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상하게 키보드만 보면 그냥 못 지나쳐요. 종류별로 모으다 보니 마치 옛날 사람들이 만년필을 모으듯, 저는 키보드를 쌓아두고 있더라고요. 이런 컴퓨터 주변기기, 영어로는 peripheral devices라고 부르죠. 근데 이 peripheral이라는 단어가 의학에서도 쓰인다는 거, 아셨나요? nervous system이랑 붙으면 peripheral nervous system, 그러니까 뇌랑 척수를 제외한 말초신경계를 말해요. 쉽게 말하면 우리 몸에서 키보드랑 프린터 같은 역할을 하는 거죠. 키보드로 정보를 입력하고, 프린터나 모니터로 출력하듯이 말이에요. 말초신경계는 근육에 신호를 보내서 우리가 움직일 수 있게 해줘요.
여기서 afferent nerves는 말 그대로 입력장치(input), 우리 몸이 외부 자극이나 몸속 상황을 감지해서 중앙(중추신경계)으로 보내는 역할을 해요. 반대로 efferent nerves는 출력장치(output)라서 중추신경계에서 근육이나 분비선 같은 말초 기관으로 명령을 보내죠. 둘 다 라틴어 ferre(운반하다, 나르다)에서 나온 -ferent라는 어근을 공유해요. a-는 ad-에서 온 거라 “toward”, e-는 ex-에서 온 거라 “out of”라는 뜻이고, 정보가 흐르는 방향을 딱 보여주죠.
Cf. peripheral 어원 좀 볼까요? 그리스어 peri(περί)는 “둘레, 주변”이란 뜻이고 pherein(φέρειν)은 “운반하다”예요. 라틴어 ferre랑 같은 역할을 하는 거죠.
재밌는 건 이 Cf.라는 표현 자체가 confer에서 왔다는 거예요. “함께 가져오다, 비교하다”라는 뜻인데요, 여기도 ferre가 들어있죠. 고대 언어 사람들, 진짜 온갖 걸 열심히 나르고 다닌 것 같지 않나요?
peri라는 접두사도 은근 자주 써요. 주변, 둘레라는 뜻인데 perimeter도 여기서 나온 거예요. 범죄 현장에서 노란 테이프로 둘러치는 거, setting the perimeter라고 하죠. 의학 용어에서도 peri-가 자주 붙어요.
Pericardium: 심장을 둘러싼 막 (cardi-는 heart라는 뜻)
Periarthritis: 관절 주변에 생기는 염증 (arthra = joint, -itis = inflammation). 어깨에 석회가 쌓여서 아픈 병을 calcific periarthritis라고 부르는데, calcific은 calcium-related라는 뜻이에요.
Periodontitis: 치아 주변에 생기는 염증 (odont = teeth, 라틴어 dent-, 그리스어 odont-). 우리가 잘 아는 Perio 치약도 여기서 따온 거예요. 잇몸 건강에 좋다는 의미죠.
Peritoneum: 복부 장기를 감싸는 얇은 막인데, 장기를 팽팽하게 싸고 있어서 toneum이 stretched를 뜻해요. peri가 붙어서 “주변을 싸고 있다”라는 의미가 됩니다.
제가 이렇게 주제에서 살짝 옆으로 샌 얘기를 periphrase라고 해요. phrase는 글의 구절이고, periphrase는 빙빙 돌려 말하는 거죠. 지금 이 글도 periphrase일까요? 아마… 아니길.
제 책에서 발췌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