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른 은을 단단하게 만드는 방법
은은 두드리고 괴롭힐수록 단단해졌다. 금속 공예를 익히겠다고 배우러 다닌 때였다. 은이라는 금속은 손이 많이 갔다. 은 자체로는 성질이 물러서 7.5%만큼 다른 금속을 섞어주어야 했는데, 탄생한 92.5% 함량의 은은 불순물이 섞이고도 순은이라고 불리었다.
순은 알갱이를 뜨거운 불로 녹이고, 액체가 된 그것을 굳기 전에 무거운 망치로 두드리면 널찍한 은판이 만들어졌다. 마치 옛날 드라마 주몽에서 배우 이계인님이 맡았던 대장장이 모팔모가 된 듯함을 느끼는 과정. 일명 담금질. 숨을 잠시 돌리면, 선생님은 담금질을 다시 하도록 시켰다. 반복해야 은이 단단해져 견고한 물건을 만든다는 이유였다. 시키는대로 나는 애써 만든 은판을 불에 녹여내고 다시 망치로 두드렸다. 또 녹이고, 두드렸다. 액체와 고체를 거듭할수록 은은 제 모양을 유지하려 했고 펼치는데 힘이 들었다. 은은 정말로 단단해지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은의 성질을 닮은 것 같다. 무언가로부터 쾅쾅 두드려지고 나면 한 층 단단해진다. 뜨거운 불에 힘 없이 녹았다가도 다시 굳으면서 제 모양 갖출 힘을 만든다. 무르고 연약한 100% 함량의 순'나'로 태어나, 자기와는 다른 사람, 가족, 친구와 섞여서 92.5% 함량의 나로 선다. 925순은처럼, 그래도 나는 나다.
금속 공예와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터지면서 멀어졌다. 코로나 때문에 타 지역 공방까지 이동을 할 수 없는 시국이었다. 그래도 튼튼해지라고 은을 괴롭혔던 일은 이따금씩 생각난다. 상황이 나를 다른 모양으로 구부리려는 것 같을 때, 자기다움을 골몰하는 사람을 볼 때. 쉬이 말할 수는 없지만 무른 은도 두드리다 보면 단단해졌던 기억이 내겐 힘이 된다. 무릇 바로 서기 위해서 필요한 과정일 거라는 안도, 다음에 또 두드리려 온다 해도 기꺼이 겪겠다는 객기 같은 용기. 이런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