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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핀휠 Oct 06. 2022

수기문만 내면 10만원씩 준 프로그램 기획한 썰 푼다

[여름휴가 가즈아] 기획 비하인드 스토리

[여름휴가 가즈아] : 핀휠의 비정기 프로그램으로, 장애인과 비장애인 대학생이 2인 1팀을 구성하여 여행을 떠납니다. 잘 놀고 오면 1팀 당 10만원을 줍니다. 제일 잘 놀고 온 팀은 아이패드까지 줍니다. (사장님이 미쳤어요)


안녕하세요, 핀휠의 기획 마케팅 매니저 대드리입니다.

대드리는 맨날 대든다고 대드리입니다. 대표님과 다른 동료분들이 붙여주셨어요.


[여름휴가 가즈아]라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면서 더 많은 분들에게 알릴 수 있다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여행만 잘 다녀오면 10만원씩 주는 이런 회사는 뭐하는 회사일까, 무슨 생각으로 일하는 곳일까 궁금해지셨다면 잘 오셨습니다.  


3명의 직원과 대표가 각자  비하인드 스토리를 에피소드 형식으로 정리하였습니다. 조금의 각색이 있을  있습니다. 호구박 대표 -> 김선비 -> 알바트로준 -> 대드리 순으로 이어집니다.



호구박 대표: 장애인들을 취업시키면서 돈도 벌어볼까 라는 생각으로 창업한 호구박사


창업하면서 회사에 이런 복지 제도가 있으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고 싶었다.

그래서 만들었던 복지 제도는 '월 2일의 연차' 그리고 '몰아서 한 달을 쉴 수 있는 안식월'이었다.

직원들은 매우 좋아했다.

대드리님은 이 제도에 대해 듣고 이틀을 꼬박 고민하더니 "그럼 스페인에 계신 이모님을 만나보고 와도 될까요?" 물었고, 일단 비행기표부터 예약하라고 했다.

그렇게 많지도 않은 직원들 중 한 명이 7월 한 달 간 여름 휴가를 떠났다. 휴가를 가불해가면서.

한 달 동안 대드리님을 휴가 보내놓고 보니 진짜 너무 부러웠다.

그래서 맨 처음 든 생각은 나도 이렇게 부러운데, 내 고객인 장애인들은 다른 사람들이 떠나는 휴가가 부럽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어서 또 한 번 직원들에게 물어봤다.

항상 내가 쓰는 주저리 주저리 화법으로 말이다.


...... 장애인들은 휴가 가기 힘들잖아, 우리는 복지사라 잘 알잖아, 근데 말이야 대드리님이 휴가 간 거 우리도 이렇게 부러운데 말이야......


그 왜, 장애인들 놀러가게 하면 안 될까?



                                                                                             휴가비 쪼금 주고 말이야.


표정을 보아하니, 김선비님은 이미 뭔가 맘에 안 든다. "안됩니다"

알바트로준님도 시작은 이랬다. "그냥 놀러 가게 하는 목적으로는 안되겠는데요."

뭐 열심히 설득도 하고, 설명도 하고, 이야기도 해서 결국 장애인, 비장애인 한 커플 당 10만원씩 휴가비를 주고 휴가를 보내는데 성공하긴 했는데, 이거 뭔가 이상하다.

대표가 되어서 말 한마디만 요렇게 저렇게 하면 팀원들에게서 뭔가가 포롱포롱 튀어 나올 줄 알았는데, 왠걸 협회에 국장님 설득만큼이나 힘들다.

세상살이 어느 위치에 있든 쉬운 게 없다.



김선비: 보수적인 복지계에서 5년간 글월만 읊다가 개화기를 맞지 못한 사회복지선비님. (스타트업 와서 강제 개화 중)


복지기관을 떠나 민간의 영역인 기업에서 처음으로 사업기획 회의를 하게 되었다. 나의 면접을 봤던 기획팀 매니저 대드리는 뒤를 부탁한다는 말과 함께 안식월에 들어가 스페인으로 떠났고, 후에 새롭게 사회복지사 자격증과 멋쟁이 사자의 개발팀에서 수상경력이 있다던 사회초년생인 막내 직원이 들어왔다.


대표와 팀장 앞에서 다리를 꼰 채로 팔짱을 끼며 자신의 의견을 내는 막내 직원과 자꾸 애들을 모아서 놀러 가게 돈을 줘야 한다는 대표님과 함께, 그렇게 기획 회의가 진행이 된다.


대표 : 애들 여름이니까 어디 놀러 가라고 경비를 지원하는 건 어때? 여름인데 시원하잖아~ 바닷가

막내 : 오 좋은 것 같아요. 대표님. 실제 요즘 대학생 커뮤니티나 외국에서는 이미 대학생들 모집해서 여행계획서 같은거 받아서 선발해서 경비 지원해주고, 잘 놀다가 온 친구들 상품도 주고 그러잖아요. 자연스럽게 저희 기업 홍보도 되고 좋은 것 같습니다. 상품은 아이패드 좋을 것 같습니다.


(뭔 헛소리야. 지금 돈도 못 벌고 있는데… 애들 놀러가는 건데, 돈은 왜 주고 아이패드는 또 뭐야)


나 : 아. 정말요? 진짜 괜찮나요? 좀 더 알아보고 진행하는 건… 저희 고려해야 할 사안도 많고…


한 달 뒤,

그렇게 나는, 우리의 장애&비장애 대학생 연합 여행지원 프로그램 ‘여름휴가 가즈아’에서 잘 놀았던 친구들을 인터뷰 하기 위해, 토요일에 대표님과 함께 서울에서 송도로 떠났다.

인터뷰 내내 너무 즐거웠고, 상품과는 별개로 색다른 경험이었다며 다음에는 또 언제 진행되냐고 묻는 친구들의 순수함에 웃음이 절로 났으며, 1등 발표는 언제 나오냐는 조심스러운 질문에 ‘너희는 탈락이야.’라는 속마음을 대신하여 ‘검토 후 다음 주 중으로 발표가 진행된다’는 말을 전한다.



알바트로 준: 사회복지가 싫어서 개발자로 전향했는데 어쩌다보니 꼰선비에게 머리채잡힌 서퍼지망생


출근한 지 1주차였나 2주차였나 대표님이 대학생들을 놀러가게 해주고 싶다고 했다.


“???”

WHY? 대표님은 선비님과 나를 설득하기 위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창업한 목적까지 이야기해주셨다. 결국 요약하면 "장애인 비장애인 구분없이 같이 놀고 싶고 놀게 해주고 싶어서 창업을 했다"라는데...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무조건 휴가 보내는 것으로 결론이 나있던 것 같아 머릿속에 막 떠오른 생각을 기획처럼 이야기해드렸다. 솔직히 대표님도 듣고 머릿속에 “???”이 떠오를 줄  알았다.


근데.. 반응이.. “!!!”이었나보다.


눈 떠보니 기획부터 전반적인 프로그램을 내가 맡게 되었다. 출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프로젝트를 맡게 된 것이다. 기획 단계부터 가장 큰 난관은 김선비님을 설득하고 컨펌을 받는 일이었다. 김선비님은 자꾸 복지기관에서나 만들 것 같은 포스터를 만들면 좋겠다고 회유(강요)했다.

대표님에게 이런 상황과 내 생각을 말했더니, 대표님은 적극 지지해주며 한술 더 뜨는 아이디어를 남겨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김선비님 몰래 대표님과 나의 사업 홍보 페이지 작업이 시작되었다.


김선비님의 컨펌을 받은 포스터 위에 어그로성 글을 써넣었고, 정돈된 사업 안내문에 몰래 나루토 이미지와 대표님이 요구한 메시지를 넣었다.


실제 여름휴가 가즈아 프로그램 포스터와 홍보 페이지


돈은 우리가 낼게, 노는 건 누가 할래?


대드리: 회사의 성과를 위해서라면 나는 참지않긔


한 달 간 안식월을 신나게 보내고 왔더니 다른 회사가 되어 있었다.

기존에는 ‘휠즈’라는 이름의 SNS 에디팅 과정을 운영하고 수료생들을 취업에 연결하는 회사였다. 안식월 기간동안 복지사 두 명이 더 온다고 하길래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싶었는데. 복지사 3명(나를 제외한 모든 임직원이 사회복지사이다)이 모여 사업을 기획하더니 ‘여름휴가 가즈아’라고 듣도 보도 못한 걸 기획하고 이미 사람들을 모집 중이라고.

근데 우리 땅파서 장사하나?


우리 회사 망하지 않으려면 열심히 일해야겠다 생각하며 두 달여 시간이 흘렀다. 어느덧 여름휴가 가즈아 참여자들의 수기문 마감일이 다가왔고, 우승팀 발표일이 코앞이었다. 그렇게 수기문들을 하나씩 읽게 되었다.


이 수기문들은 무조건! 꼭!! 세상 밖으로 나와야 합니다!!! 출처=ENA 채널

이렇게 멋진 수기문들을 우리만 읽고 끝낼 순 없다 다짐하게 되었다.

친구 또는 커플이 함께 신청해서 다녀온 여행부터, 서로 모르던 사이였지만 이 프로그램을 통해 만나게 되어 함께 여행을 다녀온 팀까지 모든 여행이 사랑스러웠고 소중했다.

1등 팀에게는 아이패드를 각 1대씩(!!!) 상품으로 주기로 되어 있었다. 외부에 공정한 심사를 요청하여 1등 결과가 이미 나왔지만, 우리는 내부적으로 치열하게 논의했다.


"우리 아이패드 몇 대만 더 사면 안될까?"

처음 대표님이 이 말을 꺼냈고, 사업팀에서는 극구 반대했지만, 수기문을 읽고 난 후에 나도 대표님과 마음이 같아졌다.

'다 아이패드 주고 싶다!!!!'


하지만, 사업팀의 말이 너무 맞는 말이었다.

“애초에 10만원씩 다 주는데 아이패드를 왜 더 사나요”

하하, 맞아 우리 수기문 내면 다 10만원씩 줬지.



다음 글부터 여름휴가 가즈아 참여팀의 동의를 받은 아름답고 빛나는 수기문들을 하나씩 공개하려고 합니다.

누가 제일 즐거운 여행을 보내고 왔는지 지켜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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