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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랑크톤 Jul 04. 2024

내가 살던 그 집

2024년 7월 4일



대낮에도 어두컴컴한 그 집. 환기가 되지 않아 눅눅하던 그 집.



아파트에 살 때 맞춰놓은 가구들과 어울리지 않던 작은 집.

가득한 짐 때문에 더욱 좁게 느껴졌던 공간.

푹신하고 끈적거리던 연갈색 장판.



좁은 베란다에 이불을 깔고 여기서 자겠다 고집을 부리던 삼 남매.

그런 우리를 바라보며 웃던 부모님.

한겨울 베란다에 내놓은 살얼음 뜬 엄마의 식혜.

다음날 엄마의 장사를 위해 밤마다 햄과 단무지를 끼워야 했던 삼 남매의 산적꼬치.



오래된 장롱의 쿰쿰한 곰팡이 냄새.

잔뜩 걸려있는 외투 때문에 가끔 쓰러져 우리를 덮치던 옷걸이.

데리러 온 애인의 차에 탔을 때, 내 옷에서 풍기던 김치찌개 냄새.



조금만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던 반대편 창문들. 

24시간 신경 써야 했던 커튼과 옷차림새.

창문을 열고 침대에 누워있으면 담배를 피우며 말을 걸어오던 맞은 옥상의 언니오빠들.

동생들에게 죽어버리겠다고 한 뒤, 문에 한쪽 다리를 걸치고 땅을 내려다보던 나.

그런  빤히 보며 빨래를 걷던 앞 동 아주머니.



천식인 줄도 모른 채, 숨이 막혀 베개를 등 뒤에 받치고 잤던 울잠.

낡아서 부드러워진 알록달록하고 유치한 이불들.

 나보다 불안과 걱정이 많았던 여동생의 애착베개.



여동생의 악몽에 항상 나오던 흰나비와 무거운 돌.

웃음이 잠버릇인 내가 무섭다며 질겁하던 표정의 내 동생.

집에 있는데도 집에 가고 싶은 느낌이 뭔지 아냐던 어린 내 동생.

둘이서 밤늦게 속닥대고 쿡쿡거리면 문을 벌컥 열 노려보던 엄마.

황급히 자는 척하는 우리에게, 몸이 편해서 고생을 덜 해서 잠이 안 오는 것이라며 소리 지르던 엄마.



방이 없어 거실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남동생.

누나들의 등쌀에 말수가 없어진 위축된 표정의 내 동생.

음악만이 자신에게 허락된 벽인 양, 이어폰을 낀 채 한 구석에 쭈그려 앉아 있던 어린 내 동생.

그 옆에서 식당일을 마치고 와 취한 채 코를 골며 자는 엄마. 시끄러워 코를 막니 입으로 숨을 쉬던, 

장난기가 생긴 내가 입까지 막았더니 고개를 저으며 큰 숨으로 내 손을 밀어내던.

그러면서도 잠에서 깨지 않던 고단했던 엄마.



무책임한 우리 가족 때문에 항상 우울한 표정이던 강아지.

오랜만에 산책을 데리고 나갔을 때, 헥헥거리며 힘들어하던 불쌍한 우리 강아지.



가끔 구석에서 기어 나오는 벌레를 맨손으로 때려잡던 엄마.

몸을 못 움직이게 된 엄마 대신, 비명을 지르며 벌레를 잡아야만 했던 나.



아빠 방에 들어갈 때마다 느껴지던 텁텁하고 낯선 냄새.

주말 오전 아빠가 종종 끓여주던 소고기가 들어간 맑은 국물의 라면.

화가 날 때 욕설을 읊조리던 아빠의 낮은 목소리.

베개를 흔들어 깨워 함께 누룽지를 먹고 각자 출근길에 올랐던 빠와 나의 벽.



밤샘 근무를 하고 와 자고 있으면 거실에서 들리던 엄마의 끙끙거림. 울먹거리는 목소리.

잠을 깨우는 아픈 엄마에 대한 짜증과 동시에 드는 강한 죄책감.



요양병원에 있는 내내 그 집에 가고 싶다고 했던 엄마.

결국 엄마의 유골함만이 한 바퀴 돌았던 그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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