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피형의 감정선을 정말 잘 표현하고 있다고 느꼈다. 공허한 멜로디에 얹힌 가사들이 압권이다.
"밤하늘의 별들도 서로 닿을 수 없는 슬픔에 떠는데"
별들이 서로 닿을 수 없어 떨고 있다니... 아득한 우주에서 어디에도 가닿지 못한 채 영원히 공전하는 별들이 떠오른다.
"어둠이 내릴 무렵 그리움이 밀려들면 기억나지 않는 돌아갈 곳을 떠올리곤 해"
자기 전 침대에 누웠을 때 종종 '그리움'을 느낀다. 그 그리움은 대상이 없다. 현실의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지금 사랑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것은 현실의 사실과는 별개의 차원에서 존재한다. 명확히 표현하긴 어렵지만, 인간으로 이 세상에 홀로 실존하고 있다는 것에서 오는 막막하고 허망한 느낌에 가깝다. 그런 순간이 오면 검고 큰 형체가 내 몸 전체를 감싸 안아주는 상상을 하며 잠들곤 한다. 보통은 이것을 외로움이라 부르겠지만, 굳이 '그리움'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김윤아는 그 감정을 알고 있다. 분명 외로움보다는 그리움에 가깝다. 그리움의 대상은 특정 인간도 아니지만, 특정 장소나 특정 상태도 아니다. 김윤아는 기억나지 않는 돌아갈 곳을 떠올리는 것이라 했다. 완벽한 표현인 것 같다. 그리운 어딘가로 돌아가야만 할 것 같은데, 나는 그곳이 어디인지조차 모른다. 최소한 내 기억 속의 어떤 곳은 아니다. 어쩌면 생 이전의 어딘가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말해줘, 영원히 사랑할 거라고"
타인과 나 사이에 공간이 있다는 사실에 못내 안심하곤 하지만 그것은 회피의 눈가림이다. 마음을 둘러싸고 있는 가장 겉 껍데기일 뿐이다. 안으로 조금만 파고 들어가 보면 누군가와 간절히 닿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는 공포감, 또 대상이 다시 멀어져 갈 때의 상처를 미리 두려워하는 것이 진정한 본심이다.
별처럼 세상에 흩어져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외로움에 몸을 떠는 존재들이다. 아무리 손을 뻗어 잡으려 애를 써봐도 우리의 거리는 일정 이상 좁혀질 수 없다. 평행선을 달리는 서로에게, 닿을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너와 가까워지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뿐이다. 영원한 것은 없다. 나라는 존재도, 너라는 대상도, 이 세상도 영속하지 않는다. 세상의 이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와 영원한 사랑을 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가 허공을 가로질러 상대의 마음에 도착한다. 거대한 공허함 한 켠을 따스히 밝혀준다. 그러니 말해달라,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지만 너만은 나를 영원히 사랑할 것이라고.
fade away의 다음 곡이자 앨범의 타이틀곡 '영원한 사랑'. 제목도 가사도 영원한 사랑을 반복하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는 오히려 사랑의 영원에 대한 자조에 가깝다.
"네가 얘기하는 사랑 너무 예뻐 거짓말 같은 그런 사랑 꿈을 꾸는 듯한 너의 얼굴이 난 왜 슬플까"
네가 얘기하는 사랑은 거짓말같이 예쁜 사랑, 그런 사랑을 이야기하는 너의 얼굴은 꿈을 꾸는 듯하다. 지켜보는 나는 슬픔에 잠긴다.
그리고 '그 사람'이 나온다. 네가 얼마나 그 사람을 사랑하는지, 너의 마음이 얼마나 그 사람을 그리워 했는지. 마치 상대가 사랑하는 사람이 제3의 인물인 것처럼 말하지만, 그 사람은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나다. 그 사람을 제3자로 본다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해서 슬퍼하는 노래가 되는데, 그 해석은 노래를 너무 납작하게 만든다.
그럼 김윤아는 나를 나라고 안 하고 왜 '그 사람'이라고 표현했는가. 상대는 자신이 원하는 사람, 원하는 사랑을 마침내 찾아낸 듯 감격에 겨워있다. 자신을 구해준 사랑, 자신을 너무나도 행복하게 해주는 완벽한 사랑. 그가 꿈꾸는 듯한 표정으로 얼마나 사랑하는지 얼마만큼 그리워했는지 표현하는 사람은 사실 실제의 내가 아닌, 내 모습을 띤 어떤 상(狀)이다. 그가 그토록 행복한 이유는 내가 아닌 다른 것을 나로 믿고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사랑은 환상이기에 거짓말 같을 정도로 아름답다. 시간이 흐르고 진짜의 내가 드러나는 순간 사랑의 환상은 걷히고 상대의 행복은 산산조각 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상대가 사랑하는 나를 '그 사람'으로 지칭하고, 상대의 기쁨에 찬 얼굴을 바라보며 깊은 슬픔에 빠진다. 곧 깨어질 허상의 사랑에 대해서 더 이상 알고 싶지 않다. 아무것도 듣고 싶지도 않다.
영원한 사랑을 부르는 김윤아는 처절하도록 슬퍼 보인다. 끝을 향할수록 울부짖듯 노래하고 가사와 가사 사이에 흐느낌마저 느껴진다. 일렉 솔로 역시 환상적인 연주로 감정을 증폭시킨다. 전반적으로 뮤지컬 곡인 양 굉장히 드라마틱하다.
이 곡은 사랑의 실패를 예감하는 자의 절망이다. 때문에 영원한 사랑 뒤에 '따위'를 되뇌며 끊임없이 부정하려 하지만, 내가 이만큼 절규하는 이유는 마음 깊은 곳에서는 아직도 영원한 사랑을 갈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원한 사랑의 존재를 간절히 바라기 때문에 그 부재가 고통스럽다.
두 곡을 듣고 또 들으며 했던 생각들을 정리해본다. 사랑은 이 세상 그 무엇보다 어렵다. 나의 렌즈를 통해 상대를 보면 그의 본 모습을 영영 알 수 없다. 그렇게 시작된 사랑은 결국 왜곡된다. 진짜 나와 진짜 너가 만났을 때, 비로소 진짜 사랑을 시작할 수 있다. 투명한 서로를 마주한 채 있는 그대로의 서로를 인정하고 품어줬을 때 진정한 사랑이 된다.
그렇게 어렵게 어렵게 진정한 사랑을 찾는다. 드디어 진정한 사랑을 만나는 순간, 그것이 영원할 수 없다는 끔찍한 진리를 깨닫는다. 공평하지 않은 세상에서 유일하게 공평한 것은 누구에게나 무작위로 찾아오는 죽음이다. 사랑하는 사람 뒤에 서서 우리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는 죽음의 그림자를 인지한다. 사랑을 하지 않을 때는 사랑을 못해 고통스럽다. 사랑을 찾으면 그 사랑이 사라질까봐 고통스럽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그 사실을 외면한 채 교만해져서는 안되지만 그것에 매몰될 필요도 없다. 우주적 시선으로 아주 찰나의 시간 동안 이 세상에 흩뿌려졌다가 흔적 없이 사라져버리는 우리들이, 우리의 삶을 후회 없이 충만하게 누리기 위해서는 그래야만 한다.
영원한 사랑이 존재하는 듯 사랑을 하자. 너도 나도 사랑도 영원할 수 없다는 걸 알지만, 마치 그럴 수 있을 것처럼 그렇게 살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