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새벽에 출근하는 이유 (7)
회사에서는 일을 잘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빠르게 처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일을 빠르게 처리하는 사람이 잘 하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프로젝트는 시간이 촉박합니다. 불가능해 보이기까지 할 만큼 촉박한 프로젝트 일정을 맞추기 위해서는, 프로젝트를 구성하는 단위 업무들도 일정에 늦음 없이 달성되어야 하지요. 그래서 팀장을 비롯한 대부분의 직책자는, 직원들의 업무 처리 속도에 매우 민감합니다. 일이 조금이라도 지연되면 계속 독촉하지요.
시간 부족에 시달리는 프로젝트 상황에서 예상보다 빠르게 업무처리 결과물을 가져오는 직원이 있다면, 당연히 팀장의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프로젝트의 일정 단축에 기여하는 사람이기 때문이지요. 이런 사람들은 겉으로 보이는 것 뿐 아니라 실질적으로 업무와 조직에 공헌하는 사람입니다.
만약 새벽에 두 시간 정도를 집중해서 업무에 투자할 수 있다면, 매일 반 나절씩 일정을 단축해서 업무를 처리할 수 있습니다. 일주일이면 사흘 정도를 아낄 수 있는 것이지요.
고작 두 시간 일찍 출근해서 무슨 반나절이나 아낄 수 있느냐고 생각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일과 중에 실제 업무에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침 9시부터 점심시간인 12시까지, 아침 미팅, 커피 한 잔, 협업 부서와의 전화통화, 동료의 자료 요청 등으로 소비하는 시간을 생각해 보면, 두 시간도 나지 않는 경우가 많지요. 그마저도 연속된 시간이 아니라, 10~20분씩 조각나 있는 상태입니다. 피로가 누적된 오후 시간도 크게 다르지 않지요.
이렇게 생각해 보면,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그리고 정신적으로 가장 명료하고 또렷한 새벽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실제 일과 중의 반나절만큼 가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남들이 오전에도 다 못 끝낼 업무를 새벽 시간에 처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다음 상황을 가정해 봅시다. 아침 미팅 시간입니다.
팀장 : 어제 밤에 제품 특성 평가 결과는 언제까지 정리될 것 같은가요?
팀원 : 오후 세시까지 초안을 작성해서 공유 드리겠습니다.
오후 세 시까지 초안을 만들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성공적으로 초안을 작성했다면 세 시부터 자료를 함께 보면서 수정도 하고 추가적인 업무 지시를 합니다. 시간은 이미 네 시가 되었겠지요.
팀장 : 자, 수고했고, 오늘 논의한 내용 추가로 분석해서 내일 아침에 다시 봅시다.
이렇게 하루가 지나갑니다. 피드백을 반영해서 추가적으로 자료를 만들다가, 협업 부서에 문의해야 할 내용이 생겼습니다. 전화를 걸려고 하는데 이미 퇴근 시간이 되었네요. 어쩔 수 없이 그 부분은 미제로 남겨둔 채 내일까지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만약 어느 똘똘한 팀원이 새벽에 일찍 출근해서 미리 초안을 만들어 두었다면 어떨까요? 아침 미팅에서 팀장이 초안을 물어보기 전에, 미리 선제적으로 보고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오전 중에, 또는 이른 오후에 피드백까지 반영된 최종 보고서를 만들 수 있었겠지요. 협업 부서에 문의가 필요한 경우에도, 낮 시간 동안에 얼마든지 토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회사 업무는 부서간의 협업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A부서에서 만든 업무의 결과물은 B부서의 업무를 위한 재료로 사용됩니다. 만약 A부서에서 업무의 결과물을 오후 6시에 완성해서 B부서에 전달한다면, B부서는 그 결과물을 가지고 다음 날 아침부터 업무를 시작해야 합니다. 퇴근시간부터 다음날 출근 시간까지 15시간의 지연이 발생하게 되지요.
반면 똘똘한 팀원 덕분에 오후 2시에 업무를 처리해서 B부서에 넘겼다면, B부서는 지연 없이 그 때부터 다음 업무를 진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새벽에 두 시간 일찍 일을 시작했을 뿐인데, 실제로는 약 20시간에 이르는 시간차이가 발생했습니다. B부서에 새벽 출근하는 똘똘한 직원이 있다면 다행이겠지만, 만약 그렇지 않다면 내일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겠지요.
만약 이런 일이 누적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저를 포함해서 새벽에 출근하는 사람들은, 매일 두 시간을 투자해서 4~5시간씩을 절약합니다. 팀장과 동료들의 “기다리는 시간”을 절약해 주는 것이지요. “시간”이란, 업무에 필요한 가장 중요하고도 대체 불가능한 재료입니다. 시간을 주는 것이야말로, 팀과 동료에게 가장 큰 선물이자 기여입니다.
새벽에 출근하는 것은, 단지 개인적으로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는 것이 아니라, 실제 조직에 기여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입사한 지 6~7개월 정도 지났다면, 우리 팀이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 내야 하는지에 대해서 대략적으로 알게 될 것입니다. 매일 아침 미팅 풍경을 잘 관찰하면, 팀장이 무엇을 중시하는지도 패턴이 나오겠지요. 바로 그 결과를 새벽에 미리 만들어서 제공해야 합니다. 팀장에 중요시하는 것이 실제로 팀에 가장 필요한 것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지요.
제가 연차가 많이 쌓이지 않은 초보 사원 시절에, 항상 아침마다 저를 괴롭히던(?) 협업팀 동료가 있었습니다. 저는 생산을 담당하는 팀이었고, 그는 생산물의 평가와 분석을 담당하는 팀이었지요. 그는 주요 제품이 생산되는 날에만 일찍 나와서 저를 괴롭혔습니다. 아침에 제가 출근하자마자 저에게 와서, “어제 분석된 그 제품, 불량이 굉장히 많이 나왔어. 그 제품은 어떤 조건으로 진행된 거야? 제조과정이 제대로 진행된 거 맞아? 제품 생산중에 특이한 이력은 없었어?” 하면서 속사포처럼 질문 공세를 퍼부어 댔지요. 저는 아직 자리에 앉기도 전인데 그렇게 쏟아 부으니, 아침부터 정말 마음이 힘들었습니다. 그 분은 저 뿐 아니라, 저와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도 비슷한 행동을 반복했습니다.
이런 패턴이 반복되는 게 너무 싫었기 때문에 우리 팀 동료들도 언제부턴가 주요 생산품이 평가되는 날에는 일찍 나와서 선제적으로 먼저 분석하기 시작했습니다. 주요 이슈를 미리 파악해 놓고 나서 거꾸로 우리가 찾아가기 시작했지요. “어제 제품 나온 거 평가 다 되었나요? 아직 안 되었어요? 언제쯤 결과 보여주실 수 있어요?” 그런 날은 뭔가 통쾌하더군요.
지금 생각해 보면, 한편으로는 웃기기도 하고 유치하기도 하지만, 저는 선의의 경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경쟁은 피곤하고 스트레스 받는 일이지만, 주도적인 위치에 있다면 스포츠나 게임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 경쟁이 상승효과를 일으켜서, 제품의 평가와 분석 주기가 짧아진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평상시에는 공식적인 보고서가 나오기까지 3~4일이 걸렸지만, 언제부터인가 당일 내에 최종 보고서가 나오는 경우가 많아지더군요.
그 프로젝트는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을 수 있었습니다. 선의의 경쟁자들이 일찍 출근해서 분석-피드백 싸이클을 빠르게 돌릴 수 있기 때문이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