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폰이 울렸다. 우체국 택배라고 하면서. 문을 열었더니 커다란 아이스박스가 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다. 작은언니가 보낸 물건이다. 며칠전에 이사 온 집주소를 묻더니. 박스를 열어 보았다. 반찬통에 서너 겹 씩 싼 음식들이 가득하다. 겉절이, 무생채, 마른반찬, 마늘 초절임... 심지어 양념쌈장까지. 맛을 보니 엄마 손맛이다.
나는 1남 3녀 중 셋째 딸이자 막내이다. 부모님과 맏이인 큰오빠는 일찍 돌아가시고 지금은 언니들 둘만 있다. 두 살, 다섯 살 터울인 언니들이라 나이를 먹다 보니 다 비슷하다. 어쩌면 젊은 사람들 커가는 것에 비하면 늙는 것은 더디다는 옛말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가끔 큰 형부는 큰언니가 제일 젊어 보인다고 처제들을 약 올리기도 한다.
얼마 전에 감기가 걸렸었다. 이번감기는 아주 독했다. 남편도 같이 걸렸던 탓에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감기와 싸워가며 일상생활을 영위했다. 내과를 가고 이비인후과를 가고 링거를 맞았음에도 족히 3주 이상을 감기와 씨름한 것 같다. 그런 와중에도 우리는 마스크를 쓰고 할 건 다하고 다녔다. 가만히 있으면 자꾸 기분이 처지거나 가라앉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밤이면 유독 기침이 심하고 몸의 여기저기가 아팠다. 그래도 누워있기보다는 움직였다. 퇴직을 하면 모두 한차례씩 홍역 앓듯이 아프다고 한다. 아마도 신체리듬이 바뀐 탓이리라. 지난 1년 나는 아프지 않고 잘 지나갔는데 올해 퇴직한 남편이 남들과 똑같은 과정을 거쳐가는 건 아닌지 은근히 걱정이 되기도 하였다. 다행히 지금은 괜찮다.
밥맛은 뚝 떨어지고 기침은 천둥처럼 가슴을 때렸다. 병원에 가면 코로나의 변종이라고 하면서 연세 드신 분들은 두 달까지 갈 수도 있다고 겁을 주기도 한다. 보통은 최하 2주. 한 달까지 갈 수 있다고 하더니 정말 오래갔다. 그즈음 언니들과 뭉치기로 했었다. 퇴직하면서 일 년에 한두 번 2박 3일 정도로 자매여행을 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모임을 취소하였다. 특히 이번 모임은 작은언니가 제일 기다렸다. 지난번 제주살이 할 때도 비행기표까지 예약해 놓고 포기했던 아쉬움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치매에 걸린 시어머님과 신장투석을 하시면서 며느리 바라기를 하고 계시는 시아버님을 외면할 수 없어기에 작은언니는 제주여행을 포기했었다. 신혼여행 이후 제주도를 가본 적이 없는 작은언니였기에 나는 안쓰러운 마음에 초대를 했던 것이다.
작은언니는 조석으로 시어르신들 음식을 하면서 감기로 입맛이 없다는 동생이 걸린 듯했다. 경기도 양평에서 자매교사를 하면서 같이 자취를 한 탓에 누구보다 내 식성을 잘 알고 있었다. 아플 때마다 엄마 손맛을 그리워하는 막냇동생의 철부지 어리광을 잘 아는 터라 그냥 간과할 수 없었던것 같다. 무엇보다 엄마 손맛을 가장 잘 연출하는 사람도 작은언니라는 걸 우리 자매가 모두 인정하는 것도 한 몫 했다.
나는 배추 겉절이에 무생채를 넣고 참기름과 고추장을 넣고 비벼 먹는 것을 좋아한다. 사는 쌈장보다는 집에서 양파와 들기름을 넣고 만든 쌈장에 상추를 싸 먹는 것도 좋아한다. 삼겹살엔 파김치와 마늘 초절임을 얹어서 먹어야 한다. 입맛 없을 땐 물에 말아 콩자반이랑 먹는다. 이런 내식성을 모범답안지처럼 작은언니는 꿰고 있다.
아이스박스 속에 택배로 온 음식들을 보며 순간 울컥한다. 어제 하루종일 주방 앞에 서 있을 언니 모습이 눈에 선했다. 먹고살만한 60이 다 된 동생을 위해. 그것도 퇴직해서 시간이 여유로운 동생을 위해 시어른들 모시는 바쁜 시간을 쪼개어 음식을 이것저것 만들어 보내 준 것이다. 친정엄마가 막내라고 늘 어우르신 것이 언니들에게도 언제나 보살펴 주어야 하는 어린 막내였던 것이라고 생각하니 너무나 미안했다.
지난여름 언니들과 처음으로 한 자매여행을 언니들은 오랫동안 기억했다. 무척 즐거웠나 보다. 그동안은 내가 직장생활을 했던 터라 맘 놓고 자매들끼리 여행시간을 맞추는 게 쉽지 않았다. 우리 세 자매는 여행을 하면서 드레스 코드를 하고 밤새워 깔깔거리며 놀았다. 두건으로 멋을 내다가, 깔맞춤한 미키마우스 원피스로 동심으로 돌아갔다가, 파자마 파티를 하다가, 노란색 우비와 몸배바지를 입고 농장에서 놀다가...우리는 모처럼의 만남에 드레스 코드로 이벤트를 했다.
생각해보니 그동안 삶속에서 긴장하며 살고 있었다. 언니들은 어른들 모시고 병수발하느라고. 나는 직장생활 하느라고 바쁘고. 그날만큼은 무장된 정신을 해제하고 반쯤 미친 듯이 놀았다. 친정엄마 이야기를 하면서 울다가. 고스톱 하면서 웃다가, 자식들 이야기에 서로를 멋진 엄마라고 치켜 세우다가, 편찮으신 시어른을 모시고 있는 언니들을 위로하다가. 밤이 다 새도록 우리는 묵은 자매의 정을 나누고 이렇게 열심히 살 수 있도록 나아주신 부모님을 그리워 했다.
피를 나눈 자매는 자주 만나지 않아도 언제나 끈끈했다. 언니들에게 한번 막내는 영원한 막내였다. 작은언니는 먹거리로 나를 지켜냈지만, 큰언니는 정신적인 지주로 나를 뒷바라지했다. 친정부모님이, 장남인 큰오빠가 일찍 돌아가신 텅 빈 친정에는 언제나 든든한 두 언니가 있었다. 이 나이 되도록 늘 준것없이 받기만 했던것 같아 미안했다. 이제 앞으로 살아가는 날 동안 막냇동생의 작은 운전서비스로 즐거운 여행나들이길에 건강한 몸으로 동행만 해 주길 바랄 뿐이다. 언니들 고마워!
* 대문사진 ㅡ영화 세자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