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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암 May 11. 2023

산업재해

 다음날 우경은 양산부산대학교병원을 찾았다. 자신의 아픈 곳을 치료받기 위해 병원을 찾았을 때는 느끼지 못했을까. 병원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풍기는 알 수 없는 거북한 냄새, 링거폴대에 수액을 매단 채 걸어가는 환자들, 유니폼을 입고 샌들을 신고 있는 무표정하면서 바쁘게 걸어가는 사람들.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와 보호자의 다급한 목소리. 그러고 보니 뭐 좋은 일로 병원을 찾을 일은 없어 보였다. 대학병원에는 의사, 간호사, 간호조무사, 요양보호사, 원무과 직원, 시설과 직원, 경비원과 청소원, 장례식장 직원, 구내식당 영양사와 조리사, 그리고 병원에 입점해 있는 온갖 종류의 상점들까지. 병원을 찾는 일, 그것도 대학병원은 결코 평온하거나 아름다운 장소는 아님이 분명하다.


 이규태 지회장의 병명은 뇌지주막하 출혈이었다. 수술은 잘 마무리되었고 그나마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은 덕분으로 회복 속도가 빠르다고 했다. 말투가 조금은 어눌하고 오른쪽 손목 부위에 약간의 마비가 있었으나 생존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였다. 엊그제 일반 병실로 옮겨왔다고 했다. 여기까지는 엊그제 다른 직원에게서 들은 이야기였다. 

 병실에 상주하는 보호자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의 면회는 제한적이었다. 우경과 이규태 지회장은 병동에서 제법 거리가 있는 부산대학교 간호대학 캠퍼스에서 만났다.


 “우경아, 나 담배 피우고 싶다. 하나만 줘봐라.”

 “아이고 형님, 지금 그래가지고 담배 생각이 나십니꺼. 뇌출혈에 담배는 쥐약이라 카던데예. 웬만하면 좀 참아 보시지예.”

 “마, 괜찮다. 살 만큼 살았고, 또 이래 살아났으니 그까짓 담배 쫌 핀다고 또 죽기야 하겠나?”

 우경은 마지못해 에쎄체인지 1밀리 한 개비를 건넨다. 

 “쓰읍~ 휴우~” 지회장은 깊게 빨아들였고 다시 길게 내뱉기를 반복했다. 서너 번 반복되자 담배는 원래의 모습을 감추었다. 우경이 이규태 지회장을 찾아온 것은 병문안에 그 목적이 있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관리팀장으로서 직원에 대한 근태처리의 방향을 잡는 데 있었다.

 “오늘부터 2주간 여름휴가니까 이 기간은 그냥 휴가로 처리하면 되고, 지난 일주일은 연차로 처리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리고 휴가 이후 복귀가 어려우면 휴직으로 처리할 예정입니다. 최대 6개월까지 가능하고, 처음 3개월까지는 기본급이 지급되고 그 후 3개월 동안은 무급으로 처리됩니다.” 우경은 다분히 사무적인 말투로 지회장이 묻지도 않은 말을 하고 있었다. 

 “입원 치료는 1개월 정도면 될 거 같다고 하고, 퇴원해서 재활 치료 잘하면 3개월 이내에 복귀할 수 있을 거 같다. 그것보다 우경이 니가 산재로 처리될 수 있도록 신경 좀 써주면 좋겠다. 원무과 산재 담당자에게 물어보니 의료기록이나 소견서는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고, 무엇보다 회사에서 근로시간이나 근무 강도 등에 대해 근로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잘 적어서 제출해야 한다고 하더라. 좀 부탁한다.” 이규태 지회장은 자신의 말을 들어주고 있는 사람의 얼굴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허공을 보면서 전방 저 멀리 금정산 정상 부근에 시선을 두고 풀이 다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경은 걱정하지 말라며 자기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적극적으로 도와주겠다는 말로써 지회장을 안심시켰다.


 이규태 지회장은 병원 원무과를 통해 산재 신청을 했고, 우경은 보험가입자 의견서, 출퇴근 기록부, 근로계약서, 임금대장 등 관련 서류를 근로복지공단에 제출했다. 근로복지공단은 이규태 지회장의 산재 신청을 불승인했다. 질병 발병일 이전 급격한 작업환경의 변화가 없었고, 만성적인 과로나 스트레스의 존재도 찾아볼 수 없다는 이유였다. 창원에서 양산으로 출퇴근하게 된 배경이나 노사 간 단체교섭이 원만하지 못한 상황 등은 고려되지 않았다. 단지 근로시간이 짧다는 것, 잔업이나 특근이 없었으므로 육체적 과로를 유발할 수 있는 업무상 원인이 없다고 보았다. 오히려 평소 음주와 흡연이라는 나쁜 생활습관이 뇌출혈 발병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면서, 업무와는 상당인과관계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금속노조 부양지부의 산업안전부장이나 변호사와 노무사 등의 법률 전문가들은 도무지 수긍할 수 없는 행정처분이라는 공통된 의견이었고, 부분파업을 주도하면서 단체교섭을 진행하고 있었던 것은 업무와 관련되어 극심한 스트레스를 유발했을 것으로 마땅히 인정된다면서 산업재해보상보험재심사위원회에 재심사 청구를 하자고 했다. 이규태 지회장은 전과 다름없이 회복되었고 장해가 남지도 않았고, 치료 기간이 긴 것도 아니라며 반대했다. 무엇보다 하루빨리 복귀하여 교섭 전선과 집행부의 분열을 막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 지회장은 2개월 휴직을 마치고 복귀했으나 사정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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