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교직 8년차가 되다
울분과 슬픔에 찬 첫 글을 올리고 이제야 두번 째 글을 작성하게 되었다.
2022년에 지옥같았던 첫 학교를 떠나 두 번째 학교로 이동했다. 주변 선배들의 말을 따르자면 '그 학교 교장 편하게 해준다더라.', '아무것도 안 하는 학교야. 연구학교든 뭐든.' 이라는 누군가는 오히려 기피할 만한 소문을 달고 있는 학교였기에 오히려 좋았다. 연구학교라면 지긋지긋했고(4년 내내 연구학교였다. 그 중에 2년은 갓 1정을 단 내가 학년부장까지 했다) 성과주의에 물든 위선적인 교장은 더 싫었다. (이 인간과 관련해서도 할 말이 많지만 다른 글에 써야겠다.)
차라리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이 나을 것 같았고, 4년 연구학교에 3급지 점수 얹으니까 관내 이동점수가 하늘을 뚫어버렸다. 1순위로 쓴 학교는 안 될 걸 알았다. 4급지에 부장까지 한 사람들이 가는 곳이라는 소문이 파다했기 때문이다. 2순위 학교는 무조건 될 걸 알았다. 내 점수로 3급지를 못 뚫으면 그건 교육청 인사이동에 비리가 있는 게 분명하다는 합리적인 의심이 가능한 점수였다. 4급지에서 숨만 쉰 사람보다 오히려 내 점수가 더 높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성공적으로 2순위 학교에 이동한 것이 2022년 2월의 일이다. 오자마자 모두가 희망하지 않는 6학년 담임을 맡아 2023년 올해에 이르기까지 같은 교실을 2년 째 쓰고 있으며 작년에 처음으로 6학년 제자를 졸업시켰다. 심각한 기피학년이었던 이유가 있어서 다시 정신과를 안방 드나들듯 했지만, 그래도 졸업시키고 나니 모든 기억이 미화가 되는 어마어마한 기적이 일어났다.
2023년이 되어 새롭게 올라온 아이들을 받았다. 1학년 때부터 쭉~ 별을 달고 올라온 슈퍼 VIP가 우리 반에 배정되어 있었다. 제발 이놈만 안 만났으면, 하고 바랬으나 내가 뽑은 명단에 그 친구 이름이 있는 걸 보고 한숨 한 번 쉬고 말았다. 2022년에도 우리 반에 심각한 분노조절장애 학생이 있었는데 올해도 비슷한 녀석이 온 걸 보니 우리 반 터 자체가 감정 조절이 어려운 애들이 오는 터겠거니, 하고 생각하기로 했다. 주변 동료 선생님들은 '너 걔 감당 못해, 옆반 생활 부장한테 바꿔달라 해. 생활 부장님이 그런 애 맡으려고 오는 거야.' 등등 걱정을 앞세운 조언들이 2월달에 어마어마하게 들러붙었지만 한 귀로 흘렸다.
그래서 8월이 된 지금은 어떤가 하면, 별을 달고 올라온 이유를 알긴 알겠으나 그래도 나한테는 귀여운 녀석이 되었다. 내 앞에서 그 커다란 덩치로 양 손가락을 볼에 꾹 찌르며 애교도 부리고, 심심하면 옆에 와서 나를 빤히 보다가 '선생님 예뻐요.'를 수줍게 외치고 도망가는 귀여움도 탑재하게 되었다. 물론 그 녀석이 그렇게 변신하기까지가 모든 과정이 평탄했냐하면 그건 또 아니지만.
올해는 교실에서 아이들과의 관계나 민원보다는, 어느 정도 교실이 안정되고 아이들이 적극적인 면이 있어서 다 없어진 줄 알았던 열정이 불을 활활 태우는 것이 문제였다. 그래서 올해 우리반 애들과 다 함께 수업연구대회도 나갔고(예선 탈락했다. 애초에 소규모 인원 과목이라 힘들 거란 걸 예상하긴 했다. 아니 근데 미술 교과로 나갔는데 왜 수업 심사위원은 체육과 장학사가 오는 건데? 그 사람 미술에 대해 하나도 모른다에 내 손모가지를 건다!) 창의융합디자인 대회에 애들 두 명 지도해서 출품한 것과 공간디자인프로젝트 대회에 애들 네 명 데리고 출품한 것은 모두 본선에 올라갔다. 둘 다 본선이 9월이라 나는 9월에 뒤졌다를 복창하며 두려움에 달달 떨고 있는 중이다.
겉보기에는 문제 없어 보이는 올해 역시도 2019년의 망령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 유명 웹툰 작가의 특수교사 고소 사건도 그렇고 서울에서 돌아가신 젊다못해 어렸던 선생님의 일은 남의 일이 아니다. 최근 스마트폰으로 관련 기사들을 보다가 공황 증세가 다시 나타날 정도였다.
'앙심을 품은 그 때의 학부모가 나를 지금에 와서 다시 고소하고 아동학대로 신고하면 어떡하지? 그 애한테 지금 문제가 생겼는데 그걸 2019년 담임이 우리 애한테 상처를 줘서 그랬다, 라며 고소장을 보내면 나는 어떻게 해야하지...?'
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글을 쓰는 지금도 어마어마한 무서운 일들이 끝없이 생각난다. 한 가지 위안이 되는 것은 최근에 전국의 교사들이 함께 시위하고 언론에서 교사들에게 우호적인 기사와 뉴스를 내보내는 등 현 교직 상황에 대해 지지해주고 공감해주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일이 발생하면 어떤 관리자가 되든 나를 외면할 것이 분명하지만, 그래도 이제는 교사노동조합(전교조가 아니다. 오해 말길.)과 나와 비슷한 일을 겪은 수많은 선생님들이 함께 해줄 것임을 안다. 이런 기막힌 일을 겪은 게 나 뿐 만이 아니구나, 내가 부족해서 일어났던 일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자해를 멈추게한 것 같다.
실제로 주변에서 연락도 많이 왔다. 그간 연락을 하지 못했던 친구들도, 선생질이 뭐가 힘드냐며 공감하지 못하던 가족들도 이제는 조심스럽게 괜찮냐고 묻는다. 안 힘든 직장이 있겠냐만은, 그래도 주변의 염려와 위로를 받아 요즘은 나를 죽이는 생각은 좀 덜하게 됐다. 말도 안 되는 민원이나 힘든 학생은 여전히 있겠지만 나를 죽이지는 않기로 마음 먹었다. 죽지 말고 관두면 된다. 다른 일을 찾아 먹고 살면 된다. 오늘도 살아 남고, 내일도 모레도, 한 달 후에도 일 년 후에도 나는 살아있을 거다.