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을 준비하는 일이 오히려 삶을 또렷하게 만든다
비가 오려는지 유독 공기가 묵직했던 그날, 독서모임에서 예상치 못한 질문 하나가 있었다.
“만약 치매에 걸린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50대라는 나이의 문턱을 넘어서며 건강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지만, 이토록 직설적인 상실의 가능성 앞에서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했다. 모임장은 분위기가 너무 가라앉지 않도록 “가볍게 생각해 보자”며 운을 떼었으나, 리더로서 수많은 위기관리 매뉴얼을 짜온 나에게 이 질문은 가볍게 넘길 이야기가 아니었다.
나는 차분히 생각을 정리해 대답했다. 만약 내 삶의 기억들이 조각나기 시작했다는 신호를 감지한다면, 가장 먼저 할 일은 현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병원을 찾아 정밀 검사를 받고, 의학의 도움을 받아 그 진행 속도를 최대한 늦출 방법을 찾을 것이다. 이는 단순히 삶을 연장하려는 욕심이 아니다. 내가 누구인지 기억하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확보해, 주변을 차분히 정리하기 위한 시간 확보다. 상실을 막을 수 없다면, 최소한 그 과정을 내가 선택하고 싶기 때문이다.
평소 남편에게 연명치료는 거부하겠다는 의사를 여러 차례 밝혀왔지만, 이번 기회에 이를 서류로도 명확히 남기려 한다. 사랑하는 이들이 나의 마지막을 두고 힘겨운 결정을 떠안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것이 내가 줄 수 있는 마지막 배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랍 깊숙이 넣어두었던 유언장을 다시 꺼낼 것이다. 그곳에는 재산의 향방보다 더 소중한, 가족들에게 전하는 감사와 사랑의 마음을 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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