 돌아가셨고 그가 살아온 계절은 무척 다양했다. 할아버지는 어느 여름에 일본에서 벗어나 혼자 우뚝 선 조국을 맞이했고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계절에 같은 민족끼리 싸우는 모습을 보았다. 또 어떤 계절에는 사랑하는 부인이 생겼고 이로부터 시간이 흐른 겨울에 첫아들이 태어났다.


그 아들이 자라고 결혼하여 태어난 나는 오늘까지 31년의 계절을 보내고 있다. 할아버지만큼 격동의 세월을 보내지 않았고 오히려 평온한 가정에서 자랐으나 마음은 늘 감정들로 요동친다. 답답함일지도, 불안함 일지도 모르는 심정은 하늘이 달래준다. 머리를 살짝 위로 들어 올리면 끝도 없이 앞뒤로 가득한 파란색이 보이니 안 좋은 마음들은 무의미해진다. “아무리 바빠도 하늘 좀 보고 다니자.” 대학생일 때 교수님께서 해주신 말씀인데 이제야 어떤 의미였는지 이해가 간다. 아침과 낮에 보는 하늘이 파란 맛이라면, 밤에 보는 하늘은 굉장히 아득하다. 이 아득함에 갇혀버릴 뻔한 적이 있었는데 그 느낌을 굉장히 좋아했다. 외할머니댁은 조금만 걸어도 시골이라고 느껴질 만한 곳에 있다. 논과 밭이 가득하고 마을에 이장님이 계신다. 주민들이 사는 주택은 서로 멀지만 가깝고, 높고 밝은 건물이 없어 밤이 되면 매우 어둡다. 할머니 댁은 들어가자마자 평상이 있었는데 이는 8살짜리 다섯 명이 누워야만 가득 찰 정도로 컸다. 그곳에 혼자서 팔과 다리를 쭉 뻗은 채 자주 누워있었다. 나무는 점점 파릇해지고, 바람은 쌀쌀하지만 선선하게 불고, 가족과 친척들은 집 안에서 저녁 드라마를 보며 과일을 먹을 때 평상에 누워서 아득하게도 검은 하늘을 쳐다보았다. 8살의 봄은 그걸로 다였다. 더하고 덜할 게 없었다. 그때 아마 생각했을 것이다. 저 까마득한 것에 담가질 수 있다면 숨 정도야 잠깐 막혀도 괜찮을 거라고. 하루를 업을 수 있다면 오늘 밤을 당장 등에 실어 집으로 데리고 올 거라고.


그날의 하늘을 잊지 못해서인지 어느새 나는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다. 하늘과 바다는 굉장히 비슷하다. 오전에는 파란색이지만 밤에는 까맣고 또 끝도 없고. 그러고 보면 바다는, 해와 하늘에 섞인 구름이 물에 빠져 만들어졌을지도 모른다. 바다와 하늘을 함께 보면 피곤함도 청량해지기 마련이라 25살 여름에 혼자 동해를 보러 강릉에 갔다. 내가 사는 곳과 강릉은 굉장히 멀다. 기차를 타려면 환승을 해야 하고, 버스를 타면 꽤 긴 시간을 달려야 한다. 당일치기는 불가능하여 강릉에서 하루 묵기로 했다. 바다를 가기 전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가 태어난 곳을 보고 싶어서 오죽헌에 들른 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커피를 마시니 배가 고파서 막국수를 먹은 후 숙소에 왔다. 예약한 방에는 모르는 두 분이 계셨고, 어색한 인사와 함께 대화를 나눠보니 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들이셨다. 학생 간호사와 현직 간호사가 우연히 만난 게 신기했고 우리는 저녁을 같이 먹기로 했다. 저녁 겸 맥주를 같이 하면서 언니들은 병원에서 생기는 일화들을 말해주었다. 의학 용어가 섞였기 때문에 무슨 말인지 몰라 맞장구만 많이 쳤다. 그러다 갑자기 언니 한 분이 “야곱이 뭔 줄 알아?”라고 물으셔서 “성경요?”하고 답했더니 “야채 곱창. 야식으로 먹으면 최고야.”라고 하셨다. 깔깔 웃을 수 있는 시간을 붙잡고 싶어서 오늘은 실컷 놀고 바다는 내일 보기로 했다. 강릉이 아닌 속초에서 말이다. 이대로 강원도를 떠나고 싶지 않아 속초에서 하루 더 묵기로 했다. 다음 날, 해가 쨍쨍 내리쬐는 낮에 언니들과 헤어진 뒤 속초 영금정 아파트 근처에 올라갔다. 거침없이 풍기는 짠 냄새가 목부터 팔까지 흘러내리는 땀에 파고드는 것 같았지만 이마저도 좋았다. 그것도 바다였기 때문이다. 자외선이 두피를 녹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 만큼 덥고 높은 곳에 도착하자마자, 두 눈을 멀뚱멀뚱 뜬 채로 바다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초등학생 때 피카추 띠부띠부씰을 뽑은 친구가 생각났다. ‘저거 뽑기 어려운데 좋겠다! 쟤는 이제 앞으로 맨날 저거 가지고 다니겠네.’ 싶어서 부러웠더랬다. 그때와 비슷한 느낌으로 하늘이 조금 부러워졌다. 쉽게 볼 수 없는 동쪽 바다를 매일같이 보는 기분은 어떤 기분일까. 자기가 가진 색으로 바다까지 물들이는 재주는 어떤 재주일까. 그런 기분도 재주도 없는 사람이어서 한껏 선망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런 기분도 재주도 없지만 그런 걸 가진 사람은 알고 있다. 올해 봄에 처음 봤는데, 우리가 동갑이라는 사실은 여름에 알게 되었다. 그녀는 서울에 살고 출판사를 운영하는 작가이며 에세이와 소설을 넘나드는 글을 쓴다. 내가 임용고시를 준비할 때 그녀는 온라인으로 독자들을 모집해 매일 글을 쓰고 이메일을 보냈다. 서로 마주 앉아 대화 한 마디 나눈 적이 없는데도 그녀를 아주 조금 안다. 왜냐하면 이슬아 작가님이 쓴 글을 너무 좋아해서 그녀의 다섯 번째 책을 읽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나는 왜 유일무이한가?’라는 제목으로 글을 쓴 적이 있다. 가장 좋아하는 구절을 읊어보겠다.

‘... 우리를 고유하게 하는 이유는 대부분 타인에게 있다는 걸 말이다. 남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나는 이따금 겨우 특별해지곤 했다. 세계에 오직 나만 있다면 고유성이랄지 유일함이랄지 그런 말들은 태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우리의 존재는 타인과 맺는 관계에 의해 끊임없이 새롭게 구성되는데, 그건 축복일까 저주일까?’

이 글을 처음 보자마자 묻고 싶었다.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단어만 쓰는데도 보는 사람을 이슬아로 물들이는 재주는 어떤 재주인지, 그런 재주를 매일같이 쓰는 기분은 어떤 기분인지를.

이후에도 그가 쓴 글을 쭉 보았다. 노래를 들으면서, 커피를 마시면서, 창문을 열어놓으면서. 그러면 듣던 노래는 잘 들리지 않았고 커피는 줄어들지 않은 채 얼음만 녹아있었으며 열어놓은 창문에 비가 들어오는지 몰랐다. 나는 그녀가 쓴 글자 안에 가두어져 있었으나 별로 나오고 싶지도 않았다. 그가 무심코 툭 던진 문장에서 얻은 생각을 거두어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무럭무럭 들었다. 31살의 어느 가을날에 카페에서 그의 글을 읽다가, 일정이 있어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나오니 분홍빛 노을에서 유독 싱숭생숭한 내음이 났다. 이 향을 사진으로 담을 수 없다는 점이 안타까워 애꿎은 하늘만 찍어댔다.


이제는 날이 점점 추워진다. 아침에 적당히 두꺼운 옷을 골라 입는다. 곧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31살의 겨울을 맞이하게 될 테다. 올해 어떤 겨울을 살아낼지 알 수 없다. 다만 확실한 사실은 겨울은 춥고, 나는 계속 글을 쓸 것이다. 그 글은 계절을 탔으면 좋겠다. 글자 안에 겨울이어야만 보고 듣고 만질 수 있는 영감들이 잔뜩 묻어있으면 좋겠다. 그렇게 직접 쓴 마음들이 다시 맞이할 여름에 널리 널리 퍼져나갔으면 좋겠다. 유난히 더운 날 차가움을 느낄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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