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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Nov 10. 2022

2022년 11년 13일

생일보다는 늦고 결혼식보다는 이른 마음

  처음 먹었던 배스킨라빈스는 엄마는 외계인, 처음 갔던 콘서트는 올림픽 체조경기장 10CM, 처음 가봤던 해외여행은 너랑 네 동생 ㅇㅈ까지 함께했던 홍콩과 상해, 처음 사본 인터넷 쇼핑몰은 지금은 사라진 아리샵, 처음 산 자가용은 SM3, 지금 생각나는 처음으로 챙겨본 드라마는 아마도 쾌걸춘향, 이건 말해놓고 후회할 것 같지만 처음 만든 이메일 아이디는 엽기공주32. 그리고 고등학교 들어와서 처음 짝꿍으로 앉았던 사람은 뽀얗고 조금은 시니컬하게 느껴지던 너.

  2022년 현재 가장 좋아하는 배스킨라빈스를 꼽으라면 뉴욕 치즈 케이크랑 조금 고민을 하다가 금세 마음을 고쳐 먹고 민트 초코를 고를 거야. 10CM는 그 후로도 몇 번 공연을 찾아 갔었고, 여전히 좋아해. 그 사이 여권에는 너와 또 네가 아닌 사람과 함께한 외국들의 출입국 도장이 찍혀 있고, 피팅 모델이 예뻐 친구들과 함께 구매를 도전했던 아리샵은 이제 운영하지 않고, 운영한다고 그때처럼 거기 옷을 예쁘게 생각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처음 산 자가용은 운명을 다하고 지금은 까만 모닝을 타고 출퇴근을 하지. 처음으로 챙겨본 드라마는 쾌걸춘향이었던 것 같은데 그 시절 내 또래 아이들은 다 그랬다고 믿어. 가끔 생각 나서 OST는 챙겨 듣지만 다시 정주행하고 싶은 마음은 1도 없어. 이메일 아이디가 왜 저 모양이냐고 묻는다면 사촌 언니가 만들어준 거라는 점만 기록해둘게. 중학교 들어가자마자 아이디가 싫어서 탈퇴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그리고 고등학교 예비 교실에서 처음 내 짝꿍이었던 너랑 나는 서로 안 좋은 첫인상을 지닌 채로 새학기 같은 반에서 만나 운명의 장난처럼 앞뒤 번호로 다시 만났지. 그리고 14년째 이렇게 함께하고 있어.


  밑도 끝도 없이 처음을 늘어놓는 이유는 내가 너에게 이렇게 편지를 쓰는 이유가 단순히 처음 때문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서야. 네가 결혼식을 처음 올리는 친구라서 축사 맞춰 생일 편지를 쓰는 게 아니야. “너라서” 적는 거야. 물론 처음은 한 번뿐이고, 그 처음을 너와 함께 한 것들이 많아서 기뻤어. 하지만 ‘처음’이라는 이유만으로 이 편지를 적는 건 아니라고 꼭 말해두고 싶었어. 처음이 끝이 된 것들도 적지 않아서 처음 다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날이 갈수록 깨달아. 처음에 좋았던 것들이 여전히 좋은 것들이 있고, 그사이 나와 맞지 않다거나 더 좋은 다음을 만나 지금은 내 곁에 있지 않은 것들을 꽤 있었어.

  그런 깨달음을 떠올리면서 너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해. 네가 태어난 시월도 지났고 벌써 11월이 열흘이야. 그리고  밤만 자고 나면  결혼식이야. 축하 인사가 늦어진 것도 모자라 심지어 달을 넘겼다고 조금은 네가 서운해할까? 아니다, 올해 결혼 준비로 바빠 너도 당일에  생일 축하를 전하지 못했으니 그럴 수도 있다며 쿨하게 넘길까?  사이 어디쯤일  같기는 한데, 네가 섭섭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문득 들어. 서로에게 서로를 기대하고 바란다는 것이 내게는  근사한 관계라서 너와 나의 사이도 그러길 진심으로 바라. 설사 각자의 바람만큼 부응할  없어 가끔 실망한다고 해도 말이야.


  네 결혼식 전에는 생일 축하 편지 겸 결혼 축하 인사를 전하고 싶어서 마음이 동동거렸어. 이러다 정말 결혼식 날이 오고, 신혼여행도 다녀와버리고, 갑자기 애도 낳고 그럴 것만 같은 거야. 편지를 적어보자고 책상에 앉았다가 처음을 뭐라 적을까 고민하다가 몇 자 적지 못하고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는데, 이상하게 눈물이 나더라. 내가 사랑하는 친구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함께 보낸다고 모두에게 약속하는 기쁜 날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다니 정말 이상한 일이야. 이건 슬퍼서가 아니야. 왜 자꾸 눈물이 날까 고민을 하다가 편지를 쓰다 보니 알겠더라. 아쉬움이었어. 조금 더 오래 자주 만날 수 있던 시절에 더 열심히 쏘다녀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아쉬움, 앞으로 네 생활에 나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훨씬 더 많이 생겨날 거라는 아쉬움, 네가 새롭게 맞닥뜨릴 고민들이 어쩌면 내가 가늠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아쉬움, 이제 늦게까지 만난 날 너를 데려다줘야 할 곳이 우리가 가장 자주 모였던 노형이 아니라 이름도 멀찍한 아라동이라는 아쉬음.

  그래도 네가 말한 것처럼 우리에게 여전한 것들이 더 많을 거야. 너와 나 사이에는 친구들이 있고, 같은 고등학교와 같은 대학교 심지어 같은 학과가 있고, 고등학교 함께 다니던 교육봉사가 있고, 너와 나만 아는 사람들도 있지. 너와 내가 하교하는 버스 안에서 함께 들었던 플레이리스트가 있고, 네가 찍어서 보여줬던 네 일기장 속 내가 있고, 내가 너에게 보냈던 괴발새발 손편지가 있지.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지금과 다른 앞날을 씩씩하게 맞이할 용기가 생겨. 너도 그럴까.


  기분 나쁘라고 하는 말 아니지만(응, 알아. 이렇게 시작하는 말은 99퍼센트 기분이 나쁘더라^^..), 너랑 내 관계가 나만 놓으면 끝날 것 같던 시절이 있었어. 종일 붙어있던 대학시절에는 그게 특히 심해서 너를 알게 될수록 내가 너무 네가 좋아하지 않을 것 같은 부류의 사람일 것 같더라. 내가 아니라고 하면 넌 미련 없이 나를 두고 갈 수 있을 것 같았어. “나는 너희만 있으면 돼. 더 친구를 늘리고 싶지 않아.”라고 딱 잘라 단박에 말하는 너를 앞에 두고 나는 매일 새로운 사람들이 궁금해서 기웃기웃거렸어. 나는 아침형 인간인데 너는 밤에 더 활달하고, 속전속결 미리 끝내버리는 나와 다르게 너는 서두르는 법이 없었어. 호불호가 확실한 네가 볼 때 세상에 좋은 게 너-무 많은 내가 얼마나 물색 없게 보일까 싶고, 밤마다 친구들과 메신저를 주고 받고, 심지어 공부할 때도 영상통화를 켜놓는 네가 볼 때 집에 가면 휴대폰 안중에도 없는 내가 얼마나 무심하게 느껴질까. 티는 내지 않았지만 고민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어.

  같이 이어폰 끼는 거 싫어하는데, 이어폰 나눠끼고 하교하던 버스를 기억해. 네가 우산을 펴면 누구보다 빠르게 들어가 네 옆에서 서던 비 오는 날도 기억해. 주머니에 뭐 넣어놓고 다니기 싫어하는 너인데, 뻔뻔하게 내 손을 네 외투 주머니에 담고 걸어 다녔던 숱한 겨울도 기억해. 목소리 크고 정신 없고 손이 많이 가는 나를 곁에 두고 요란하지 않게 고개를 끄덕이거나 제지를 하며 챙겨주던 너를 기억해. 자기와 맞지 않는 사람과는 미리 거리를 두고, 싫어하는 사람을 곁에 두는 법이 없는 네가 나를 위해 불편해하던 것들을 얼마나 많이 내려놓고 내게 맞춰주려 했는지도.

  자꾸 그런 게 보이기 시작하니까 내 생각과는 반대로 네가 우리 관계를 제대로 꽉 잡아주고 있다는 걸 번뜩 알게 되었어. 이건 우리 관계의 유레카고, 길거리에서 나를 울리게 했던 어느 해 네가 보내준 내 음력 생일날 카톡과도 같아. 그것만도 나는 너와 함께할 이유가 있어. 네가 내 생일과 송년회 때 보내주던 편지가 자주 나를 보살펴주었고, 전에 없던 나를 만들기도 했어. 갑자기 누군가를 만나 맛있는 걸 먹고 싶은 평일 저녁 퇴근 후 급약속을 잡게 만들고,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갑자기 중간에 내리게 만들고,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동유럽을 가게 만들고, 살다 살다 조각 케이크를 참는 기간도 지내게 하고, 퇴근 후 뭔가를 공부하고 싶게 만들고, 사랑 싸움을 하고 싶게 만들고, 하다 하다 결혼식 청첩장에 친동생이 캐리커쳐를 그려주었으면 하고 바라게 만들었어.


  나도 너에게 그런 친구였을까. 퇴근길 갑자기 약속을 잡을 수 있고, 아주 오래 만나지 못하다 본다 해도 거리낌 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태어난 날이면 어김없이 생각이 나고, 함께한 것들이 가끔 상상을 초월할 만한 힘을 주고, 어떤 선택을 할 때에 기준이 되기도 하고, 앞날을 그릴 때 자연스럽게 그 안에 들어있을까. 전에 불멍을 하다 말고 내가 그랬지. 네 결혼에 내가 너에게 바라는 것은 단 하나. 네가 ‘행복’해지는 것뿐이라고. 지금 네 생일과 결혼을 축하하며 내가 바라는 것은, 나도 너에게 너와 같은 친구일 수 있기를!


  귀하고 소중한 내 친구 양과 말아. 서른 번째 생일을 축하하고, 이 선생님과의 DAY 1을 축하해! 보기보다 질투심이 많아서 나 말고 다른 사람과 너~무 행복하면 시샘이 나 입을 삐쭉거리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지금 딱 좋다. 스스로도 놀랄 만큼 의연한 나야. 이건 우리 관계에 대한 신뢰의 다른 표현이겠지. 누구의 부인이 된 걸 축하해! ‘새댁’ 또는 ‘누구 엄마’로 불릴 날도 오겠지. 그럴 때에도 너는 내 영원한 양과 말이야. 흰 양말 사다가 한 쪽에 양을 그리고, 다른 한 쪽에 말을 그려 너에게 선물할 때부터 그랬어! 너도 알지? 헤헤.


  , 진짜 마지막으로, 지금에서야 생각나서  가지  바람을 적어본다. 누군가의 엄마가 된다면 첫째 초등학교 입학 책가방을 내가 사줘도 될까? 그러고 싶다.  해줘. 이만 줄일게. 이렇게 기쁜데 그런데도 나는  울지 않고 보낼 자신이 없어. 그치만 신부 화장 비싸고  오래 손님들 맞이해야 하니까 생글생글 웃어줘. 축사를 듣다 내가 울어 버릴지도 모르지만(아마 200퍼센트의 확률로 울겠지만..) 일단 웃으면서 일요일에 만나,  양과 .


너의 션민시신여부뤼당당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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