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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찌히브리 Feb 22. 2024

마춤뻡 지키미와 파괴자가 만나면

우리의 대화에 사전은 필요 없다



"나 지금 알리쏭달리쏭 해."



 P에게서 카톡이 울렸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뭐가 궁금한 걸까? 싶었다. 알고 보니 알리쏭달리쏭은 술에 취한 알딸딸함을 표현하는 P만의 언어였다. P는 술을 마시고 나면 기분이 알리쏭달리쏭 하다고 했다. 정작 알리쏭달리쏭과 어감이 비슷한 알쏭달쏭한 순간에, 그는 알까말까 하다는 말을 썼다.





“요호요호!”


“...?”


“요호호! 해 봐 “


“요호호?”


“더 크게에 “


"요호호!!"



 내가 힘 없이 축 처져있던 날 P는 응원구호를 만들어냈다. P가 '요호요호'라고 하면, 나는 '요호호'라고 꼭 대답을 해야 했다. 부추김에 마지못해 요호호를 외치다 보면 웃음이 났다. ’요호요호 요호호‘ 는 오늘처럼 하늘이 희끔한 날엔 파이팅을 대신하는 인사가 되기도 했다.


  P는 사회에서 약속된 언어를 통상에서 벗어난 곳에 갖다 붙이거나 세상에 없는 표현을 자주 마음대로 지어냈다. 그뿐이랴, 늘 같은 맞춤법을 틀렸다.


   처음 몇 번 나는 '마춤뻡 지키미'가 된 듯 굴었다. 예를 들어 P가 메신저에서 “낚시하‘로’ 가는 중”이라고 하면, “낚시하‘러’ 가?” 라며 고치는 식이었다. 어디 가서 실수할까 봐 괜한 걱정이 들었는데, 사실 그런 불안은 나를 향한 것이었다. 남에게 완벽한 모습을 보이고 싶은 맞춤법 강박의 종류였으려나. 다행히 P는 지적 같은 것에 새초롬해 않는 여유를 가진 사람이었다. 수정을 하면 P는 아 그렇구나- 하고선 당분간은 '하러'라고 바르게 썼으며 또다시 어느 날은 '하로'라고 했다.







  틀리는 것에 개의치 않았던 P. 맞춤법은 어떤지 몰라도 그가 쓰는 말의 내용은 항상 단순하며 진실했다. 언제부턴가 그의 쓰고 말하는 방식에 스며들었던 것 같다. 나는 맞춤법에 대한-실수를 내보이지 않으려던- 약간의 강박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심지어 P가 맞춤법을 틀리는 게 귀여워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 맞춤법이 우리 사이에 뭐가 중요해? 사전적 정의가 그렇게 중요한가? 네가 편하게 말하고 내가 귀여워하면 됐지. 우리끼리 통하면 됐지.







 시간이 꽤 흘렀다. 여전히 타자를 치다가 P의 표현을 빌려 '알까말까' 할 때면 맞춤법을 검색해 본다. 하지만 더 이상 강박적으로 굴지는 않는다. 우리의 대화엔 세상의 규칙보다 중요한 게 있음을 P에게서 배웠다.


  어느 친밀한 관계에서나 우리만의 언어는 만들어진다. 가족끼리 통하는 암호일 수도 있고 친구끼리의 에피소드가 실린 표현일 수도 있다. 틀려도 아무렴 괜찮은 자유로움, 우리끼리 이해하는 언어를 만들어 나가는 관계. 지금의 나에겐 맞춤법이나 사전보다, 이런 것이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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