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너무 많은 사람의 단상 공책 5
_코난의 멘트
코난 오브라이언의 유명한 멘트를 뒤늦게 접했다. 그는 쇼를 보고 있을 젊은이들에게 말했다. 절대 시니컬해지지 말라고. 냉소적인 염세주의자가 되지 말라고. 그는 늘 친절할 것을 강조했다. 그의 말에 깊이 공감하면서 감히 그의 말에 더하고 싶은 게 있다. 절대 허무주의자가 되지 말라고. 허무주의자가 될 바에는 차라리 염세주의자가 되는 게 낫다고. 염세주의자는 비관적이고 부정적이지만 그래도 그들은 생(生)에 가깝다. 반면 허무주의자는 사(死)에 가깝다. 허무주의자에게는 생을 향한 미운 정조차 부재한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에도 허무주의자가 되지 말기. 허무에 자신을 바치지 말기.
_책과 흉기
그 두꺼운 책은, 흉기가 될 수도 있는 그 두꺼운 책은, 얇디얇은 종이의 합이다. 얇고 무해한 것들이 쌓여 유해한 것이 된다. 작고 작은 활자들이 모여 크나큰 영향을 만든다. 일제강점기, 한 문인은 글을 쓰는 친일파들에게 차라리 절필을 하라고 외쳤다. 그 문인은 작고 무해한 활자들의 유해함을 알았던 것이다. 그들이 써대는 가벼운 글자들이 새카맣게 무리를 짓고 그 새카만 글자의 무리에 수많은 사람들이 쓸리고 홀려진다는 것을, 그는 처절히 알았던 것이다. 책은 도끼라 했던가. 책은 양날의 도끼다. 시원하게 뚫거나, 제멋대로 깨뜨리거나. 책은 글의 합이고 글은 활자의 합일뿐이지만 그뿐인 것만이 가닿을 수 있는 곳이 분명히 있음을 잊지 않아야 한다. 그 가닿음이 양날의 어느 쪽일지를 늘 숙고해야 한다.
_바다아이
프리다이빙은 바닷속으로 깊이 잠수하는 스포츠다. 호흡 장비 없이, 오래도록 숨을 참고 바다의 수압을 견뎌내며 최대한 깊이 잠수해야 한다. 한 프리다이버는 유년시절부터 프리다이빙의 세계를 꿈꾸었다. 그러나 자신의 꿈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차라리 하늘을 나는 직업을 꿈꿨다면 상황이 나았으리라, 나는 홀로 짐작한다. 잠수사보다 파일럿을 꿈꾸는 사람이 훨씬 많은 건 결국 대다수가 하강보다 상승을 꿈꾸기 때문은 아닐까. 우리는 늘 높은 곳을 바라보라고 배웠으니.
우리는 높은 하늘을 목이 뻐근하도록 바라본 적은 있어도 깊은 심연을 목이 뻐근하도록 내려다본 적은 거의 없다. 오직 심연과 자기 자신 뿐인 고요한 곳으로, 숨조차도 부재하는 곳으로 잠기는 프리다이버처럼 깊이 잠겨본 적이 있는가. 그럴 필요성을 느껴본 적이라도 있는가. 도처에 널린 ‘From the bottom to the top’ 말고 다른 꿈을 가져본 적이 있는가. 상승욕구를 역행하는 프리다이빙의 세계를 보며 ‘From th bottom to the top’ 말고 옆으로, 옆으로, 그 너머로 번지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선언하고도 자꾸 박수갈채를 상상하던 내가 생각나 자꾸 부끄러웠다. 새가 아닌 심해어를 꿈꾸며 기꺼이 잠기는 그들을 보며 마음을 다잡는다. 송전탑처럼 높은 곳에서 내리쬐는 글이 아니라 바다처럼 한없이 넓게 번지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되자고. 바다아이가 되자고.
숨을 참고 눈을 감고 귀를 닫고 그곳으로 갈 거야
너를 안고 손을 잡고 그곳으로
저 높은 곳을 날아오르는 새가 아니더라도
더 낮은 곳에 깊은 바다로, 깊은 바다로
윤하, <바다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