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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랑크톤 Jul 01. 2024

핸드폰에 있던 예전 일기

아마도 23년 봄? 가을?




자기 위해 누운 침대에서 이유 모를 불행감이 등부터 잠옷을 적셔올 때 나라는 존재의 존재에 대해 떠올린다. 모순적이게도 그 순간에야 자각할 수 있다. 그래, 이게 나였지.


그럴 때마다 억울한 마음이 든다. 나는 왜 항상 이렇게 바다와 육지 사이의 경계에 서있어야 하는가. 누군가는 한번도 들어가지 않을 바닷물에 나는 반복적으로 젖고야 만다. 파도를 인력으로 밀어낼 수 없듯이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축축함에 또 다시 무기력해진다.


사랑하는 이들에게 짐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느낄 때면 나는 우주에서 부유하고 있는 먼지가 된다. 막막하도록 광활한 이 세계에서 어디에도 가 달라붙지 못한 채 홀로 떠다니는 것이다. 숨막히는 공허함에도 내 몸이 중력의 영향을 벗어나는 느낌이 나쁘진 않다. 그렇게 아무에게도 무겁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 스스로에게까지도.


칼날같은 미움이 과거와 현실과 우리 가족들을 거쳐 나에게까지 도달했을 때, 결국 갈 데 없는 그것은 내 속을 파내어 웅덩이를 만든다. 마음 속 웅덩이는 늪처럼 주변을 계속 흡수한다. 원래 내 것이었던 자신감과 활력을 스물스물 끌어당긴다. 늪의 애매모호함에서는 어디까지가 '나'이고 '나'이지 않은지 구별하기 어려워진다. 무엇이든 해보리라 헤매이기를 여러번, 그저 인간은 쉽게 변할 수 없다는 뼈아픈 진실만을 확인할 뿐이다.


그냥 평범하고 싶은 것뿐인데. 건조기에서 갓 나온 빨래처럼 뽀송한 마음이 어떤건지 궁금한 것뿐인데. 그 쉬워보이는 것도 어쩐지 나에게는 참 어렵다. 그래도 육지로 올라오기 위해 꾸준히 애를 쓴다. 매일 조금씩 기어가다보면 언젠가 멀어지겠지. 젖어 묵직해진 옷이 햇볕에 말라 가벼워지는 날도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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