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스베리 추억
얼룩덜룩한 블라우스를 입은 그녀를 보니,
시댁 마당 한켠에 피어있던 살스베리(배롱나무) 꽃이 떠올랐다.
속 살이 살짝 비치는 살스베리 무늬의 찰랑거리는
블라우스를 입고 절룩거리며 우체국을 향하는 시어머니의 뒷모습을 보며, 한때는 체육관 노인들 중 최고로 섹시했고, 에어로빅 광신도였던 그녀를 떠올리며..
어머님도 세월이 야속하겠구나 … 문득 짠한 마음이 든다.
오우~~ 내가 이런 로망에 빠지면 안 돼! 그녀가 나한테 얼마나 얄밉게 굴었던가 말이다...
지나간 세월을 떠올려 본다.
미국에서 귀국 한지 1년 2개 월만에 보증금 500 만원에 월세 110만 원짜리 집을 겨우 구했다.
남편에게 “내가 서울에 넉 달 가있는 동안 집 구해놓지 않으면 돌아오지 않을 거란 엄포를 놓고 난 4개월 후였다.
새로 장만 한 살림 살이라곤 이케부쿠로 빅 카메라에서 냉장고를 카드 12개월 할부로 구입한 게 전부였다.
커튼은 동네 천 가게에서 가장 싸 보이지만 , 4살짜리 내 딸이 좋아할 것 같은 핑크색 줄무늬가 들어간 천으로 골라 왔다.
시어머니가 더 이상 쓰지 않는 브라더 미싱을 빌려 와 일단 안방에만 커튼을 만들어 달았다.
다다미 여덟 장 짜리 안방은 아침 열 시가 되면 노르스름한 바탕에 핑크빛 세로 줄무늬 커튼 사이로 따뜻한 아침햇살이 비쳤다.
나는 그 돈 한 푼 없던 그 시간이 참 행복했다.
보증금 500에 월세 110만 원, 12개월 할부 냉장고도, 싸구려 커튼도, 리사이클 shop에서 구한 4인용 식탁도 그렇게 만족스러울 수가 없었다..
왜냐면 우리는 새로운 시작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고, 더 이상 시댁에 얹어 사는 처지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 속 시원해~ 행복하다~
이런 기분?
방이 두 칸씩이나 있는 집이었지만, 우리 셋은 안방
다다미 여덟 장이면 충분했다. 방은 한 칸만 있어도 괜찮았는데 왜 두 칸 자리를 욕심을 냈는지 모르겠다.
방이 한 칸이었더라며 110만 원씩이나 월세를 내지 않았어도 됐을 텐데..
나는 파친코를 하지도 게으르지도 않았고, 미국에서 6년 반 동안 죽어라 일하다 남편 말만 믿고, 일본으로 귀국을 했는데 일본 시댁 생활은 녹녹하지 않았다.
시 어머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겐짱, 짐 정리를 하고 있는데, 혼자 하려니까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구나, 시간 되면 와서 좀 도와주고, 혹시 너 필요한 거 있으면 가지고 가거라. “
그녀가 홀로 된 지 6년이 지나고, 벨~벨꼬는 교토식 화법에 능숙한 그녀가 싫어 한동안 연락도 안 했다.,
오랜만에 그녀의 집에 와보니, 45년 된 낡은 집 담벼락이 붉은색으로 칠해져 있다. 얼마 전에 사람을 불러 고친다더니… “센스 없게 저게 뭐야?” 돈이 아깝다 돈이 아까워… 속으로 생각했다.
축 늘어진 핑크빛 배롱 나무도 키가 작은 그녀가 가지를 치기에는 무리였는지 맘대로 늘어져 내 어깨를 스친다.
저따위로 대충 벽을 발라주고, 600만 원을 받아간 업자도 참 너무하다. 혼자 사는 노인은, 사기꾼이 어떻게든 알아차리고 이런짓를 한다. 요즘 유행하는 ‘보이스 피싱’ 보다는 싸게 먹혀 다행이다.
근육 키운다며 체육관이나 열심히 다녔지, 도통 정원에는 관심이 없어, 사 아버님이 애지중지하던 소나무 분재도 다 죽고 없고, 별로 넓지도 않은 정원을 쑥대밭을 만들어 놓았다.
정리되지 않은 정원에 차를 세워뒀던 마당 한가운데는 텅~ 비어있고, 한쪽 구석에 낡고 녹슨 자전거가 두대가 버티고 있다. 탈 사람이 없는 자전거를 저곳에 세워둔 의중을 금방 알 수 있다.
혹시라도 남편이 없다는 걸 누거 알까 봐 머리를 쓴 게 분명하지만 소용없다. 사람이 사는 것처럼 보이려면 정리를 하고, 식물을 잘 가꿔야지.. 잔디가 저 꼴인데..
낮게 달려있는 대문 쇠고리를’ 휙 돌려 안으로 들어가며 ”어머니 저 왔어요 “
손 뜨개질 달인인 그녀는 ‘운수 대통 황금 코끼리 자수가 놓인 반팔 검정색 스웨터를 입고 있었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반가운 알굴로 나를 맞이하며 “げんさん お久しぶりだね…早くお上がりなさい。ほら~神様に挨拶..
(겐상 오랜만이구나~어서 오너라. 먼저 부처님께 인사드려야지~~)
빈손으로 오기 만망해 사온 ‘ 나가사끼 카스텔라‘ 빵을 받아 들고 현관에서 가장 가까운 다다미 방 안쪽에 있는 불당미닫이 문을 열어젖혔다. 그리고는 언제나 그러하듯 그날도 굵은 구슬이 꽤어진, 긴 염주를 내손에 ‘꼭’ 쥐어 주었다.
(일본집에는 집집마다 불당이 있다고 하지만, 우리 시댁은 유별났다.)
어우~ 나는 이 염주가 싫다… 그래도 어쩔 수가 없으니 (일단 헐렁하게 왼손 엄지 손가락에 걸었다.) 한분은 앉아 계시고, 한분은 서서 계시는 두 부처님.. 그 앞에는 죽은 선조들의 ‘명패’ 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나는 두툼한 방석 위에 않아 어머님이 먼저 인사하는 걸 지켜보았다.
그녀가 향을 꼽은 후 내가 사 온 ‘카스텔라’ 빵을 바치고는 부처님을 향해 ‘뭐라 뭐라’ 나무아비 타~불~~ 하더니 먼저 방을 나갔다.
나도 띠잉~~ 하고 종을 한번 친 후 눈을 감았다.
“일본인 선조님들 ㅋ 저 왔습니다.. 요로시꾸오네가이시 마수.. ”
히고 일어섰다. 언제나 나는 일본어로 기도를 했다.
죽은 귀신들이 혹시 내가 한국 사람이란 걸 눈치채면 안 되니까.. ㅎ 무섭기도 했다. 시꺼먼 흑백 사진 속, 한 번도 만나 본 적 없는 사람들이.
이 집을 방문하는 모든 사람이 반드시 통과해야만 하는 집안의 의식이다.
나는 지금도 그렇지만 그게 너무 싫었다..
그때마다 생각한 것은, 내가 종교인이 아니라 참 다행이구나~ 였다.
나는 그녀의 염주도 싫었다. 막무가내로 내 손에 감아 주는 그 행동도 싫었다. 혹시라도 내가 크리스천이면 어쩌시려고.. 나의 동의도 없이 자신의 종교의식을 하라는 그녀가 이해가 안 됐다.
그때 내가 “어머님은 타인의 종교에 대한 존경심은 없으신가요? ”. 내지는 ”이건 어머님의 종교이지 저의 종교는 아니에요. 강요하시면 안 돼요 “… 등등 반항을 한들 소용이 있었을까?
시아버님이 돌아가시고, 홀로 된 시어머니는 ‘수면제’를 먹으면서 정신적으로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수십 개도 넘는 가족사진 첩이라도 좀 정리하라고 해도 그것조차 정리를 하지 않고, 지금까지 미루어 오다가 이제는 때가 왔다.
시아버지가 쓰지도 않고 창고에 두었던 버버리 신발들이며 옷가지들, 버리는 것을 잘 못하는 그녀의 짐은 실로 엄청났다.
사용하지 않은 신발, 옷가지들, 자주 입지 않는 기모노는 리사이클 shop에 팔기로 했다. 그것만 해도 산더미 같았다.
시어머니가 수백만 원’ 줬다는 암웨이 ‘최고급 티타늄’ 10종 냄비 세트를 내게 보여주며,
“이건 정말 기름이 없어도 요리할 수 있는 초고급 냄비들인데 안 쓰겠니?”
“저도 냄비 많아요, 놓을 곳이 없어요. “
“이건 진짜 버리기 아깝구나 “내가 정말 아끼는 건데.
“어쩔 수 없죠 뭐”
“이 그릇은 어떠니? “
“그릇도 엄청 많아요”
“그럼 이 크리스털 컵은 어떠니? 손님 올 때 쓰면 좋단다.”
“요즘에 누가 이런 조그만 컵을 써요?”
“무슨 말을 하는 거냐! 이건 보통 집에는 없는 귀한 컵인데! “
나는 시어머니 물건을 아무것도 물려받지 않을
결심을 오래전부터 해 온 터였다.
내가 꼭 필요할 때 ‘고물 앤티크’? 를 준 것에 대한 작은 나의 복수였다.
그렇게 대단히 좋다는 냄비 세트, 그릇 세트‘를 를 장롱 속에 묵혀두고 있다가 이제 버릴 때가 오니까 ‘선심’ 쓰는 척하는 말투도 싫었다.
저 하얗고 예쁜 ‘부엉이’ 인형 2개도 오늘 버려야 한다.
부엉이 인형이 너무 예쁘길래 “어머니 저 하나 주시면 안 돼요?” 오래전에 물어본 적이 있었다.
어머님은 못 들은 척했다.
오늘 봐도 예쁜 저 하얀 부엉이 인형 2개도 쓰레기가 됐다. 줍고 싶었지만 참 기로 했다. 나는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기로 했으니까…
그녀의 45년 추억의 이 집도, 아까워서 고이고이 넣어두었던 접시고 뭐고 ‘싹’ 처분해야 하는 시간이 왔다.
내가 꼭 필요했던 그때 내게 주셨더라면, 버리기 아까워 죽겠다는 저 최고급 냄비도, 크리스털 컵도, 아름다운 그릇 세트도 버리지 않았을 수 있었겠다.
하긴.. 딸도 아닌 외국인 며느리가 뭐가 이뻐서 죽고 싶겠어? 그 맘도 이해는 간다.
정리하며 보니 아름다운 일본식 ‘3단 찬합세트’며 초밥 그릇이며 수없이 많았지만 , 눈 딱 감고
“ 다~~ 필요 없다고 말씀드렸다.”
그렇게 아까워 깊숙이 넣어 두었던 살림살이를 모두 쓰레기처분하고, 자신의 분신 같은 부처님 두 분과, 일본식 거문고 3대를 들고 우리와 함께 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