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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해 Jul 17. 2023

물에서 물로

오늘도 어김없이 내 공간에는 물이 찰랑인다. 물은 바람 한 자락에도 왈칵 넘칠 듯이 아슬하다. 언제든 경계를 넘어 다른 공간을 침범할 준비가 되어 있다.     


_물 내리는 풍경

여름 장마의 시작과 함께 나의 밖에서도, 안에서도 물이 차오른다. 내 안의 물이 때를 가리지 않고 엎질러지고, 하늘에서는 물을 멈추지 않고 퍼붓는다. 장맛날 아침 눅눅한 이불 속에서 눈을 뜨면 창밖의 회색빛 하늘이 나를 반긴다. 빗소리가 창을 두드리기에는 주변 소음이 맹렬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비는 나 내리고 있소, 알려온다. 이부자리에서 일어나 방충망 사이로 보이는 그곳을 확인한다. 하룻밤 사이에 내린 비를 가늠해본다. 물에 잡아먹힌 그곳에서 나무의 꼭대기만 애처롭게 손을 흔들고 있다. 올해의 첫 침수다. 물가란 언제든 잠길 수 있는 공간임을 알면서도 차오른 물에 공연히 내 안의 물마저 동요한다.

    

_어두운 물가

내가 그곳의 물을 만난 것은 눈물의 찰랑거림에 익숙해질 무렵이었다. 매일 똑같은 하루를 보내면서 슬픔과 우울은 현대인의 필연적인 숙명이려니, 내 몫의 눈물을 삼켜내던 날들이었다. 감정의 원인을 제거할 방법은 그저 시간이 흐르는 것이었고, 그렇다고 마음을 긍정적으로 먹어야 한다는 자기개발서의 말은 허위로 다가왔다. 그저 나에게는 현실을 벗어나 감정을 소화할 수 있는 시공간이 필요했다. 그 방편으로 책과 영화에 빠졌으나 말 그대로 현실도피일 뿐 현실이 바뀌지는 않았다. 그러다 체력이 부족해 시작한 산책이 환기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복잡한 생각을 헨젤과 그레텔처럼 가는 발자국마다 떨구며 걷는 것이다. 나름의 효과를 보이며 그렇게 매일 같이 걷기 시작했다. 일과가 끝나고 아니면 일과를 대충 얼버무린 뒤 물가를 따라 집으로 가는 길은 곧고 고요했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해를 등지고 달에게 인사를 건네는 시간이 주는 위안을 즐겼다.     


그러다 어느 날 도로를 살짝 벗어나 낮은 아스팔트 공간에 내려가 보았다. 그곳은 물과 맞닿은 땅이었고 직접 물을 만날 수 있었다. 바다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바람에 작은 파도가 찰싹이는 게 귀여운 볼거리였다. 낮에는 반짝이는 윤슬을, 밤에는 건물과 가로등의 빛이 아른거리는 상을 만날 수 있었다. 이곳을 발견한 이후로, 산책으로 버려지지 않는 잡념과 규명되지 않은 감정은 이 물가의 몫이 되었다. 광활한 물과 짙은 깊이와 살짝 비릿한 파도 앞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특히 낮의 빛이 모두 가신 밤의 물은 더 어둡고 차분하게 흘러갔다. 나에게는 이곳이 주는 널찍하고 고요한 어둠이 필요했다. 자신의 한계를 보여주지 않는 크고 막막한 어두움 말이다. 그 앞에서 나는 그저 작은 익명의 존재로서 내 슬픔을 마주할 수 있었다.     


_소화되지 못한 물

밤의 초입은 하루 동안 소화되지 못한 감정과 상념을 마주하는 시간이다. 그것들을 쌓아둔 채 외면해버리면 더 큰 재앙이 되어 돌아올 것임을 경험을 통해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것이 눈물 정도의 크기일 때 흘려보내거나 증발시켜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그러나 원칙은 언제나 위반되는 법. 소화하기 버거운 문제와 잡다한 상념의 찌꺼기들은 내 안에 축적되어 크고 잔잔한 물 덩어리로 자리 잡았다. 이 물은 언제나 넘칠 태세로 방류의 기회를 노렸다.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의 물은 산책으로도 해소되지 않았기에 나의 마지막 노력은 물가의 더 큰 물에 기대보는 것이었다. 일단 나에게 편안한 어둠을 제공하는 그 물가를 찾아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는다. 그리고 물에 이런저런 상념을 풀어놓고 하염없이 바라본다. 내 앞으로 살랑살랑 다가오는 물에 내 안의 물이 조금씩 잔잔해진다.     


_물이 물에게

나의 물은 너무나 무겁고 예민해서 살짝이라도 건들이면 터져 무너질 것만 같은 골칫거리였다. 어떻게든 잘 감추며 살아가면서도, 폭탄처럼 터져버릴까 일상으로부터 거리를 두곤 했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내 물이 새어 나가든 넘쳐 엎어지든 간에 내 앞의 커다란 물이 다 받아줄 것만 같았다. 내 눈물 좀 떨어져 봐야 저렇게 한계가 없어 보이는 물에서는 티도 안 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커다랗지만 끊임없이 흘러가는 어둠 앞에서, 내 안에 고여있는 슬픔은 너무나 작았다. 나도 내 문제도 결국 아무것도 아니구나, 나는 미물이니 미물답게 가벼이 살아도 괜찮겠구나, 싶었다. 내 밖의 검고 큰 물은 나를 짓누르던 무게를 조금이나마 덜어줬고, 내 안의 물을 다루는 한 가지 방법을 알려주었다.     


물론 물가가 주는 포용적인 어둠과 물이 주는 위안이 모든 것을 해결하지는 않는다. 나에게는 늘 내 몫의 슬픔이 있다. 언제고 다시 차올라 넘치기를 반복하는 물이 있다. 이것을 어떻게 다스리며 살아야 할지 연구하는 것은 평생의 숙제가 될 것이다. 또한 바깥의 물과 내면의 물 사이에는 실질적으로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 역시 자명하다. 나의 물을 다스리는 데 세상의 물이 도움을 주더라도 그 물이라는 존재에게는 어떤 의도도, 의미도 없을 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자꾸만 그 공간에 주술적 의미를 부여하고 그 물을 나와 비슷한 존재자로 감각하게 된다. 비가 내리면 세상이 오열을 하는 것 같고, 물가가 물에 잠기면 오늘은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다고 말하는 것 같다. 세상의 모든 물이 누군가의 눈물이며 나의 눈물과 상호작용을 할 것만 같다. 어쩌면 내 안에서 넘치는 물이 누군가에게는 편히 유영할 수 있는 공간이 되리라 막연한 기대를 하게 된다.     


비가 오는 시기에는 물이 육지의 영역을 밟는다. 비를 동반한 방대한 물이 수위를 높여 공간을 침범한다. 나의 캄캄한 물의 공간이 그렇게 자취를 감춘다. 내가 울음이 가득할 때 물가에서 토해내듯이, 물이라는 큰 존재가 자신의 슬픔을 왈칵 쏟아내는 것 같다. 너에게도 그 많은 물을 소화할 시간이 필요하겠지, 하는 마음으로 아쉬움을 삼키고 응원을 보내게 된다. 나의 슬픔을 받아준 네 어둠이 더 짙푸르고 깊어지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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