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에 제주가 흐른다.

제주 살기 18

by 바다나무

눈감을 때의 아쉬움과 눈뜰 때의 설렘을 안은채 하루하루가 빠르게 지나갔다.년과 올해를 '내 인생의 하프타임'이라 스스로 명명했기에 다 비워내고 다시 채우려고 했다. 단지 이번여행에서는 하루의 시간을 따라가며 내 기억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기록했다. 글쓰기의 기본원칙과 상관없이 서사와 묘사의 적절한 비율도 뛰어넘으며 제주의 맛과 멋에 취해 하얀 백지그릇을 채워 나갔다. 오늘은 무엇으로 빈 그릇을 담아 볼까? 단 걸으면서 담아내어 보리라. 맛은 그다음이다.


제주의 신비를 한 곳에 볼 수 있다고 하는 생태관광의 메카로 알려졌다는 거문오름을 오르기로 했다. 이곳은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되어 있었기 때문에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곳이라 사전예약을 해야 했다. 우리는 제주세계자연유산센터를 통해 사전 예약을 하고 문화해설사와 동행하며 탐방로를 산책했다. 긴 시간소요와 번거로움이 있지만 꼭 한번 가보고 싶은 오름이었다. 그것은 어떻게 이 오름만이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되었는지 그 특별함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다녀온 몇 개의 오름들은 능선을 타고 올라가 정상을 완주하고 주변을 조망하며 내려오는 코스였다. 하지만 거문오름은 분화구내의 탐방로를 산책하면서 역사유적지와 다양한 식생을 관찰할 수 있는 오름이었다. 그 분화구 안에는 또 다른 알오름이 존재하고 있었고, 태평양전쟁 당시의 일본군이 만든 갱도 진지가 있었다. 그리고 제주민의 삶의 흔적이 담긴 숯가마니터가 있었고, 용암이 분출하여 만든 도랑(협곡)이 존재하고 있었다. 나무와 덩굴이 어수선하게 엉클어진 숲과 희귀 식물의 군락지가 있었다. 신비의 세계다.


2시간이 넘는 다소 긴 시간의 산책을 하면서 문화해설사를 통해 다양한 제주의 삶과 애환이 있는 역사를 알게 되었다. 이번에는 관광을 왔다기보다는 제주살이를 왔던 터라 스쳐 지나가는 유랑자가 아닌 현지민으로 제주의 삶 속에 함께 머물러 보고 싶었다. 제주를 좀 더 자세히, 바로 아는 게 중요했기에 숲 해설가, 도슨트, 문화해설가 등 양한 전문가들의 도움을 필요로 했다. 역시 전문가운 면모를 보여주었기에 주를 알아가는데 도움이 되었다.


제주를 여행할 때면 시간의 여유가 있을 때는 올레길이나 오름을 걸었다. 다 가보진 않았지만 가는 곳곳에서 느껴지는 제주의 아름다움은 오랜 시간과 함께 공들여지고 가꾸어진 것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시간 속에서 스스로 가꾸어 놓은 분화구의 다양한 식생들도 인간의 손길을 거부한 채 자연 그대로 보존되어 가히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이 걸은 탓인지 배고픔에 발길이 방황한다. 한정식집으로 갔다. 점심시간이 지난 지 오래되었음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끊임없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젊은 연인들의 속삭임이 들린다. 다음엔 부모님 모시고 다시 오자고. 쌈채소와 제육볶음, 고등어구이를 동반한 보리밥으로 허기를 채운다. 부모님이 생각날만한 음식이다. 가려고 했던 카페가 오늘 휴무라 아쉬움에 발길을 돌렸다.


돌문화박물관으로 갔다. 관람시간이 끝나갈 무렵이라 잠시 박물관 안에 있는 초가집 카페에서 테이크아웃하여 전동기차에 올라탔다. 넓은 이곳을 거문오름을 다녀온 터라 무작정 걷는 건 무리라고 생각했다. 전체를 한 바퀴 전동기차로 돌고 중요한 곳은 걸어서 관광하는 것으로 했다. 이 또한 안내자의 추천에 따른 관광방법이다. 돌문화박물관에는 설문대할망과 오백장군을 테마로 한 돌비석들이 웅장하게 버티며 제주의 옛 역사를 지켜주고 있었다.


돌 전시관에 들어갔다. 많은 돌을 보면서 이 무거운 것들을 어떻게 여기까지 가지고 왔을까 하는 생각에 인간의 위력을 느껴본다. 특히 부양(浮揚)된 돌을 보고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눈으로는 화려하지 않지만 마음에 무채색의 진한 아름다움을 그려낼 수 있는 곳이다. 밖으로 나와 방수장화를 신고 커다란 하늘연못으로 들어갔다. 여기 또한 관광객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두 팔 벌린 내 몸이 물 위를 떠다니다 곧 하늘과 맞닿아을 듯하여 신비로움을 느끼게 해 주었다. 넓은 공간에 자리 잡은 많은 초가집들도 제주사람들의 삶의 모습뿐 아니라 옛것의 그리움을 소환하기에 충분했다.


멋지고 좋은 카페를 갈까? 돌문화 박물관을 갈까? 잠시 망설였던 순간들이 무색해졌다. 머리로 알고 있던 삼다(三多)의 돌의 실체를 직접 알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어디 이뿐이랴. 용암분출로 인한 거문 오름 분화구를 직접 걸으면서 살펴볼 수 있는 기회는 어느 관광지를 가본 것보다 의미가 있었다. 살아가는 날동안 배움의 끈을 놓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모르면서 아는 척했던 시간들 부끄러워진다.


많이 걸은 탓인지 몸이 쉼을 자처한다. 일단 숙소행이다. 잠시 쉼을 즐기고 난 후 야경이 아름다운 숙소의 카페에서 빈약하지만 시원한 팥빙수로 못다 한 카페투어의 아쉬움도 달래 본다. 피부에 닿는 찬기운과 목줄을 타고 가는 찬기운에 전율이느껴진다. 내 가슴 한구석에서는 용암처럼 뜨거운 제주가 흐르고 있데,..


※ 혹시 모를 여행자를 위해 다녀온 장소를 기록해 본다.(제주세계문화유산센터. 문오름. 낭뜰에 쉼팡. 돌문화 박물관. 덕천연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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