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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찌히브리 Jan 18. 2024

담백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담백하지 않음의 만유인력




  비유하자면 정갈하고 담백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왜 그, 마음이 여유 있고 행동이 느긋한. 상냥한 미소로 눈을 맞추고, 상대를 편안하게 하는 사람. 고운 말씨를 쓰고 선이 확실하며 때론 적절한 위트를 사용하는 신사. 완벽한 어른을 상상하고 선망하며, 그에 맞는 행동을 하겠노라 다짐했다.


  그러나 다짐은 번번이 나를 실망시켰다. 사람을 새로이 만나는 일은 언제나 긴장이었다. 말을 길게 하기 부끄러워 단답을 했고, 단답을 안 해야지 싶으면 장황해졌다. 나고 자란 고향의 억양과 센 말투도 오해를 살까봐 바꾸길 바랐다. 갈 곳 잃은 눈동자는 마주 앉은 이의 뒤편에 자주 두었다. 위트는 고사하고 이상한 포인트에 웃다가 아차 하곤 했다.

  정작 상대방은 아무 생각 없을 텐데, 집에 돌아 와선 이불을 뻥뻥 찼다. 좋은 사람이고자 했건만, 작년의 나는 가장 친한 친구에게 가장 좋은 친구이지 못했고, 과거엔 어른스럽지 못한 모습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다. 선이 명확해서가 아니라, 방법을 모르겠단 이유로, 다가오는 이들을 밀어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다. 다듬어지지 않은 모습을 감추려 애쓰면서도, 내가 좋아하게 되는 사람 역시 어딘가 흐드러진 이들이었다. 다들 이상한 구석이 있다. 첫 만남에 맘대로 말을 놓아서 상대가 어색함을 느낄 새도 없게 만들어버린다거나, 자기소개 시간에 대뜸- 원하는 게 있으면 함께 기도해 주겠다며 무교인을 심쿵 시킨다. 욕을 잘 사용하는데 그게 너무 시의적절해서 매력이다. 자기의 중요한 목표를 두고서도 소중한 사람의 최선은 무엇인지 골몰한다. 세상 전문가 포스인분이 식물에 이름을 붙여주고 흐뭇해한다. 그러니까 그 사람 고유의 엉뚱함을 내비치는 식으로 이들은 사람을 홀린다.




 이들에게서 헤어나올 도리란 없다. 흐드러진 틈으로 한 인간의 영혼이 드러나는 순간에 빠져들고 나면, 정갈하고자 세워두었던 마음의 경계선이 무너진다. 이들 곁에서 나는 어쩐지 무조건적 지지를 보내는 주접 인간이 된다. 늘 되길 바랐던 담백한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지더라도, 달리 마음을 표현할 방법이 없으니 아마 나는 앞으로도 주접을 부리고 질척대겠지.


 그렇담 이건 담백하지 않음의 만유인력이 아닐까? 담백한 음식은 그 하나로 완벽한데 반해 누군가가 고유의 맛을 뿜어내는 덕에 사람들은 끝내 끈끈하게 붙어있겠구나. 이에 달라붙는 캐러멜 사탕처럼, 크림 파스타와 새콤한 피클처럼. 새해에는 느끼하고 솔직하게 구는 이를 알아봐야지. 엉뚱한 영혼을 찾아내서 흠모해야지. 정갈한 인간은 흐드러뜨려놔야지. 새해에는 그런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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