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imbo Apr 18. 2022

끝내 아름다움으로 남아

모드 쥘리앵. 완벽한 아이

모드 쥘리앵. 완벽한 아이. 별 다섯



언제나 믿음직한 김영하는 작가란 '말을 수집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수 없는 감정과 감각에 적확한 결을 찾아내어 표현하고 이름붙이는 것이 작가의 일이라는 의미다. 무엇이든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내게로 와 꽃이 되기에 이름없는 것은 사람도 들풀도 그 아름다움이 마주한 사람의 감각을 넘어설 수 없다. 서글프다. 서럽다. 이름이 생기고 결에 맞는 언어로 그려졌을 때 비로소 보는 이를 넘어서 확장되고 다른 이와 나눌 수 있는 무엇이 된다. 그렇게 밖으로 연결되면 관념의 세계에 자신의 자리가 생긴다. 언어는 대체로 빗나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다.


요즈음의 나는 슬픔을 수집하고 있다. 산맥처럼 너른 어미 돼지의 몸을 융단삼아 꼬물꼬물 먹고 자고 놀았던 아기 돼지들이 엄마와 떼어졌을 때 내지르는 절박한 비명에 오소소 소름이 돋는다. 신의 구원인양 축복인양 사랑했던 아들을 잃은 참척의 고통을 견디느라 목숨은 차마 끊지 못하고 애가 끓는 어미의 마음에 잠긴다. 산처럼 커다란 권력을 가진 이에 의해 성폭력을 당한 것으로도 모자라 온 나라로부터 독기어린 말을 받아내야 했던 이의 가느다란 한숨이 지축을 흔드는 외침이 되길 기도한다. 영어에서 말하는 것처럼 눈알이 빠지게 울지만, 그 어느 이야기도 나의 것은 아니다. 상가집에서 제 설움에 겨워 상주의 곡소리보다 크게 우는 문상객 꼴이다.  감히 내가 짐작도 할 수 없는 슬픔의 물결에 슬쩍 몸을 맡기고 한참을 부유하다 물기를 뚝뚝 흘리며 나온다. 누군가 나의 마음에 붙여놓은 이름을 찾길 바라며.


김영하 작가는 온라인으로 운영하는 북클럽을 시작하는 첫 책으로 이 이야기를 소개하며, '그 어떤 출구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철저히 혼자가 되어 갇혀 있다고 느끼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고 했다. '완벽한 아이', 아마 프랑스어로 쓰여졌을 원작의 영어 번역본 제목은 'The only girl in the world(세상에 하나뿐인 소녀)'다.


망상에 사로잡힌 아버지가 가난한 광부의 막내딸을 사오듯 데려와서 22년 동안 기숙학교에 보내 교육시킨 후 아내로 삼았고, 그 사이에서 낳은 딸을 세 살 되던 해 시골의 저택에 데려가 15년 동안 가두었다. 세상은 위험으로 가득찼다고 믿은 그는 결국 망하고 말 세상에서 살아남게 하기 위해 이 작은 아이를 완벽한 초인으로 길러내겠다는 집념을 아이에게 투영했다. 숨쉬는 모든 순간이 지옥이었던 두 희생자와 한 미치광이의 이야기는 아이가 자라 스스로를 구하며 끝난다. 살아남은 아이는 이 이야기를 40년이 지나고서야 써낼 수 있었다.


이것은 아이의 이야기다. 이해할 수 없는 광기로 쌓은 감옥에 갇혀 누구와도 마음을 나누지 못하도록 감시받을 때 아이가 어떻게 자랄까. 아이의 내면은 거칠고, 무뎌지며, 자기가 당한 폭력을 내면화할 것이다. 24시간 갇혀 몸과 마음을 통제받을 때 사람은 어떻게 자신을 잃지 않을 수 있을까. 그것이 아이라면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자아는 자랄 새도 없이 죽으리라. 이는 많은 심리학 연구에서 입증됐다. 그런데 이 아이는 세뇌와 통제와 고문을 견디며 스스로를 길렀다. 아이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하나의 우주라는 심상한 표현이 이 책을 읽으며 놀라운 의미가 되어 다가왔다.   


이것은 고통의 이야기다. 아이는 잠을 마음대로 잘 수 없고, 원하는대로 먹지 못하고, 생각조차 그어진 선을 넘을 수 없고, 아이의 시간은 분 초를 갈라 바늘하나 들어갈 틈 없는 훈련으로 짜여졌다. 감각을 제어하고, 연민과 동정은 약한 감정이므로 엄격히 금지된다. 엄마로부터 희미한 사랑의 증거라도 찾고자 필사적으로 매달리던 아이는 결국 엄마도 또 다른 희생자이지만 한편 가해자가 되버린 것을 깨닫고 결국 자신이 살기 위해 엄마를 버려야 함을 받아들인다.


이것은 먼지의 이야기다. 철저하게 작고 무력한 존재인 아이는 부모가 주입하는 광기와 맹신, 터무니없는 기대를 새기며 목소리는 고사하고 신음조차 삼켜야 했다. 존재하는 것조차 드러나지 않을만큼. 아이에게는 언제나 닫혀있는 덧창 밖 길을 걷는 공장 노동자의 아내가 되는 '초라한 삶'을 꿈꾸는 것도 황홀하고 위험한 상상이었다. 빗방울 하나에도 씻겨서 흔적조차 없어질, 아이는 세상의 먼지로 살았다.


그러나 이것은 예술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아이는 지하생활자수기를 통해 고통의 언어를 발견하고, 몬테크리스토를 읽으며 같은 분노의 목소리를 듣고, 그리스 신화에서, 프랑스 역사에서 길잡이를 찾는다. 몰래 글을 쓰며 산처럼 내리꽂는 권위로부터 정신을 자유롭게 하는 법을  터득한다. 그리고 정원에 자신처럼 갇혀 살았던 날개꺾인 오리, 개, 말을 깊이 사랑하며, 금지당한 감정을 키우고 스스로 지켜내어 마침내 살아남았다. 그리고 이렇게 우아한 언어로 나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어주었다.


나는 끝내 여기서도 내 마음의 이름을 찾지 못했다. 감히 그럴 수가 없었다. 그리 멀지도 않은 때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믿기도 어려웠으니 애초부터 불가능한 바람이었다. 대신 눈알이 빠지게 울고 난 자리에 새싹처럼 기운이 돋는다. 완벽한 절망 속에서도 기필코 아름다움을 지켜낸 아이의 용기에 전염된다. 말 없는 다정한 눈빛, 손톱만큼의 친절, 스치듯 닿는 온기가 산산히 스러진 마음을 일으켜 세우는 경이로운 이 이야기는 기적이 우리 삶에서 어쩌면 수시로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갖게 한다. 올해를 맺는 글이 이 책이어야 했던 이유다.  


21.12.26

매거진의 이전글 책 감상을 해보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