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공식적인 팀 회식 및 팀장님과 함께하는 저녁 식사 등은 여러 번 했지만, 내 제안으로 후배들과 저녁을 먹기는 처음이다.
요즘 MZ세대 취향에 맞춰 회식 장소를 정하기 위해 주종별로 장소를 물색했다. 소주, 맥주, 전통주, 와인 등 핫하다는 곳을 인스타 및 블로그에서 물색하고 후배들에게 어디가 좋을지 선택하도록 했다.
소주를 좋아할 줄만 알았던 후배들은 의외로 와인바를 선택했고, 우리 파트 5명이 와인 3잔에 안주 5개를 시켜 배불리 먹었다. 평소 술을 좋아하는 팀장이 급 번개를 많이 하고 주로 마시는 술이 소주이며, 거기에 종종 따라가던 녀석들이었기에 당연히 소주를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그건 편견이었나 보다.
“난 너희들이 소주나 맥줏집을 선택할 줄 알았는데 의외네?”라고 물으니
“평소에 안 가보던 데를 가고 싶어서요.”라는 말과 함께
“저는 실은 소주는 좋아하지 않아요. 단지 팀장님을 따라가는 이유는 저녁을 먹기 위해 혹은 맛있는 것을 먹기 위해서예요.”
<후배들과 함께 간 와인바>
그렇다.
우리 파트에는 자취하는 친구들이 2명 있었는데, 그들은 공짜로 저녁을 먹으러 번개에 종종 따라갔던 것이고 소주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되었다.
무심했다.
이제 술을 마시기 위한 회식은 무의미하다고 여겼기에 그런 번개에는 거의 따라가질 않았고, 점심에도 주로 헬스장에서 운동하거나 약속 있을 때만 식사하기에 후배들의 속마음을 들을 기회는 거의 없었다.
또한 함께했던 공식적인 회식 자리에선 사적인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고, 또 하더라도 세대 차이가 나는 나로서는 관심 분야도 아니고 공감대가 형성되질 않아 귀 기울이지 않은 내 잘못도 있다. 물론 그들도 내 이야기엔 귀 기울이지 않았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나도 그다지 살가운 후배는 아니었다. 남자가 대다수인 회사에 여자 후배라 여러모로 대하기가 쉽지는 않았고, 먼저 마음을 활짝 열고 다가가는 타입도 아니었다. ‘일만 잘하면 됐지’라 생각하며 팀장이나 임원들에게 보이는 곳에서 혹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물심양면 힘쓰는 동료들을 보면 ‘저렇게 입안의 혀처럼 군다고? 비위도 참 좋다. 아부 잘하네.’라며 무시하곤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들 중 일부는 본인의 출세를 위해 진짜 아부한 사람도 있고, 한편으론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간 것도 있으니 선배들 입장에선 본인에게 잘하는데 고맙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파트 회식에 와인바를 선택한 후배들을 보며 옛날의 내가 떠오르기도 한다. 나 역시 “회식 어디로 갈래?” 하면 평소엔 잘 먹지 못했던 소고기나 참치를 외쳤고, 윗사람들이 좋아하는 소주보다는 맥주를 선호했다. 입장 바꿔 놓고 생각하니 안 보이던 게 보이기 시작한다.
<소고기에 진심인 나>
선배가 되니 아무리 법인카드로 회식한다 한들 예산에 눈치가 보이길 마련인지라 비싼 음식들 위주로 고민 없이 고르며 양껏 먹는 후배들을 보면 “본인 돈 아니라고 비싼 걸 잘도 고르는군.” 싶기도 하고, 한편으론 아이러니하게도 장소를 잘 정한 것 같아 내심 흐뭇하다.
내가 후배일 때 욕했던 사수를 보며 ‘나는 절대로 저런 사수가 되지 말아야지!’ 결심했는데, 잘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자리에 막상 올라갔을 땐 ‘과연 난 잘하고 있는 걸까?’라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마냥 찌질해 보이기만 하던 그 사수가 했던 행동들도 조금은 이해가 된다.
회식 장소에서 왜 그렇게 냉동 삼겹살만 먹었는지? 치킨집은 왜 또 그리 좋아했는지?
일 잘하는 후배도 좋지만 먼저 다가오는 후배를 왜 더 잘 가르치고 키워주고 싶은지
또한 입장바꿔 생각해보니 회식 장소에서 비싼 음식들 위주로 먹는 후배들도 이해가 된다. 나도 그랬으니 말이다.
벌써 잊었느냐? 개구리 올챙이 시절을
가끔 필요하다. 입장바꿔 생각하기.
If I put myself in his shoes, I might be able to understand him bet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